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머니=권혜은 기자] 생성형 인공지능(AI)이 학생들의 학습 과정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미국 학교의 평가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AI가 에세이를 작성하고 수학 문제의 풀이 과정까지 제시할 수 있게 되자, 학생이 실제로 학습 내용을 이해했는지 확인하기 위한 전통적인 평가 방식이 다시 주목받는 모습이다.
집에서 작성해 제출하는 과제 대신 교실에서 직접 글을 쓰게 하거나 교사와 대화를 나누는 구술시험을 도입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미국 전역의 교사와 교육 전문가 12명을 인터뷰해 AI 확산에 따른 교육 현장의 변화를 조명했다. 인터뷰에 따르면 일부 학교에서는 손 글씨 과제와 대면 평가를 확대하며 학생들의 실질적인 학습 능력을 확인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6학년 인문학을 담당하는 트리스턴 창 교사는 지난해부터 가정에서 작성하는 에세이 숙제를 폐지했다. 대신 학생들이 수업에서 다룬 작품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구술시험을 도입했다.
학생들은 작품 속 인물과 사건, 주제, 은유적 표현 등에 관한 15개 질문에 답해야 한다. 단순히 완성된 글을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언어로 작품에 대한 이해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창 교사는 기술이 교육 환경을 꾸준히 변화시켜 왔지만 생성형 AI의 등장은 이전과 차원이 다른 변화라고 설명했다. 기존의 교육 방식만으로는 달라진 환경에 대응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다른 학교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중학교 영어 교사 러스티 셰이브는 학생들이 집에서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AI에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교실 내 글쓰기 활동을 강화했다. 학생들이 직접 생각하고 글을 완성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7학년 학생들과 에세이 한 편을 완성하는 데 한 달을 투자하기도 했다.
수학 수업 역시 달라지고 있다. 뉴욕의 고등학교 수학 교사 밥슨 웡은 가정에서 풀어오는 문제의 양을 줄이는 대신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도록 지도하고 있다.
AI가 정답은 물론 상세한 풀이 과정까지 제공하면서 결과만으로는 학생의 실력을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에 웡 교사는 학생들에게 어떤 풀이 방법을 선택했는지, 왜 해당 방법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는지까지 설명하도록 하고 있다.
일부 학교는 AI 활용을 줄이기 위해 디지털 기기 사용 자체를 제한하고 있다.
시카고 교외의 고등학교 영어 교사 렉스 오발레는 수업이 시작되면 학생들에게 노트북보다 공책을 먼저 꺼내도록 한다. 크롬북을 활용하는 수업도 전체 수업일의 약 10% 수준으로 제한했다.
그는 디지털 기기가 없을 때 학생들이 기기 뒤에 숨어 수업에 소극적으로 참여하는 일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기기 사용을 줄인 이후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휴대전화를 통한 AI 사용을 막기 위한 조치도 등장했다.
뉴욕시 교외의 고등학교 영어 교사 메건 하일런드는 일부 학생들이 화장실에서 휴대전화로 AI를 이용하는 사례를 확인한 뒤, 화장실에 갈 때 휴대전화를 교실에 두고 가도록 규칙을 바꿨다.
평가 기준도 조정했다. 집에서 완성해 제출하는 숙제보다 교실에서 직접 수행하는 과제의 성적 반영 비율을 높였다. 별도의 배려가 필요한 학생을 제외하면 영어 수업에서도 손으로 글을 작성하도록 했다.
AI가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답변을 피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뉴욕 브롱크스의 영어 교사 피언 록펠드는 단순한 줄거리 요약이나 등장인물 분석에서 벗어나 학생만의 독창적인 해석을 제시하도록 과제를 구성하고 있다.
미국 학교에서 AI 활용은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확산한 상태다.
미국 랜드연구소가 지난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학생과 영어·수학·과학 교사의 절반 이상이 학업이나 수업 관련 업무에 AI를 사용한다고 응답했다.
다만 AI가 학생들의 학습 능력에 미치는 영향을 두고는 다양한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하버드대학교의 무작위 대조 실험에서는 학생 수준에 맞춰 학습을 지원하는 AI 튜터가 학업 성과와 수업 참여도를 높이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미디어랩의 소규모 연구에서는 챗GPT를 활용해 에세이를 작성한 참가자들이 과제를 더 빠르게 마쳤지만, 사고와 관련된 활동은 줄어드는 경향이 관찰됐다.
이처럼 AI의 교육적 효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면서 학교와 교사들의 대응 방식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AI 사용을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는 입장과 교육의 효율성을 높이는 도구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뉴욕시 교외에서 사회과목을 가르치는 마이클 자가리 교사는 AI를 수업 준비와 학습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례다.
그는 AI를 이용해 역사 문헌을 학생들의 독해 수준에 맞게 바꾸거나 분량이 긴 기사를 요약한다. 학생들에게도 과제를 시작할 때 AI를 활용하는 방법을 권장하고 있다.
AI를 무조건 차단하기보다는 이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자가리 교사는 AI에 적절한 질문을 던지는 과정 자체가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 인터넷을 책임감 있게 사용하는 방법을 교육했던 것처럼, 이제는 AI를 이해하고 올바르게 활용하는 방법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설명이다.
AI가 교육 현장에 빠르게 자리 잡으면서 미국 학교들은 새로운 과제에 직면했다. 기술 활용을 막는 데 그칠 것인지, 아니면 기술을 교육에 접목하면서 학생들의 사고력과 학습 능력을 함께 키울 것인지가 앞으로 교육계의 중요한 고민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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