[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영월의 산과 마을을 잇는 길에는 자연이 만들어낸 오랜 시간과 인간이 일군 생활의 역사가 나란히 남아 있다. 땅속 깊은 곳에는 4억 년의 세월을 간직한 석회암 동굴이 자리하고, 산중에는 한때 석탄산업의 호황으로 수많은 사람이 모여 살았던 탄광촌이 있다. 고씨굴에서 모운동으로 이어지는 길은 영월이 간직한 서로 다른 시간을 만나는 여행이다.
운탄고도 1330 2길은 방랑시인 김삿갓의 흔적을 따라 걷는 코스다. '김삿갓 느린 걸음 굽이굽이 길'이라는 이름처럼 영월의 산촌과 농촌마을을 통과하며 지역의 생활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고씨굴을 출발해 늘보마을과 옥동, 예밀촌을 지나 모운동에 도착하는 여정이다.
■4억 년의 시간이 빚은 지하 세계, 고씨굴
고씨굴은 영월의 지질환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연유산이다. 고생대에 형성된 석회암 지대에 지하수가 스며들면서 암석을 조금씩 녹였고, 오랜 시간이 흐르며 동굴이 만들어졌다. 약 4억 년 전부터 이어진 지질학적 변화가 오늘날의 동굴 경관을 완성했다.
동굴의 이름에는 임진왜란 당시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전쟁을 피해 고씨 일가가 이곳에 몸을 숨겼다는 데서 고씨굴이라는 명칭이 유래했다. 자연이 오랜 세월 빚어낸 공간에 전쟁을 피해 살아남으려 했던 사람들의 역사가 더해진 셈이다.
고씨굴은 1969년 6월 4일 천연기념물 제219호로 지정됐다. 내부에는 천장에서 아래로 자라는 종유석과 바닥에서 위로 솟는 석순을 비롯해 석주, 동굴산호 등 다양한 동굴 생성물이 분포한다. 지하수가 석회암을 녹이는 작용뿐 아니라 물속에 녹아 있던 탄산칼슘이 다시 침전되는 과정을 거쳐 형성된 자연의 조형물이다.
동굴은 지질 유산인 동시에 생태환경의 보고이기도 하다.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고 온도 변화가 크지 않은 지하 환경에는 일반적인 지상 생태계와 다른 생물들이 살아간다. 고씨굴에서 확인된 갈로아 곤충도 대표적인 사례다. 동굴의 가치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석회암 생성물뿐 아니라 외부와 다른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는 생물까지 아우른다.
■늘보마을에서 예밀촌까지, 산촌의 일상을 통과하는 길
고씨굴을 뒤로하고 걷기 시작하면 운탄고도 1330 2길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늘보마을은 코스 초반에 만나는 농촌마을이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으며 마을의 풍경과 주변 자연을 살펴보는 구간으로, 코스 이름에 담긴 느린 걸음의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이어지는 옥동은 포도 재배로 알려진 농촌마을이다. 산간 지역의 기후와 농업환경을 활용해 지역 특산물을 가꾸어온 주민들의 생활이 이어진다. 여행자는 길가의 밭과 마을 풍경을 지나며 영월 남부의 농촌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살펴볼 수 있다.
예밀촌에서는 영월의 지역 와인 문화를 만난다. 포도 재배를 기반으로 와인 생산과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농업에 관광 콘텐츠를 더하고 있다. 예밀힐링와인센터에서는 지역 와인과 족욕을 결합한 체험도 마련돼 있다. 농산물 생산에 머물지 않고 가공과 체험으로 부가가치를 높이는 농촌 관광의 사례다.
예밀촌을 지나 모운동으로 향하는 구간은 오르막이 두드러진다. 만경대산 자락을 따라 해발 고도를 높여야 하는 만큼 체력 안배가 필요하다. 산길을 오르는 동안 주변 산세와 계곡, 산촌의 풍경이 이어지며 도보여행의 성격도 한층 뚜렷해진다.
■구름이 모이는 마을, 모운동에 남은 탄광의 기억
오르막을 따라 산자락을 넘으면 모운동이 모습을 드러낸다. 모운동(暮雲洞)은 구름이 모이는 마을이라는 뜻을 지닌다. 비가 내린 뒤 산허리에 안개와 구름이 머무는 일이 잦아 붙여진 이름이다. 망경대산 자락에 자리한 산촌으로, 높은 산에 둘러싸인 지형과 구름이 어우러져 독특한 경관을 만들어낸다.
지금은 고요한 산골마을이지만 과거의 모운동은 영월의 대표적인 탄광촌이었다. 1954년 옥동광업소가 문을 열면서 광부와 가족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탄광이 호황을 누리던 시기에는 주민이 1만 명에 달했으며, 광부 2000여 명이 일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산비탈을 따라 주택과 상점이 들어섰고 시장과 양복점, 음식점, 극장까지 자리했다.
석탄은 모운동의 경제를 움직인 자원이자 마을을 유지한 산업 기반이었다. 채굴된 석탄은 삭도를 이용해 석항역 인근 저탄장으로 운반됐다. 광산에서 캐낸 석탄이 철도와 연결되고 전국의 연료 수요를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모운동은 산업화 시대 에너지 생산의 한 부분을 담당했다. 오늘날 산길을 걷는 여행자가 마주하는 풍경 아래에는 광부들의 노동과 석탄 운송을 둘러싼 산업의 역사가 자리한다.
그러나 탄광산업의 쇠퇴는 마을의 운명도 바꾸었다. 1989년 옥동광업소가 폐광하면서 일자리를 잃은 광부와 주민들이 하나둘 마을을 떠났다. 상점이 문을 닫고 생활시설도 활기를 잃었다. 한때 수많은 사람이 모여 살던 마을은 인구 감소와 지역경제 침체를 겪으며 작은 산촌으로 돌아갔다.
폐광 이후 모운동은 마을을 보존하고 외부 방문객을 맞이하기 위한 변화를 시도했다. 주택 담벼락에는 그림이 더해졌고 골목 곳곳은 벽화마을로 정비됐다. 탄광촌의 옛 모습을 기억하는 공간에 새로운 색채가 입혀지면서 여행자들이 찾는 산촌 관광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벽화는 마을을 꾸미는 장식에 머물지 않고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가꾸며 이어온 재생의 기록이기도 하다.
운탄고도 1330 2길은 자연과 농촌, 산업 유산을 차례로 만나는 여정이다. 고씨굴에서는 지구의 오랜 시간을 마주하고, 옥동과 예밀촌에서는 농업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지역의 오늘을 만난다. 모운동에서는 탄광산업의 성장과 쇠퇴를 겪은 주민들의 역사가 기다린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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