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프로축구 2부리그 경기 도중 상대 골키퍼와 부딪혀 쓰러진 공격수가 끝내 사망했다. 전 세계 축구계가 슬픔에 잠긴 가운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알나스르), 리오넬 메시(인터 마이애미), 킬리안 음바페(레알 마드리드) 등 슈퍼스타는 물론 이강인(아틀레티코 마드리드)과 한국 축구대표팀 로베르트 모레노 임시 감독까지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스페인 축구선수 헤수스 데 미겔을 추모하며 경기장에 놓인 국화꽃 / CD 테네리페 공식 인스타그램
CD 테네리페는 3일(현지 시각) 공식 성명을 내고 공격수 헤수스 데 미겔이 이날 오전 8시 숨을 거뒀다고 발표했다. 향년 30세. 구단은 "고통으로 가슴이 찢어진다.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다"며 유가족과 친지, 팬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했다.
◇ 경기 종료 앞두고 벌어진 비극...상대 골키퍼 무릎에 가슴 맞고 쓰러져
사고는 지난 2일 테네리페 홈구장 헬리오도로 로드리게스 로페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라리가2(2부리그) 테네리페와 FC 안도라의 경기에서 일어났다. 양 팀이 2-2로 맞선 후반 추가시간, 테네리페가 결승골을 노리고 최전방으로 길게 띄운 공을 향해 데 미겔이 전력으로 내달렸다.
반대편에서는 안도라 골키퍼 헤수스 오워노가 공을 먼저 걷어내기 위해 골문을 비우고 하프라인 부근까지 뛰쳐나왔다. 공을 사이에 두고 마주 달려든 두 선수는 정면으로 부딪혔고, 이 과정에서 오워노의 무릎이 데 미겔의 가슴 부위를 강하게 가격했다.
가슴을 움켜쥔 채 무릎을 꿇은 데 미겔은 그대로 뒤로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선수들이 다급하게 의료진을 불렀고, 의료진은 그라운드에서 수 분간 응급처치를 이어갔다. 동료들은 눈물을 쏟았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관중석에서는 데 미겔의 아내와 두 살배기 딸도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주심은 오워노에게 곧바로 레드카드를 꺼냈다. 퇴장 판정을 받고 그라운드를 빠져나가던 오워노는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발길을 돌려 쓰러진 데 미겔 쪽으로 향했다. 경기는 곧바로 중단됐고, 데 미겔이 들것에 실려 나가는 동안 관중석에서는 그를 응원하는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경기 도중 골키퍼와 충돌한 뒤 끝내 사망한 축구선수 헤수스 데 미겔 / CD 테네리페 공식 인스타그램
◇ "위중하지만 안정적" 발표 하루 만에 날아든 비보
비극은 경기장 밖에서도 이어졌다. 스페인 매체들에 따르면 데 미겔은 병원으로 향하던 구급차 안에서 심정지를 일으켰다. 구급대원의 심폐소생술로 맥박은 되찾았고, 곧바로 칸델라리아 대학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경기 직후 테네리페는 데 미겔의 상태가 위중하지만 안정적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신경학적 상태가 악화됐다고 정정했고, 다음 날 아침 끝내 사망 소식을 전했다. 정확한 사망 원인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으며, 그가 기저 질환을 앓고 있었다는 보도도 나오지 않았다.
1996년 마드리드에서 태어난 데 미겔은 2015년 레가네스 B팀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스페인 하부리그 여러 팀을 거치며 차곡차곡 경력을 쌓았고, 카스테욘을 거쳐 2025년 테네리페 유니폼을 입었다. 이적 첫 시즌 11골을 터뜨리며 팀의 주축 공격수로 자리 잡았지만 안타까운 사고로 팬들 곁을 떠나게 됐다. 유족으로는 아내와 어린 딸이 있으며, 고인의 시신은 유가족의 뜻에 따라 톨레도주 나바에르모사로 옮겨질 예정이다.
