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AMG GT 63 4도어 쿠페가 10월 31일(현지 시간) 스페인 안달루시아 론다에 위치한 아스카리 서킷을 달리고 있다. 메르세데스-AMG 제공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스페인 안달루시아 론다에 위치한 아스카리 서킷. 기름 냄새와 우렁찬 엔진음이 어울리는 AMG가 전기차로 새로운 도전에 나선 현장이다. 앞서 거점이었던 남부지방 미하스 일대에서 약 2시간 동안 GT 55를 타고 목적지까지 이동하며 워밍업을 마친 터라 주행에 자신감도 붙은 상태였다. 하지만 막상 최고 사양인 GT 63과 마주하자 위압감이 밀려왔다.
“1000마력 통제할 수 있겠습니까?”
서킷을 두 바퀴 돌고 이어진 AMG 인스트럭터(마르셀 마르체비츠)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 어려웠다. 한국에서 서킷 주행 경험이 없는 건 아니지만 1000마력 초고성능차는 익숙하지 않았다. 차체 자세 제어 장치 개입까지 줄이거나 해제한 상태로 달려야 한다면 부담은 더 커진다.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안전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결국 인스트럭터 동승으로 차가 가진 위력을 느껴봤다. 공포스러웠던 건 차체의 움직임을 오롯이 인스트럭터의 손과 발에 의존해야 한다는 압박감이었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는 순간 차체가 맹렬하게 앞으로 튀어나갔다. 차체 움직임은 맹수의 거친 몸짓보다 유려하게 물살을 가르는 상어를 닮았다. 순간 시속 약 230㎞를 넘는 직선 구간에서는 몸이 시트에 강하게 파묻히고 뒤로 밀렸다. 단순히 빠르다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가속감이었다. 부스터 모드가 활성화되면 GT 63 최고출력은 1169마력까지 치솟는다. 이 때 60초간 최고 성능을 경험할 수 있다.
마르셀 마르체비츠 인스트럭터가 10월 31일(현지 시간) 스페인 안달루시아 론다에 위치한 아스카리 서킷에서 메르세데스-AMG GT 63 4도어 쿠페 레이스 컨트롤 유닛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정진수 기자
이번 신차에는 마법같은 3가지 레이스 컨트롤 유닛이 있다. 동승 목적도 이 기능을 활용해 운전의 재미를 극대화하는 데 있었다. ▲리스펀스(Response) ▲어질리티(Agility) ▲트랙션(Traction)이다. 운전자 의도에 맞춰 가속 반응과 차체 회전 특성, 타이어 접지력을 조절해 차량 성격을 바꾸는 기능이다. 각 버튼별로 9단계까지 다이얼을 돌려 조절할 수 있다.
리스펀스는 가속 페달에 대한 반응을 세밀하게 조절한다. 단계가 높아질수록 운전자의 발끝에 차가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낮은 단계에서는 가속이 상대적으로 부드럽게 이어지지만 높은 단계에서는 작은 페달 조작에도 즉각적으로 힘이 전달된다. 어질리티는 민첩성과 회전 특성에 관여한다. 구동력 배분과 좌우 토크 제어 등을 활용해 코너에서 차체가 움직이는 성격을 조율한다. 방향을 바꿀 때 차체 반응과 코너 탈출 움직임에 영향을 준다.
트랙션 컨트롤은 타이어 접지력을 관리해 바퀴가 헛돌거나 차체가 미끄러지는 현상을 제어하는 장치다. 이번 동승 주행에서 그 역할을 가장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인스트럭터가 설정을 최고 단계인 9단계로 높이자 전자제어 개입이 줄어든 차량은 거침없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은 듯한 움직임에도 인스트럭터는 능숙한 스티어링 조작과 가속 페달 제어만으로 차체를 안정적으로 추슬렀다. 1000마력이 넘는 출력을 전자장치 도움 없이 운전자 기술만으로 다루는 모습이 눈앞에서 펼쳐진 것이다. 드라이빙 실력으로 한계를 돌파하고 싶게 만드는 도전의 장치다.
