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택시기사의 소정근로시간 단축 합의가 최저임금법을 피하기 위한 탈법행위인지 각 합의별로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셔터스톡
택시회사가 노조와 합의해 소정근로시간을 줄였다고 해서 그 합의가 곧바로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최저임금을 피하려는 의도가 의심되더라도, 줄어든 시간이 실제 근로시간과 크게 동떨어졌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면 무효로 보는 데 신중해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물론 실제 근무형태나 운행시간은 그대로 둔 채 소정근로시간만 줄인 합의는 여전히 무효다.
대법원 제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지난 10월 1일 택시기사가 청주의 한 택시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소정근로시간 단축 합의를 무효로 본 원심을 깨고 사건을 청주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2024다279324 판결).
택시 운전대를 잡는 시간은 그대로인데 임금협정서의 근로시간만 해마다 줄었다면 "이건 최저임금을 안 주려는 꼼수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 합의가 무효가 될 수는 있다. 다만 합의마다 따로 따져야 하고, 무효라는 사정은 이를 주장하는 쪽이 증명해야 한다.
최저임금 피하려 근로시간만 줄였다면 '탈법행위'로 무효
택시기사의 최저임금 계산은 일반 근로자와 다르다.
최저임금법 제6조 제5항은 일반택시 운전기사의 최저임금에 들어가는 임금에서 '생산고에 따른 임금'을 빼도록 정하고 있다. 기사가 회사에 정해진 사납금을 내고 남은 운송수입금은 최저임금 계산에서 빠지고, 고정급만으로 최저임금을 넘겨야 한다는 뜻이다.
고정급을 올리지 않고 이 기준을 맞추는 방법은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시간당 임금은 고정급을 소정근로시간(노사가 정한 근로시간)으로 나눠 계산하기 때문에, 서류상 근로시간이 줄면 시간당 임금이 저절로 올라간다.
대법원은 이미 2019년 전원합의체 판결로 이런 방식에 선을 그었다.
실제 근무형태나 운행시간은 바꾸지 않고 소정근로시간만 줄이기로 한 합의는 최저임금법 특례조항을 피하기 위한 탈법행위로서 무효라는 것이다(2016다2451). 이번 판결도 이 법리를 그대로 확인했다.
그러나 "의심만으로는 부족"…합의마다 따로 따져야
문제는 어디까지가 탈법이냐다. 이 사건 회사가 있는 청주시에는 2010년 7월 1일부터 택시 최저임금 특례조항이 시행됐다.
회사는 노조와 합의해 하루 소정근로시간(1일 2교대 기준)을 6시간 50분에서 2010년 6시간, 2015년 4시간, 2018년 3시간 20분으로 차례로 줄였다.
2016년 1월부터 2017년 1월까지 이 회사에서 일한 기사는 이런 합의가 무효라며 최저임금에 못 미친 임금과 미지급 퇴직금을 청구했다.
원심은 기사의 손을 들어 2010년과 2015년 합의를 모두 무효로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판단을 달리했다.
대법원은 소정근로시간은 원래 노사가 자유롭게 정할 수 있으므로, 이를 탈법이라며 무효로 하려면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최저임금 회피 의도가 의심되더라도 줄어든 소정근로시간이 실제 근로시간과 규범적으로 '상당한 불일치'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면 무효로 보는 데 "신중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판단은 "개별 단축합의별로" 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구체적으로 2010년 합의는 특례조항 시행일에 맞춘 점에서 의심의 여지가 있지만, 줄인 폭이 약 12%(50분)에 그쳤고 그 시간이 5년 넘게 유지됐다.
2015년 합의는 2시간(약 33%)을 줄여 폭이 컸지만, 직전 합의 뒤 5년쯤 지나 이뤄졌고, 줄이기 전 시간을 적용해도 시간급이 이미 법정 최저임금을 넘었다.
대법원은 하루 4시간이 청주 지역 2교대 택시기사의 통상적인 하루 근로시간으로 보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봤다.
마지막 합의가 과했다고 앞선 합의까지 무효는 아니다
대법원은 2018년 합의로 줄어든 하루 3시간 20분은 실제 근로시간과 상당한 불일치가 있는 경우에 해당할 여지가 크다고 했다. 하지만 이 사정만 들어 그 전에 맺은 2010년, 2015년 합의까지 한꺼번에 무효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즉, 근로시간을 여러 번 나눠 줄였다면 마지막 숫자만 보고 "처음부터 다 꼼수"라고 할 수는 없고, 각 합의가 이뤄진 시기와 경위, 줄인 비율과 빈도, 당시 시간급과 최저임금의 차이를 하나씩 따져 봐야 한다는 뜻이다.
다만 주의할 점도 있다
이 판결로 기사의 청구가 기각된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원심을 깨고 청주지방법원에 다시 판단하라고 돌려보냈을 뿐이고, 얼마를 받을 수 있을지는 환송 뒤 재판에서 정해진다.
비슷한 처지의 택시기사라면 합의가 무효라는 사정을 기사 쪽이 증명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연도별 임금협정서, 실제 근무·운행 시간을 보여 주는 자료, 합의 당시 시간급과 최저임금의 차이를 합의마다 정리해 두는 것이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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