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노규민 기자] 368만명을 동원한 흥행작 '82년생 김지영'부터 지난해 연말 개봉해 260만 관객을 동원하며 침체됐던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 넣은 '만약에 우리'까지, 이제는 상업영화 시장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김도영 감독이 처음 주목 받기 시작 한 건 제15회 필름게이트 제작지원작 '저, 엉덩이만 들여놔도 될까요?'를 선보이면서다. 이렇듯 한국영화의 미래는 단편영화에서 시작된다.
신영균문화재단이 주최·주관하는 필름게이트는 예술인재 육성과 후원을 목적으로 2011년 시작한 단편영화 사전제작지원 사업이다. 가능성 있는 신진 창작자를 발굴해 자신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구현하도록 돕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기회를 제공한다. 단편영화 한 편을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영화의 미래를 짊어질 창작 인력을 키우는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매년 상·하반기 공모를 통해 제작지원작을 선정하며, 작품당 1000만원의 창작지원금을 제공한다. 2021년 하반기부터는 에르메스가 후원에 참여, 지원을 이어오고 있다.
신인 감독에게 첫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아이디어와 시나리오가 있어도 제작비와 인력, 촬영 환경 등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필름게이트는 이러한 진입 장벽을 낮추고 창작자가 자신의 영화적 언어를 실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 성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문병곤 감독이다. 필름게이트 제작지원작인 '세이프'(2013)는 제66회 칸국제영화제 단편 경쟁부문에 진출해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한국영화 최초의 칸영화제 단편 황금종려상이라는 성과였다.
작은 제작지원에서 출발한 작품이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제에서 인정받은 사례는 신진 창작자에게 주어진 기회가 얼마나 큰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후 단편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낸 창작자들이 장편영화와 다양한 영상 콘텐츠 분야로 활동 영역을 넓히는 흐름 역시 필름게이트가 주목받는 이유다.
이번 필름게이트 영화제는 오는 12월 4일부터 5일까지 이틀간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제27회부터 제29회까지 필름게이트 제작지원을 통해 완성된 단편영화 12편을 선보인다. 가족과 돌봄, 삶과 죽음부터 인공지능(AI), 디지털 환경까지 동시대의 다양한 문제를 포착한 작품이 관객을 만난다.
특히 이번 행사에서는 필름게이트 출신 김도영 감독 특별전이 마련 돼 관심을 끌고 있다. 제15회 제작지원작인 단편영화 '저, 엉덩이만 들여놔도 될까요?' 상영과 마스터클래스 GV를 통해 단편에서 장편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온 감독의 창작 여정을 돌아본다.
이번 영화제 상영작은 소재와 장르 면에서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제28회 필름게이트 제작지원작 '동짓날'은 치매라는 현실적인 소재를 좀비 장르와 결합해 가족 사이에 쌓인 사랑과 원망을 들여다본다. '달집태우기'는 고령화 사회에서 변화하는 가족관계의 현실을 섬세하게 조명한다. 화상통화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교사와 수강생의 이야기를 담은 '하나코'는 현대사회 곳곳에 내재한 불안과 분노를 공포극으로 펼쳐낸다. '승인이 필요합니다'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성찰하며 존재의 의미를 되짚는다.
제29회 제작지원작 6편은 더욱 다양한 사회적 질문을 던진다. 베트남 호찌민을 배경으로 탈북민의 삶을 그린 '덤불 사이를 헤치고'와 숨 쉬는 공기에도 세금을 부과하는 미래 사회를 그린 '질식'은 서로 다른 세계관 속에서 생존의 문제를 다룬다.
'반함'은 딸을 잃은 장례지도사가 교통사고 가해자의 장례를 맡게 되면서 마주하는 상실과 죄책감, 용서와 화해의 과정을 담아낸다.
기술과 미디어가 바꿔놓은 일상을 포착한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자신의 연기 데이터를 AI에 넘긴 무명배우의 이야기를 담은 'IA'는 연기의 주체가 누구인지 질문을 던진다. 중요한 미팅을 앞두고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동시통역가가 AI에 통역을 맡기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그린 '사토씨와 오전미팅'은 기술 의존도가 높아진 사회의 모습을 유쾌하게 비튼다. 숏폼 영상에 빠진 사람들의 일상을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풀어낸 '난난난리자베스'도 상영작에 이름을 올렸다.
여기에 증오와 동경이라는 양가적 감정을 섬세하게 다룬 제27회 제작지원작 '불길'도 관객을 만난다. 각기 다른 소재와 형식을 지닌 작품들은 신진 창작자들이 동시대의 문제를 어떤 시선과 영화적 언어로 해석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한편 김도영 감독 특별전은 영화제 하이라이트 중 하나다. 김 감독은 제15회 필름게이트 제작지원작 '저, 엉덩이만 들여놔도 될까요?'를 통해 주목받은 뒤 장편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비롯해 '만약에 우리', '인턴' 등으로 작품 세계를 넓혀왔다. 이번 특별전은 단편영화라는 출발점에서 장편 상업영화 연출자로 활동 영역을 확장한 그의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다.
단편 상영 이후 진행되는 마스터클래스 GV에서는 작품을 구상하고 완성하기까지의 과정부터 창작 현장에서 마주한 고민과 도전, 단편과 장편 연출의 차이 등을 관객과 나눌 예정이다. 필름게이트 지원을 통해 창작의 첫발을 내디딘 감독이 후배 창작자들과 경험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전망이다.
뉴스컬처 노규민 pressgm@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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