서킷 누빈 2460㎏
무게감 잊는 민첩성
마지막 두 바퀴를 남겨두고 다시 운전석에 올랐다. 직접 운전대를 잡고 AMG GT 63 몸놀림에 더욱 집중했다. 앞선 동승 주행에서 압도적인 위력을 실감했기에 긴장과 기대가 차올랐다.
레이스 시트는 몸을 단단히 감쌌다. 강한 횡가속이 걸리는 코너에서도 몸이 좌우로 쏠리지 않도록 충분한 지지력을 제공했다. 레이싱에 최적화된 패브릭 소재 스티어링 휠 역시 손에 안정적으로 감겼다.
시승차는 전장 5094㎜, 전폭 1959㎜, 전고 1411㎜, 휠베이스 3040㎜에 공차중량은 2460㎏에 달한다. 차체 바닥에 배터리를 배치한 전기차인 데다 차체 크기도 상당하다. 메르세데스-벤츠 플래그십 세단 S클래스에 버금가는 차체 규모다. 민첩하고 날렵한 움직임을 기대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조건이다.
그러나 서킷에서 마주한 움직임은 슈퍼카를 뛰어 넘는다. 코너에 진입해 방향을 바꾸는 순간 차체가 무게에 짓눌려 둔하게 반응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 만큼 차체가 민첩하게 따라왔고, 코너를 빠져나갈 때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무게감을 잠시 잊었다.
특히 연속된 코너에서 차체 움직임이 인상적이었다. 좌우로 방향을 바꾸는 과정에서 무게중심이 급격하게 쏠리는 느낌이 크지 않았다. 배터리로 인해 무거워진 차체와 큰 차체 크기를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운전자 조향에 맞춰 차가 재빠르게 반응하는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여기에는 AMG 액티브 라이드 컨트롤 서스펜션과 반능동식 롤 안정화 기술이 역할을 한다. 코너에서 차체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현상을 억제하고 바퀴가 노면에 안정적으로 밀착하도록 돕는다. 강력한 출력만으로는 서킷을 빠르게 달릴 수 없다. 그 힘을 노면에 전달하고 차체를 제어하는 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컴포트 모드와 스포츠 플러스 모드를 차례로 복기했다. 첫 주행은 컴포트 모드였다. 고성능 전기차라고 해서 처음부터 운전자를 긴장시키지는 않았다. 가속 페달을 밟는 만큼 자연스럽게 속도가 올라갔고 코너에서도 차체는 차분하게 움직였다. 1000마력이 넘는 힘을 품은 차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할 만큼 안정적이었다. 강력한 성능을 일상적인 주행에서도 다룰 수 있도록 세심하게 조율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주행 모드를 스포츠 플러스로 바꾸자 이 차의 성격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가속 페달에 대한 반응이 한층 민감해졌다. 발끝에 힘을 조금만 줘도 차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패들 시프트를 사용하면 영락없는 내연기관 스포츠카였다. 변속 때마다 깨질 듯한 엔진음은 운전의 흥을 돋웠다. 실내를 채우는 AMG 특유의 사운드와 시트 진동까지 더해지자 긴장감이 높아졌다. 코너 진입 전 속도를 줄이고 다시 가속 페달을 밟는 과정에서도 차는 운전자의 조작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두 모드 차이는 분명했다. 컴포트가 강력한 성능을 여유롭게 다듬었다면, 스포츠 플러스는 AMG 역동적인 본능을 드러내는 얼굴이었다. 같은 차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주행 감각이 달라졌다.
메르세데스-AMG GT 4도어 폭발적인 성능은 세 개의 축방향 자속 전기모터에서 나온다. 지난 2021년 메르세데스-벤츠가 인수한 영국 ‘야사’의 작품이다. 앞쪽에 하나, 뒤쪽에 두 개를 배치해 네 바퀴를 구동하는 구조다. 축방향 자속 모터는 자기장이 회전축과 나란한 방향으로 흐르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방사형 자속 모터와 비교해 얇고 납작한 형태로 설계할 수 있다. 높은 출력과 토크 밀도를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 제한된 공간에 강력한 전기 구동계를 배치해야 하는 고성능 전기차에 적합한 기술이다.
GT 63 4도어 쿠페 최고출력은 860㎾(1169마력), 최대토크는 2000Nm에 달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4초다. 롤아웃을 적용하면 2.1초다.
