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2년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으로 3일(이하 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이 연방 상·하원 다수당 지위를 동시에 탈환하는 대승을 거뒀다. 미 야당이 상·하원을 한꺼번에 싹쓸이한 것은 2006년 이후 20년 만이다.
특히 공화당의 텃밭인 텍사스주에서 민주당 후보가 주지사에 당선되는 등 미 전역에서 '블루 웨이브'가 현실화됐다.
민주당은 의회 권력을 탈환하면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 국정 독주를 저지·차단하겠다고 공언해 온 만큼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2년여를 남기고 급속한 레임덕에 빠져들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그간 시행해온 일방적 대내외 정책뿐 아니라 자신과 가족, 측근들에 대한 의회의 전면 조사와 견제, 감시 속에 최악의 임기 후반기를 마주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미 간 주요 안보 현안에도 영향이 불가피해졌다. 그간 트럼프 행정부와 직접 추진해 오던 주요 안보 과제에 대해 미 의회의 견제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의 승리가 예상되자 '불복'하지 않고 곧바로 승복했다. 그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민주당과 협력할 것이며, 협력을 고대한다. 우리는 아마도 뭔가 합의를 이뤄낼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상·하원 동시 석권' 압승… 20년 만에 여소야대 재편
하원 최소 244석·DDHQ 254석 확보 전망
상원 7대 경합지 중 5곳 민주당 승리
미 NBC와 ABC, CBS, CNN 등 주요 언론들은 미 동부시간 기준으로 개표가 한창 진행되던 3일 오후 10시를 조금 넘긴 시각,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을 차지할 것이라는 예측 보도를 일제히 타전했다. 이어 오후 11시 30분경에는 상원마저 민주당의 손에 들어갔다는 예측 결과를 속속 발표했다.
당초 예상되었던 팽팽한 접전이나 미세한 우세의 '블루 웨이브(Blue Wave)' 수준을 넘어, 민주당이 공화당 텃밭을 대거 휩쓰는 '블루 쓰나미(Blue Tsunami)'가 현실화됐다는 평가다.
전체 435석 중 과반인 218석을 얻으면 승리하는 연방 하원 선거에서 민주당은 매직넘버를 크게 뛰어넘었다. NBC 뉴스는 민주당이 최소 244석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했으며, 미 선거전문 예측기관 '디시전 데스크 헤드쿼터(DDHQ)'는 민주당의 하원 의석수가 254석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당초 치열한 혈전이 예상됐던 상원 역시 개표 초반부터 민주당의 예상 밖 선전이 이어지며 일찌감치 승부가 갈렸다.
민주당은 선거 막판 경합지로 꼽힌 7개 주에서 공화당이 현역인 6개 주 가운데 알래스카를 제외한 5개 주를 휩쓸었다.
기선 제압의 결정적 분수령은 공화당의 '경합 우세' 지역으로 분류되던 사우스캐롤라이나였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 선거에서 민주당 애니 앤드루스 후보가 공화당 달린 그레이엄 후보를 누르는 대이변을 연출하면서 판세가 민주당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이어 상원 승패를 가를 최대 쟁점 지역이었던 텍사스주의 제임스 탈라리코 후보를 비롯해 오하이오주 셰러드 브라운, 캔자스주 애덤 해밀턴, 아이오와주 조시 투렉, 메인주 트로이 잭슨 등 민주당 후보들의 당선 예측이 순차적으로 잇따랐다.
텍사스는 1988년 이후로, 캔자스는 1932년 이후로 민주당 상원의원이 배출된 적이 없던 지역이다. 특히, 오하이오는 공화당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JD 밴스 부통령이 직전 상원의원을 지낸 곳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은 오하이오 수성을 위해 여러 차례 이곳을 지원 방문했지만 공화당이 패배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민주당은 아직 개표가 완료되지 않은 미시간, 알래스카 등 남은 경합주의 결과와 상관없이 상원 과반 의석인 51석을 조기에 확정 지었으며, 최소 53석 이상을 확보할 것으로 집계됐다.
민주당은 뉴햄프셔, 매사추세츠, 로드아일랜드, 뉴저지, 델라웨어, 버지니아, 조지아, 일리노이, 미네소타, 콜로라도, 뉴멕시코, 오리건, 미네소타 상원의원을 확보할 것으로 예측됐다.
공화당은 웨스트버지니아, 켄터키, 테네시, 앨라배마, 플로리다, 아칸소, 오클라호마, 사우스다코타, 와이오밍 상원의원을 확보할 것으로 예측됐다.
