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1950년대 동유럽에서 사랑을 키운 북한 청년들이 있었다. 전쟁의 상처를 뒤로하고 유학길에 오른 이들은 낯선 땅에서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현지 여성들과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개인의 행복은 국가의 명령 앞에서 무너졌다. 갑작스러운 귀국 조치와 정치적 탄압으로 연인과 가족이 헤어졌고, 일부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대신 망명을 선택했다.
KBS1 '다큐 인사이트'가 5일 방송하는 '소피아의 연인, 평양 러브레터'는 70여 년 전 북한과 동유럽 사이에서 벌어진 사랑과 이별을 추적한다. 오래된 편지와 사진, 각국 문서보관소에 남은 자료를 통해 당시 북한 유학생들의 삶과 이후 가족들이 겪은 시간을 들여다본다.
독일에 남겨진 마리온의 이야기는 이별의 시작을 보여준다. 1959년 동독에서 송제환을 만난 그는 연인과 가정을 꾸리고 딸을 낳았다. 두 사람은 둘째 아이의 탄생도 기다리고 있었지만, 송제환에게 갑작스러운 북한 귀국 명령이 내려왔다. 병원에 입원해 있던 마리온은 남편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
1962년 북한으로 떠나기 전 송제환은 마리온에게 애틋한 편지를 남겼다. 이후 두 아이를 홀로 키운 마리온은 평양에서 오는 소식이 끊긴 뒤에도 오랜 세월 그를 기다렸다. 다큐멘터리는 편지에 남겨진 두 사람의 약속과 긴 세월 이어진 그리움을 따라간다.
개인의 사랑을 가른 배경에는 1956년 사회주의권의 정치적 격변이 있었다. 소련공산당 제20차 당대회에서 니키타 흐루쇼프가 스탈린의 폭압 정치를 비판했고, 같은 해 헝가리에서는 민주화 혁명이 일어났다. 북한에서도 김일성의 권력에 반발한 세력이 8월 종파 사건을 일으켰다. 동유럽에 머물던 북한 유학생들은 정치적 검증과 귀국 압박에 직면했다.
당시 유학생 가운데는 북한으로 돌아가는 길을 거부한 이들도 있었다. 헝가리 혁명에 참여해 총을 들었던 의학도 최인환은 혁명 이후 해외로 탈출해 서독에서 대한민국 여권을 발급받았다. 불가리아 국립문서보관소에는 이장직·이상종·최동준·최동성 네 사람이 작성한 망명 선언서가 보관돼 있다. 이들은 김일성 개인숭배와 정치적 탄압을 비판하며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망명을 택한 이들의 삶에도 사랑과 가족의 역사가 남았다. 이장직은 불가리아 여성 코프린카와 가정을 꾸렸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코프린카는 지금도 한국 배추를 기르고, 과거 함께 담갔던 김치와 깍두기를 추억한다. 자유를 선택한 청춘들은 새로운 삶을 꾸렸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을 감내해야 했다.
이들의 역사는 자녀 세대에도 이어진다. 독일에서 북한 유학생의 딸로 태어난 리아나 강은 아버지가 그리워했던 고향을 찾아 나선다. 한국에서 만난 탈북민 남율주 씨 역시 동유럽 유학생의 가족사와 맞닿아 있다. 남율주 씨의 아버지는 불가리아에 가족을 남겨둔 채 북한으로 돌아갔으며, 남율주 씨는 훗날 어린 아들을 북한에 두고 탈북했다.
서로 다른 국가에서 살아온 두 사람의 만남은 북한 유학생들의 선택이 후손에게 남긴 가족사를 보여준다. 국경과 이념, 정치적 명령으로 헤어진 가족들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서로를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다.
'소피아의 연인, 평양 러브레터'는 개인의 사랑과 가족의 역사를 통해 냉전 시대 북한 청년들이 겪은 이산과 망명, 귀환의 역사를 조명한다. 5일 오후 10시 KBS1 방송.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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