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인기 없는 ‘법의학’을 선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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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인기 없는 ‘법의학’을 선택했나?

평범한미디어 2026-11-07 20:07:38 신고

3줄요약

※지난 11월5일 15시 광주특별시 북구청 3층 회의실에서 개최된 유성호 교수(서울대 의대 법의학 교실) 강연 현장에 정회민 크루가 다녀왔습니다. 강연 주제는 <죽음에서 배우는 삶의 가치>입니다. 정회민 크루가 현장 취재를 해온 것을 토대로 박효영 기자가 세 편에 걸쳐서 기사를 작성합니다. 이번 기사는 1부입니다.

 

[평범한미디어 →현장 취재: 정회민 크루 / 기사 작성: 박효영 기자] 유성호 교수는 법의학자라는 직업에 대해 아래와 같이 표현했다.

 

의사는 원래 살아있는 환자를 치료하는 직업이지만, 나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다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의사다.

 

유 교수는 이번 강연에서 지난 30년간 현장에서 마주했던 수많은 변사체와 부검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인간 사회의 단면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강연을 하고 있는 유성호 교수의 모습. <사진=정회민 크루>

 

의대에 간 것은 어머니 때문이었지만...

 

유 교수가 처음부터 법의학자의 길을 꿈꿨던 것은 아니다. 호남 출신 어머니의 유년 시절 기억 속에서 ‘마을에서 가장 부유하고 존경받는 인물’은 단연 의사였다.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강력한 권유로 의대에 진학했다. 그는 대학에서 정형외과나 감염내과를 선택할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의대 졸업 직전 접하게 된 ‘법의학’이라는 학문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학문의 깊이와 사회적 가치에 매료된 그에게 당시 스승은 씁쓸한 현실을 털어놓았다.

 

지난 10년간 단 1명의 제자도 들어오지 않았다.

 

의대생들이 찾지 않는 비인기 전공이라는 사실에 주저할 법도 했다. 그러나 유 교수는 20대 젊은 의대생으로서 ‘법의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법의학의 숭고함이 있었다. 1996년 한국 법의학의 대부이자 국과수 창립 멤버인 문국진 교수는 대한민국 1호 법의학자인데, 유 교수는 그의 계보를 이어가고 싶었다. 그렇게 30년 법의학자의 길로 첫발을 내딛었다.

 

억울한 죽음을 밝히는 ‘마지막 의사’

 

우리가 흔히 접하는 사망진단서는 의사가 시신을 살펴보고 작성하는 ‘검안’의 결과물이다. 뚜렷한 질병에 의한 사망(병사)이 아니거나, 자살·타살·사고사 등 원인이 불분명한 ‘외인사’의 경우 사건은 경찰과 검찰로 넘어간다. 그리고 사법적 판단을 거쳐 시신을 해부하여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이 바로 ‘부검’이다. 유 교수는 서울대 의대 소속으로 서울 북부 9개 경찰서 관내의 변사체 부검을 전담하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 매년 180여건에 달하는 부검을 진행한다. 통상 해외 법의학자들이 1년에 100건을 넘기며 과로를 호소하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격무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국내에서 법의학을 전공한 전문의는 겨우 52명에 불과하다. 광주전남 전체를 통틀어도 4명 뿐이다. 의대를 졸업하고 바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전공을 택하거나, 개업을 하는 것이 한국 의료계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한국 법의학은 극심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주변에서는 “매주 비참하게 훼손되거나 부패한 시신을 보며 트라우마나 스트레스는 없느냐”고 묻는다. 유 교수의 대답은 명확하다. 부검 전 형사가 전달해주는 돌아가신 분의 신분증 속 증명사진을 가장 먼저 확인한다는 것이다.

 

신분증 속 얼굴은 누구나 가장 근엄하고 예쁘게 차려입은 모습이다. 부검대 위에 누워있는 시신이 범죄의 피해자든, 외롭게 홀로 떠난 고독사 시신이든, 이분 역시 우리처럼 지구라는 세상에서 소중하게 살아가던 인격체였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 순간 트라우마나 돈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이분의 마지막 의사로서 억울함이나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대신 들어줘야겠다는 사명감이 앞선다.

 

‘오톱시(Autopsy)’가 전하는 삶의 진정한 의미

 

유 교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부검의 영어 단어 ‘오톱시(Autopsy)’의 어원을 소개했다. ‘나’를 뜻하는 ‘오토스(Autos)’와 ‘보다’라는 뜻의 ‘옵시스(Opsis)’의 합성어로 여기서의 ‘나’는 영혼이 빠져나간 신체를 의미한다.

 

우리 모두는 인생이라는 험한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도착하는 시기만 다를 뿐 언젠가 다다를 마지막 목적지는 누구나 동일하다. ‘오톱시’는 영혼이 떠난 먼 미래의 ‘나’를 지금 미리 바라보는 작업이다.

 

그는 부검실에서 마주하는 죽음을 통해 역설적으로 삶의 소중함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는다고 말했다.

 

‘부검 감정서’가 갖는 무게

 

법의학자의 역할은 부검실 안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부검 후 3~4주에 걸쳐 작성하는 30쪽 분량의 부검 감정서는, 법정에서 범죄자를 처벌하고 정의를 세우는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유 교수는 자신이 자문에 참여했던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과 ‘27개월 된 영아의 뇌출혈 사망 사건’을 사례로 제시했다. 단순 사고사나 병사로 묻힐 뻔했던 사건들이 법의학적인 정밀 분석을 통해 가혹행위와 아동학대에 의한 타살이었음이 밝혀졌다.

 

근데 이 아이는 사연이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엄마, 아빠가 이혼하는 바람에 누가 키웠느냐? 남동생이 사고 쳐서 낳은 애를 고아원에 보내기 싫어서, 회사원인 고모가 아기를 데리고 가서 키운 거다. 그러니까 착한 고모가 맞다. 결혼할 자기 남자친구랑 키웠는데 이제 꽤 오래 키웠는데 이제 실제로 결혼을 할 건데 데려갈 수는 없지 않은가. 어렵지 않은가. 고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친모가 나타나서, 내가 새로운 동거남을 만났으니까 애를 데려가겠다고 해서. 데려갔는데 데려간지 2개월 만에 애가 죽은 거다.

 

무엇보다 유 교수는 부모의 방임과 거짓 진단서 작성, 장례식장의 안일한 검안 절차 속에 영원히 묻힐 뻔했던 아동 학대의 비극을 밝혀내며, 법의학이 사회적 정의를 수호하는 최전선에 있음을 강조했다.

 

법의학은 비록 죽은 자를 다루는 학문이지만 그 본질은 억울한 죽음을 막고 남아 있는 산 자들의 안전과 인권을 지키기 위함이다.

 

→2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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