'텍사스·캔자스·남부 텃밭' 붕괴된 공화당… 미 정치 지형 뒤흔든 '블루 쓰나미'
이번 중간선거 결과는 단순한 의석수 배분을 넘어 전통적 공화당 '아성'의 연쇄 붕괴라는 점에서 미 정치권에 거대한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공화당에게 가장 치명적인 곳은 텍사스다. 텍사스는 1988년 이후 단 한 번도 민주당 상원의원을 배출한 적이 없는 공화당의 핵심 지역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정치 신예 제임스 탈라리코 후보가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낙점하고 지원했던 공화당 후보를 꺾는 '돌풍'을 일으키며 상원 입성에 성공했다.
1932년 이후 거의 100년 가까이 공화당 깃발만 꽂혔던 캔자스에서도 민주당 애덤 해밀턴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됐다. 미 정치권에서는 선거 막판 캔자스가 경합지로 분류된 것 자체를 이변으로 봤으나, 실제 개표 결과는 수십 년 만의 공화당 대패로 귀결됐다.
미 남부의 짙은 보수 색채를 가진 이른바 '딥 사우스(Deep South)'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도 민주당의 교두보 확보가 현실화됐다. 2000년대 이후 민주당 상원의원이 없었던 이곳은 올해 급작스럽게 사망한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린지 그레이엄 전 의원의 지역구였으나, 이번 선거를 통해 민주당 손으로 넘어갔다.
하원 선거 역시 '미 정치 민심의 바로미터'로 평가받는 켄터키 제6선거구를 포함해 텍사스, 미시시피, 앨라배마, 캔자스, 네브래스카, 미주리 등 보수 강세 지역 전역에서 민주당의 '파란 물결'이 넘쳐나며 압승을 거뒀다.
외신들은 양극화가 극심했던 미 정치 지형에서 민주당이 보수 진영의 핵심 안방에 성공적으로 교두보를 다졌다고 평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중간선거 결과에 대해 "민주당이 상·하원뿐 아니라 보수 성향 주정부와 주의회 내 공화당 장악력에 심대한 균열을 가져왔다"며 "한 세대에 한 번 올 법한 결정적 기회를 잡았다"고 분석했다.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 참패를 당한 공화당 내부에서는 심각한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트럼프 브랜드의 유효기간이 끝났다'는 진단이 확산하고 있다.
사실상 '트럼프 원맨쇼'로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하고 집권 2기 국정 동력의 마중물로 삼으려 했던 후보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다. 이는 무당층은 물론 공화당 지지층 내부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과 강경 노선에 대한 반감이 상당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양원 탈환' 민주당, 트럼프 행정부 전방위 압박
'초레임덕' 트럼프, 거부권 행정명령 등 '비상 플랜' 전망
민주당이 20년 만에 의회 권력을 완벽히 재장악함에 따라, 향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일방통행식 대외 및 통상 정책에 강력한 브레이크가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먼저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분야는 트럼프표 관세 및 조세 정책이다. 민주당은 무역 관련 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미 경제에 미친 영향을 정밀 검증하는 한편, 대통령에게 광범위하게 위임된 관세 부과 권한을 제한하는 법률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규모 감세안과 연방정부 예산·국가부채 한도 협상에서도 민주당의 발언권이 대폭 강화된다.
특히 상원 다수당 지위 확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에 치명상이다. 장관, 연방 판사, 주요국 대사 등 행정부·사법부 고위직 인준 권한을 갖는 상원에서 민주당이 청문회 검증을 강화하거나 청문 절차를 지연시킬 경우, 행정부 후속 인선과 사법부 지형 개편은 사실상 마비된다.
의회 조사권을 활용한 사정 칼날도 백악관을 겨누고 있다. 민주당은 하원 상임위를 동원해 트럼프 일가의 사업 이해충돌 의혹, 강경 이민자 추방 정책, 행정부의 예산 임의 집행 등을 송곳 검증하겠다고 예고했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들에 대한 청문회 소환과 내부 자료 제출 요구도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전쟁부) 장관 등 핵심 충성파 각료들에 대한 탄핵 소추 카드까지 거론된다. 차기 하원 감독위원회 위원장으로 유력한 로버트 가르시아 의원은 이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지금 즉시 변호사를 선임하라"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남겼다.
이에 맞서 트럼프 대통령은 주요 방송 인터뷰를 통해 "민주당이 주도해 넘겨오는 모든 국정 저해 법안에 거부권(Veto)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미 헌법상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하고 법안을 최종 확정하려면 상·하원 모두에서 각각 3분의 2 이상의 찬성표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민주당이 양원 다수당이라 할지라도 트럼프 대통령의 거부권 벽을 쉽게 넘어서기는 어렵다.
아울러 백악관은 의회의 입법 봉쇄에 대비해 대통령의 독자적 행정 권한을 총동원하는 '비상 국정 운영 구상'을 본격 가동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백악관은 스티븐 밀러 부비서실장과 러셀 보트 예산관리국(OMB) 국장 등을 축으로 관세, 이민, 주거, 연방 지출 등 핵심 정책 분야에서 의회 승인 없이 즉시 단행할 수 있는 행정명령과 지침을 세밀히 검토해 왔다.
