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한국 증시의 오래된 고질병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잡기 위해 한국거래소가 칼을 빼 들었다.
장기간 제값을 받지 못한 상장사 151곳의 명단을 전격 공개한 것이다. 국내 재계 전체가 기업가치 제고라는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저평가의 원인은 다양하다. 간판 제조업체들은 업황 둔화와 수익성 악화에 갇혀 있고, 주요 지주사들은 자회사 중복상장에 따른 '지주사 할인'을 겪고 있다.
정부와 거래소가 자율 공시와 세제 개편으로 물꼬를 텄다.
하지만 명단 공개를 넘어 주주환원과 자산 효율화, 지배구조 개선 등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뉴스락>뉴스락>은 저PBR 기업들의 저평가 원인과 실효성 있는 해법을 진단한다.
저평가 늪 빠진 상장사 151곳...'자본 비효율' 지배구조 수술대 오르나
한국거래소는 지난 1일 유가증권시장 96개사와 코스닥시장 55개사 등 151개 저PBR(주가순자산비율) 기업 명단을 공개했다.
주가순자산비율이 업종 내 하위권에 장기간 머문 기업을 대상으로 저PBR 표시를 부여해 자발적인 기업가치 개선을 유도한다는 취지다.
PBR은 주가를 주당순자산으로 나눈 지표다. 1배 미만은 시장에서 평가받는 기업가치가 장부상 순자산에도 미치지 못함을 의미한다.
다만 자산 규모가 크다고 기업가치가 높게 평가받는 것은 아니다. 자산을 활용해 충분한 이익을 내지 못하거나 성장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시장의 평가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번 명단에서는 코스피 소재·산업재 기업과 코스닥 정보기술 기업의 비중이 높게 나타나, 저평가 원인이 기업별 사업 구조와 수익성 및 성장 전망에 따라 다르게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롯데쇼핑과 롯데케미칼, 현대제철 등 주요 기업은 업황 부진과 수익성 개선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롯데쇼핑은 오프라인 유통업계의 경쟁 심화 속에서 보유 자산의 활용도를 높여야 하며, 롯데케미칼은 석유화학 업황 부진과 공급과잉, 현대제철은 철강 수요 둔화와 원가 부담 등 전방 산업의 영향을 받고 있다.
대규모 설비와 부지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안정적인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면 시장의 평가가 저하된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와 관련해 송홍선 공주대학교 겸임교수는 <뉴스락> 에 뉴스락>"PBR은 결국 이익 규모와 영업이익률, 자기자본 등 재무 프로파일에 의해 결정되므로 원인은 수치로 명확히 확인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적이 양호함에도 주가가 낮은 저PBR 상태라면 주주환원이나 지배구조가 원인"이라며 "번 돈을 투자나 환원 없이 쌓아두어 비대해진 자기자본을 시장이 디스카운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주회사들의 저PBR 현상도 주요 원인으로 거론된다. 코오롱·한솔홀딩스·삼양홀딩스 등은 자회사 지분을 보유하고 그룹 사업 구조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보유 자산가치가 주가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이른바 '지주회사 할인'을 겪고 있다.
핵심 자회사의 중복상장과 지배구조, 미흡한 주주환원 정책이 맞물리면서 투자 수요가 분산되는 구조다.
이창민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낮은 평가가 산업 특성인지 지배구조 문제인지 구분하려면 저조한 배당성향, 자사주 미소각, 과도한 현금 보유량, 자회사 중복상장 여부 등 이익과 현금의 쓰임새를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항목에 문제가 있다면 지배구조의 문제이며, PBR이 0.5 미만인 경우라면 산업적 특수성을 핑계 대기도 무색한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저평가 꼬리표 뗄까...저PBR 기업의 주주환원 시험대
저PBR 상장사들의 세대교체가 본격화되면서, 대주주의 세 부담 완화와 일반주주 가치 제고 간 이해상충 논란이 수면 위로 올랐다.
승계 국면 속 낮게 형성된 주가를 바라보는 시장의 의구심이 짙어지는 양상이다.
한국거래소가 공개한 저PBR 기업 151곳 중 오너일가가 직접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는 101곳에 달한다.
이 중 대주주 연령이 65세 이상인 기업도 57곳에 이르러 세대교체 압박이 고조되는 양상이다.
다만 지분 구조와 대주주 연령만으로 승계 시점이나 주가 관리 의도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현장에서는 경영 참여와 지분 이전이 각기 다른 속도로 전개되는 사례가 빈번해서다.
실제 E1은 구자열 LS 이사회 의장이 지분을 유지한 상태에서 장남 구동휘 LS MnM 대표가 경영 일선에 나섰고, BGF 역시 홍석조 회장이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며 두 아들이 경영 전면에 합류했다.
코오롱 또한 이웅열 명예회장이 지주사 지분을 보유한 가운데 장남 이규호 부회장이 경영을 이끌고 있다. 경영 일선의 세대교체가 곧바로 지분 승계로 직결되지는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반면 LX홀딩스는 구본준 회장이 장남 구형모 대표에게 주식을 증여하며 지분 구조 재편이 본격화됐다.
