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매일 소비되는 그 많은 옷들이 다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매 시즌 새로운 컬렉션이 쏟아지고, 수많은 옷으로 가득 찬 매장이 도시 곳곳에 자리하고 있으니까요. 새 옷을 구매하고 더 이상 손이 가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옷장 한편에 쌓아두곤 합니다. 하지만 한 벌의 옷이 만들어지고 폐기되기까지는 수많은 자원과 에너지가 필요하죠. 패션 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려면 새로운 친환경 소재를 개발하는 것만큼이나 이미 만들어진 옷을 오래 입고, 다시 활용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최근 패션 브랜드들이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수선 서비스를 통해 옷의 수명을 늘리고, 입지 않는 옷을 수거해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거나 다른 소재로 재탄생시키는 것. 지속가능한 패션을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순환 프로그램을 소개합니다.
파타고니아 | 고쳐 입는 옷의 가치 ‘원웨어’
새 옷을 사는 대신 지금 가지고 있는 옷을 오래 입는 것. 파타고니아가 ‘원웨어(Worn Wear)’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원웨어는 옷을 수선하고 관리하며 제품의 수명을 연장하는 파타고니아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인데요. 2013년부터 공식적으로 시작했으며, 국내에서는 브랜드에 관계없이 다양한 의류를 수선하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매가 닳거나 지퍼가 고장 난 옷도 간단한 수선을 거쳐 다시 일상에서 입을 수 있도록 돕죠.
수선 매장에 방문하는 것 자체가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이들을 위해 파타고니아가 2019년, 직접 찾아가는 이동식 수선 차량 서비스를 도입했습니다. 이름하여 ‘원웨어 트럭’. 차량 내부에 재봉기와 수선 장비를 갖추고 전국의 매장과 아웃도어·스포츠 행사 현장을 찾아다니며 현장에서 수선을 진행합니다. 지붕 위 태양광 패널로 재봉기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는 방식마저 브랜드의 환경 철학을 담고 있죠.
아울러 2024년 11월에는 ‘퀄리티랩’을 열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선보인 공간으로, 옷의 수명을 연장하는 일종의 품질 연구소인데요. 이곳에서는 의류를 무상으로 수선해 주는 것은 물론 수선의 기본기를 단계별로 익히는 ‘리페어 클래스’를 운영해 수선 경험이 없는 누구나 쉽게 참여해 직접 고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파타고니아 ‘원웨어’의 방향은 수선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해외에서는 고객이 사용하던 파타고니아 제품을 매입하고 상태를 확인한 뒤 다시 판매하는 중고 거래 프로그램도 운영하거든요. 제품을 판매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헌 옷이 새로운 주인을 만나도록 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죠. 다만 수선과 중고 거래가 모든 의류의 폐기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소재가 심하게 손상됐거나 수선이 어려운 제품은 재사용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파타고니아는 더 많은 옷을 만드는 대신에 이미 만들어진 옷을 최대한 오래 사용하도록 돕는 데 집중합니다. 유행이 지나거나 작은 흠집이 생겼다는 이유로 옷과 작별하지 말고, 수선을 거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어주고 싶을 때 이용해봐도 좋겠네요.
H&M | 옷장 속 잠든 옷의 다음 행선지, ‘가먼트 콜렉팅’
입지 않아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옷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이라면 H&M의 ‘가먼트 콜렉팅(Garment Collecting)’ 프로그램을 눈여겨 보세요. 2013년부터 이어온 이 프로그램은 브랜드와 관계없이 의류와 섬유 제품을 매장에서 수거해 재사용과 재활용으로 연결합니다. 참여 방법도 간단합니다. 더 이상 입지 않는 옷과 섬유 제품을 준비해 매장 내 전용 수거함에 넣으면 되죠.
수거된 옷의 행선지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다시 입을 수 있는 옷은 중고 의류로 판매해 새로운 주인을 만나거나, 재판매가 어려운 섬유는 청소용 천이나 단열재 등 다른 제품으로 재활용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용한 섬유를 다시 섬유로 만드는 재활용도 진행하죠. H&M이 공개한 2025년 자료에 따르면 수거된 의류와 섬유 가운데 63%는 재판매, 24%는 다른 용도의 재활용, 3%는 새로운 섬유로 재활용되는 방식으로 분류됐습니다.
여기서 짚어볼 부분은 새로운 섬유로 재탄생하는 비율이 단 3%라는 사실입니다. 수거된 옷 가운데 상당수는 다시 입거나 다른 용도로 활용되지만, 기존 의류를 새로운 의류의 원료로 되돌리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는 뜻이죠. 섬유마다 소재와 혼용률이 다르고, 염색과 각종 부자재가 더해져 있어 재활용에 적합한 상태로 분류하고 가공하는 과정에도 기술적 제약이 따르니까요. 다시말해, 수거함에 넣은 옷이 모두 새로운 옷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닌 셈이죠.
또한 의류 수거와 재활용 프로그램이 패션 산업의 과잉 생산과 소비 문제까지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옷을 계속 생산하면서 동시에 헌 옷을 수거하는 방식만으로는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고요. 그럼에도 입지 않는 옷이 바로 버려지지 않고 새 쓰임을 찾도록 돕는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옷장 정리와 함께 시작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이죠.
옷의 생애는 옷장을 떠난 뒤에도 계속된다
오래 입고, 다시 나누고, 새로운 쓰임을 찾는 일. 옷을 다시 입는 것 역시 새로운 소비의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지속가능한 패션은 거창한 변화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벌의 옷을 쉽게 버리지 않고 수선하는 일, 입지 않는 옷을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하는 일, 더 이상 입을 수 없는 섬유를 새로운 자원으로 활용하는 일처럼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시도들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죠.
물론 브랜드의 순환 프로그램만으로 패션 산업이 직면한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H&M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수거된 옷을 다시 섬유로 만드는 데는 여전히 기술적·경제적 한계에 부딪히고, 재활용 시스템이 활성화되더라도 끊임없이 새로운 옷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죠.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옷을 어떻게 다시 활용할 것인지 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이 만들고 소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필요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옷의 생애가 구매와 폐기 두 단계로 끝나지 않도록 옷의 두번째 쓰임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야 합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파타고니아와 H&M의 캠페인처럼 방법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으니까요. 계절이 바뀌는 지금, 옷장 속에 잠들어 있던 옷을 다시 꺼내 보는 일부터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