의회의 입법 동력이 완전 마비되더라도 법률이 허용하는 행정부 재량권과 기존 예산 재배정 권한을 극대화해 국정 기조를 밀어붙이겠다는 전략이어서, 입법부와 행정부 간의 법적·정치적 충돌은 최고조에 달할 전망이다.
트럼프, 중간선거 패배 사실상 인정… "선거 결과 수용, 민주당과 협력할 것"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야당인 민주당이 연방 상·하원을 동시 석권할 것이 확실시되자 사실상 패배를 인정하고 민주당과의 협력 의사를 전격 밝혔다.
3일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밤 10시 30분경 진행된 전화 인터뷰에서 "(중간선거) 결과를 전적으로 수용할 의향이 있다"며 "우리는 민주당과 협력할 것이며, 협력을 고대한다. 아마도 양당 간에 무언가 합의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발언은 공화당의 참패와 야당의 양원 장악이라는 개표 윤곽이 드러난 직후 나온 것으로,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처음 맞이하는 '여소야대' 정국을 받아들이겠다는 공식 표명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대표적 보수 강세 지역이었던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상원의원 선거 결과를 콕 집어 언급했다. 그는 공화당 달린 그레이엄 후보의 패배에 대해 "달린이 졌다. 놀라울 따름"이라며, 지난 7월 사망한 자신의 최측근 린지 그레이엄 전 상원의원의 이름을 끌어올려 "린지가 출마했었다면 승리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과 수용 선언과 별개로,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결과에 따른 정치적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당과의 거리두기'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플랫폼 '트루스소셜(Truth Social)'을 통해 "나는 이번 투표용지에 없었다. 만약 내가 출마했다면 우리는 압승을 거두었을 것"이라며 패배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후보 개인의 경쟁력 부족으로 돌렸다.
백악관 당국자 역시 취재진을 만나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적극 두둔했다. 백악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투표용지에 없었다. 그가 직접 출마할 때 트럼프 지지층이 결집한다는 점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라며 "이번 선거는 후보 개개인의 자질이 중요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들 본인보다 더 효과적으로 그들을 홍보해 줬다"고 강조했다.
美 의회 견제력 강화… 한미 안보 협의 구도 한층 복잡해져
한미, 원전 연료 농축·재처리 및 핵잠수함 획득·전작권 전환 논의에 영향
이번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연방 하원 다수당 지위를 탈환함에 따라 한미 간 주요 안보 현안 협의 구도에 '미국 의회'라는 새로운 변수가 생기게 됐다.
4일 외교 당국은 미 중간선거 결과에 촉각을 곤두시키며 한국의 원자력발전 연료 농축·재처리 권한 확보, 핵추진 잠수함 획득 등 한미 안보 협의를 비롯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논의에 미칠 파장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파격적 외교 스타일과 행정부 간 직접 대화에 중점을 두고 주요 안보 과제를 추진해 왔던 한국 외교 당국은 미국 의회의 견제가 강화된 한층 복잡해진 협의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다만 한미 안보 협의가 기본적으로 양국 행정부 간 사안이자 정상 간 합의인 만큼 선거 결과로 인해 당장 큰 틀이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러나 중간선거에 이르기까지 한미 안보 현안 논의의 진척 속도가 더뎠다는 점은 향후 부담 요소다. 한미 안보 협의는 지난해 정상회담 이후 지난 6월 단 한 차례 실무 회의만 열렸을 뿐 추가 소식이 없는 상태다. 중간선거 전 실무 차원의 성과를 축적하지 못한 상황에서 의회 지형이 재편됨에 따라 추진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민주당이 주도하는 의회의 견제권 행사는 한국 외교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글로벌 안보 전략과 직결된 전작권 전환 문제 역시 미 의회의 검증 강화라는 변수를 맞이할 수 있다. 전작권 전환이 기본적으로 미국의 동북아 지역 전략 시스템에 맞춰 움직인다 하더라도, 트럼프 행정부와 대립하는 민주당 주도 의회가 별도의 검증 장치를 도입할 경우 '임기 내 전환'을 목표로 하는 한국 정부의 구상에도 속도 조절이 불가피할 수 있다.
중간선거 참패로 국내 정치적 입지가 좁아진 트럼프 대통령이 대외적으로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한국 등 동맹국을 향해 '비용 분담' 압박을 강화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아울러 소수당으로 전락한 공화당 내 강성 '마가(MAGA)' 세력이 경제·통상 분야를 중심으로 한국 때리기에 나설 위험도 존재한다. 쿠팡 사태처럼 한미 간 갈등을 유발했던 미 의회발 불협화음이 더 거세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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