상장주식의 증여세가 증여일 전후 각 2개월간의 종가 평균을 기준으로 산정되는 만큼, 주가 수준은 승계 비용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로 작용한다.
이 같은 구조 탓에 시장에서는 승계 국면과 낮게 형성된 주가를 바라보는 오너일가와 일반주주 간 이해상충 우려가 상존해 왔다.
정부와 거래소가 저PBR 기업의 가치 개선을 유도하고 있지만, 자율적인 참여만으로는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송홍선 공주대학교 겸임교수는"양호한 실적에도 저평가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적정 가격이 아닌 합병이나 메자닌(BW·CB 등) 발행이 잦다면 저평가를 심화하는 요인이 되며 일반주주에게도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진단했다.
송홍선 교수는 "미래를 위한 유망 투자 등 특수한 사유를 제외하고 저평가가 계속되는 것은 결국 자본비효율 경영이 유지되는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승계 목적이라는 시장의 의구심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조명현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일반주주 입장에서 의심은 들 수 있지만 명확한 실증적 증거 없이 의도성을 단정할 수는 없다"며 "허위공시나 이익조작을 통한 주가 압박은 명백한 범죄행위인 만큼 현실적으로 선택하기 어렵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기업가치 개선계획은 작성과 제출 자체보다 실제 계획을 얼마나 실행했는가에 대한 사후 평가가 핵심"이라며 "실행 평가 결과를 면밀히 측정하고 명단 재포함 여부를 판단하는 선순환 피드백 구조가 정착돼야 실질적인 주주환원을 견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저PBR 공표만으론 한계...실질적 시장 규율·상장폐지 후속 장치 시급
명단 공개와 맞춤형 지원에 기댄 자발적 유도책만으로는 기업 체질 개선에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이다.
자율 공시를 넘어서는 정교한 평가 체계와 법적 강제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한국거래소는 저PBR 기업의 기업가치 개선을 유도하기 위해 증권사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과 홈트레이딩시스템(HTS)에 관련 기업임을 표시하고, 내년부터 회계법인과 기업을 일대일로 연결하는 맞춤형 컨설팅을 지원할 계획이다.
투자자에게 저평가 기업 정보를 제공해 시장의 관심을 높이고, 기업 스스로 주주환원과 지배구조 개선 등 기업가치 제고에 나서도록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뉴스락> 에 "기업가치 제고계획은 기업이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어떤 목표와 계획을 세울지 자율적으로 약속하는 공시인 만큼, 거래소가 이행을 강제하거나 별도로 점검하지는 않으며 계획 발표 이후 시장과 투자자들이 이를 평가하는 구조" 뉴스락>라고 설명했다.
이번 공표에서는 기업가치 제고계획을 사전 제출한 34곳이 명단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계획서 제출 여부만으로 기업의 실질적 개선 의지를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개선계획을 공시했음에도 여전히 저PBR 요건을 벗어나지 못해 공표 대상에 포함된 사례가 존재하는 등 공시와 실제 체질 개선 사이에 격차가 발생하고 있어서다.
제도 자체의 실효성을 두고 망신 주기식 공표 정책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권재열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저PBR 기업 명단을 공개하는 것은 일종의 망신 주기를 통해 기업들의 분발을 유도하려는 취지이지만 실질적 기대를 하기 힘든 포퓰리즘적 제도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이어 "인위적인 주가 부양은 주가조작에 해당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불법적 요소가 없이 단순히 PBR이 낮은 기업을 공표하는 것은 실질적인 의미를 갖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공표 기준의 시장별·업종별 형평성 역시 논란이다. 거래소는 유가증권시장 하위 25%, 코스닥 하위 10%의 상대평가 기준을 적용했으나 업종별 특성에 따라 표출 비율 차이가 심화됐다.
정부가 추진 중인 상속·증여세 주식 평가 강화 방안과 국회 내 주가 누르기 방지 입법 논의 등 세제 이슈가 복합적으로 맞물려 있어, 일률적 규제보다 구체적 목표 대비 이행 성과를 점검하는 정교한 평가 체계가 요구된다.
송홍선 공주대학교 겸임교수는 "계획 공시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으며 기관투자자가 시장 규율을 행사할 수 있도록 스튜어드십 코드와 지배구조보고서에 자본효율성 항목을 명시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국민연금 등 공적기금이 운용사 평가와 자금 배분에 이행 실적을 반영하는 구조가 마련돼야 기업들도 가치제고계획을 법적 공시처럼 무게감 있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민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목표 대비 미이행 시 사유를 설명하게 하는 최소한의 장치와 함께 권고적 주주제안, 경영진 보수 심의(Say on Pay) 도입, 주총 분산제 등 주주가 직접 목소리를 낼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창민 교수는 "특히 거래소가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과감한 상장폐지인 만큼, 장기간 제 기능을 못 하는 기업을 퇴출하는 위험이 있어야 개선 노력도 진지해질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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