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섭의 시선N] 무형유산의 명맥, 청년 사명감에만 맡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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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섭의 시선N] 무형유산의 명맥, 청년 사명감에만 맡길 것인가

뉴스컬처 2026-11-05 06:34:2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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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무형유산은 사람을 통해 이어지는 문화유산이다. 오랜 시간 익힌 기술과 예능, 세대를 거쳐 축적된 경험은 다음 세대에 전달될 때 생명력을 유지한다. 그러나 전승 현장에서는 고령화와 후속 세대 부족이라는 문제가 누적되고 있다. 기술을 보유한 사람은 나이가 들어가고, 이를 이어받을 청년은 충분히 확보되지 않는 현실이다. 전승 단절이 우려되는 종목이 늘어날수록 국가의 보존 정책도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받는다.

무형유산 보존은 지정과 기록, 전승교육이 함께 작동해야 가능한 일이다. 전통공예의 제작 기술은 재료를 다루는 감각과 오랜 숙련을 요구하고, 음악과 무용은 반복적인 수련을 거쳐야 전문성을 갖출 수 있다. 의례와 놀이는 공동체의 참여와 실제 경험을 통해 전해진다. 기술과 예능에 담긴 경험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려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교육 현장이 지속돼야 한다.

사진=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된 이미지
사진=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된 이미지

전승 기반이 약해지는 원인은 고령화에만 있지 않다. 청년들이 무형유산 분야에 진입하고 활동을 이어가기 어려운 경제적 여건도 영향을 미친다. 상당한 기간 기술을 익혀야 하지만 수련 과정에서 안정적인 소득을 확보하기 어렵고, 교육을 마친 뒤에도 지속적인 활동 기회가 제한적이다. 전승을 직업으로 선택하려는 청년에게는 장기적인 생계와 진로 설계가 중요한 현실적 과제로 남는다.

전승교육의 성과도 이수자 배출에서 활동 지속 여부로 평가 범위를 넓혀야 한다. 교육을 마친 청년이 실제 전승 현장에 참여하는지, 숙련도를 높일 기회를 얻는지, 장기적으로 해당 분야에서 활동하는지 살펴야 한다. 교육 인원 확대와 함께 이수 이후의 경력 관리, 활동 기회 제공이 정책에 포함돼야 후속 세대 양성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숙련 전승자가 보유한 기술과 경험을 후속 세대에 전달할 시간은 제한적이다. 고령 전승자가 직접 가르치고 작업 과정을 보여줄 수 있을 때 교육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기술과 구술 자료를 체계적으로 기록하는 작업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기록은 전승자의 경험을 보존하는 중요한 자료이며, 실습과 도제식 교육은 그 기록에 담기 어려운 감각과 숙련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국가유산청은 청년 전승자의 정책 참여를 확대하고 전승·교육 지원, 무형유산을 활용한 창업·취업 프로그램, 대중화와 홍보 등을 추진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과 문화콘텐츠 융복합을 통해 청년세대의 창의적인 시각을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구상도 담겼다. 청년을 정책의 수혜자에서 전승과 활용의 주체로 확대하려는 시도다.

이러한 정책이 현장의 변화로 이어지려면 청년 전승자의 제안을 실제 사업과 예산에 반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책 참여 기회 확대와 함께 제안의 수용 여부, 관련 사업의 추진 결과를 공개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청년들의 의견이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고 그 결과가 전승 현장에 전달되는 구조를 갖춰야 정책 참여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

우선 수련 기간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지원이 필요하다. 전승교육에 필요한 비용을 보조하고 일정 기간 안정적으로 기술을 익힐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생계를 위한 별도 노동과 장기간의 수련을 병행하는 청년에게 경제적 지원은 전승 활동의 지속성을 좌우하는 조건이다. 전승자를 양성하는 데 공공의 책임과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교육 이후의 활동 기반도 마련해야 한다. 공연과 전시, 교육 프로그램, 전통기술을 활용한 제작 활동 등 청년 전승자가 전문성을 발휘할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공공기관과 문화시설의 관련 사업에 전승자의 참여를 늘리고 지역 문화사업과 연계해 지속적인 활동 수요를 만드는 방안도 필요하다. 일회성 행사 참여를 넘어 경력을 쌓고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이 요구된다.

무형유산의 산업적 활용은 전승자의 경제적 자립과 연결될 때 지속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전통기술을 활용한 문화상품과 디지털 콘텐츠, 관광 프로그램은 새로운 시장을 형성할 가능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 전승자의 전문성과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고 정당한 수익 배분을 보장해야 한다. 콘텐츠 제작과 상품 개발에 전승자가 직접 참여하는 구조도 중요하다.

종목별 여건에 맞춘 지원도 필요하다. 전통공예는 재료와 작업 공간, 판로 확보가 중요하고 공연예술은 연습 공간과 무대, 출연 기회가 절실할 수 있다. 전승 인력이 부족한 종목에는 후속 교육과 인력 확보를 우선하고, 교육 기반은 있지만 활동 시장이 취약한 분야에는 일자리와 판로 지원을 연계해야 한다. 종목별 실태를 바탕으로 지원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지역 전승 기반을 유지하는 일도 중요하다. 무형유산 상당수는 특정 지역의 생활문화와 공동체 활동 속에서 형성되고 전해져 왔다. 전승자가 지역을 떠나거나 관련 활동 공간이 사라지면 교육과 실연 기회도 함께 줄어들 수 있다. 지역 문화시설과 교육기관, 전승단체가 협력해 청년이 거주 지역에서 배우고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정책 성과를 확인하는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전승교육 참여자와 이수자 수, 지원 사업의 규모만으로는 현장의 변화를 충분히 파악하기 어렵다. 교육 이후 활동 지속률과 청년 전승자의 소득, 일자리, 종목별 후속 인력 확보 현황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 전승 중단 사례와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다음 연도 사업과 예산에 반영하는 체계도 필요하다.

무형유산의 대중화는 전승 현장에 실질적인 수요를 만드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 공연과 전시,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전통기술과 예능을 접한 관객이 교육과 상품 소비, 지속적인 문화 활동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대중의 관심이 전승자의 활동 기회와 경제적 기반으로 이어질 때 보존 정책도 사회적 효과를 확보할 수 있다.

진도다시래기 전승교육사 강민수. 사진=국립국악원
진도다시래기 전승교육사 강민수. 사진=국립국악원. 본문 내용과 무관.

전승 위기는 숙련자 감소와 교육 기반 약화, 청년의 활동 중단이 누적되면서 나타난다. 따라서 사후 복원보다 예방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숙련 전승자가 활동하는 동안 후속 인력을 확보하고, 종목별 교육 체계를 유지하며, 청년이 안정적으로 진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시급하다.

무형유산을 지키는 책임은 청년의 사명감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전통을 이어가려는 의지가 직업적 미래와 생활의 안정으로 연결돼야 한다. 국가가 교육과 생계, 활동 기회를 함께 지원하고 전승자의 전문성이 사회에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도록 해야 한다.

전승자를 키우는 정책에서 전승자가 현장에 남을 수 있도록 돕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무형유산의 가치는 지정 종목의 숫자나 보존 사업의 실적보다 다음 세대가 실제로 기술을 익히고 활동을 이어가는 데서 증명된다. 청년 참여 확대가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려면 전승을 선택한 사람이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마련해야 한다. 국가유산 정책의 책임도 바로 여기에 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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