인상적인 건 뒤쪽 두 개의 전기모터다. 좌우 바퀴에 전달하는 힘을 개별적으로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코너를 돌 때 바깥쪽 바퀴에 더 많은 토크를 전달하는 토크 벡터링 기술을 활용하면 차체가 방향을 바꾸는 데 도움을 준다. 코너를 빠져나갈 때도 각 바퀴의 상황에 맞춰 힘을 배분한다.
특히 앞바퀴와 뒷바퀴에 전달되는 구동력까지 정교하게 조절한다. 주행 상황에 따라 바퀴에 전달되는 힘을 실시간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운전자는 가속과 조향에 집중하지만 차는 각 바퀴의 구동력과 차체 움직임을 끊임없이 조율한다. 앞서 경험한 코너에서의 안정적인 움직임도 이런 기술이 뒷받침한 결과다.
공기 다스리는 기술
고속서 노면에 밀착
고성능차에서 동력계만큼 중요한 것이 공기역학이다. 속도가 높아질수록 차체 주변의 공기 흐름이 주행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은 커진다. 공기가 차체를 위로 들어 올리는 양력이 발생하면 타이어가 노면을 누르는 힘이 줄어든다. 반대로 공기의 흐름을 이용해 차체를 아래로 누르는 힘이 다운포스다.
메르세데스-AMG GT 4도어 쿠페에는 주행 상황에 맞춰 공기의 흐름을 조절하는 액티브 에어로다이내믹스 기술이 적용됐다. 액티브 리어 스포일러는 속도와 주행 조건에 따라 각도를 바꿔 고속 주행 안정성을 높인다. 차체 아래를 통과하는 공기는 언더보디와 디퓨저 등을 통해 관리한다.
전면 액티브 에어 패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평소에는 공기저항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동하다가 냉각이 필요하면 공기 통로를 열어 냉각 효율을 높인다. 공기저항을 줄이면서도 필요한 순간에는 냉각을 위한 공기 흐름을 확보하는 것이다.
다운포스는 속도가 높아질수록 타이어가 노면을 누르는 힘을 높여 고속 코너에서 접지력을 확보하는 데 기여한다. 강력한 모터가 만들어낸 힘을 노면에 전달하고 운전자가 조향과 가속을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 배터리 무게와 큰 차체에도 불구하고 민첩한 움직임을 보여준 배경에는 이처럼 동력계뿐 아니라 공기역학과 섀시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제어 기술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기차 이질감 없는 AMG GT
소리-진동 되살린 고성능 감성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전기차에서 AMG 특유의 엔진 사운드를 구현했다는 점이다. 전기모터는 내연기관처럼 폭발과 배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리가 없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주행이 전기차의 장점이지만, 고성능차를 운전하는 입장에서는 아쉬움으로 남기도 한다. 메르세데스-AMG는 이런 간극을 메우기 위해 기존 AMG 엔진 배기음을 녹음해 주행 상황에 맞춰 실내에 구현했다. 여기에 시트 진동까지 더해 운전자가 가속과 속도 변화를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세심하게 만들었다.
특히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서는 가속 페달을 밟을 때마다 사운드가 달라지며 주행 긴장감을 높였다. 운전자가 고성능차를 타고 있다는 감각을 적극적으로 전달하려는 시도다.
내연기관의 실제 배기음과 손색이 없었다. AMG가 오랫동안 쌓아온 V8 고성능차의 감성적 DNA를 전기차 시대에도 이어가려는 접근은 인상적이었다. 단수에 따라 달라지는 배기음도 실감이 났다. 내연기관 감성을 전기차 기술로 다시 해석한 셈이다.
::디 올 뉴 메르세데스-AMG GT 4도어 쿠페::
메르세데스-AMG AMG GT 4도어 쿠페는 800V 전기 시스템과 최대 600kW 초급속충전을 지원해 10%에서 80%까지 11분 만에 충전할 수 있다. WLTP 기준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는 AMG GT 63 4도어 쿠페 696km, 55 4도어 쿠페가 700km에 달한다. 내년 한국 출시 예정이다. 정진수 기자 brje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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