경기장에 국화꽃을 놓으며 헤수스 데 미겔 사망을 추모하는 구단 관계자들 / 유튜브 'CD Tenerife'
◇ 호날두·메시·음바페에 이강인·모레노까지…축구계 추모 물결
비보가 전해지자 테네리페 홈구장 앞에는 팬들이 놓고 간 꽃다발과 촛불이 쌓이기 시작했다. 수백 명의 팬이 경기장 앞에 모여 함께 슬픔을 나눴다.
세계적인 스타들도 잇따라 애도의 메시지를 내놨다. 호날두는 자신의 SNS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타까운 비극"이라며 유가족이 힘을 내길 바란다고 적었다. 메시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인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애도를 표하고 그가 평화롭게 잠들길 기원했다. 음바페 역시 "너무나 큰 슬픔이다. 할 말을 잃었다"는 글을 남겼다.
한국 축구와 관련된 인물들도 추모에 힘을 보탰다. 올여름 파리 생제르맹(PSG)을 떠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하며 다시 스페인 무대를 밟은 이강인은 SNS에 고인의 사진과 검은 리본을 올리고 스페인어로 "편히 쉬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강인이 SNS에 올린 헤수스 데 미겔 사망 추모 게시물 / 이강인 인스타그램
스페인 출신인 모레노 감독도 "데 미겔의 유가족과 친구들, 테네리페 구단, 그리고 스페인 축구계 전체에 진심 어린 애도와 조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바르셀로나 수석코치와 스페인 대표팀 감독을 지낸 모레노 감독은 지난 9월 한국 대표팀 임시 사령탑에 올랐다.
축구 단체들도 추모에 나섰다. 스페인축구협회(RFEF)는 "참담한 심정으로 가장 깊은 슬픔을 전한다"는 성명을 내고 3일 예정돼 있던 코파 델 레이(국왕컵)와 여자부 코파 데 라 레이나 경기를 연기했다. 유럽축구연맹(UEFA)은 이번 주 열리는 유럽클럽대항전 경기에 앞서 추모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실제로 한국시간 4일 새벽 열린 챔피언스리그 경기들에 앞서 선수들이 센터서클에 도열했고, 선수단과 관중은 묵념으로 고인을 기렸다.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도 훈련 시작 전 묵념하며 애도에 동참했다.
스페인축구선수협회(AFE)도 성명을 통해 데 미겔이 선수 권익 활동에도 헌신했던 동료였다며 그를 영원히 가족으로 기억하겠다고 밝혔다. 테네리페 구단의 펠리페 미냠브레스 회장은 선수단과 그 가족들이 이번 일을 극복하려면 심리적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며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 '살인자' 비난에 SNS 닫은 골키퍼…경찰은 과실치사 여부 조사
충돌 당사자인 오워노를 향한 비난도 거세다. 경기 당시부터 홈 관중석에서는 "살인자"라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 한 테네리페 팬은 현지 방송 인터뷰에서 "이건 사고가 아니다. 축구가 아니라 종합격투기에서나 나올 장면"이라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2001년생 적도기니 국가대표인 오워노의 SNS에는 '살인자'라는 비난과 인종차별적 욕설, 협박성 메시지가 쏟아졌고, 결국 그는 계정을 폐쇄했다. 안도라 구단 공식 계정에도 비슷한 댓글이 줄을 이었다. 성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협박 메시지를 받은 한 하부리그 선수가 "나는 헤수스 오워노가 아니다"라는 해명 글을 올리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졌다.
오워노 본인도 큰 충격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매체들은 그가 경기 직후 라커룸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고, 유가족에게 직접 사과의 뜻을 전하고 싶어 했다고 전했다. 스페인 매체 아스는 오워노 주변 인물들을 인용해 상대를 다치게 하려는 의도적 행위가 결코 아니었다고 보도했다. 안도라 구단 역시 고의성이 없었다는 입장을 밝히며 오워노의 심리 상태를 각별히 살피고 있다. 오워노는 아직 공개적인 발언을 하지 않고 있다.
안도라 선수단의 귀국길도 무거웠다. 선수들은 2일 밤 테네리페를 떠나 바르셀로나를 거쳐 버스로 안도라에 돌아가는 내내 데 미겔의 상태를 전하는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현지 매체들은 그중 가장 크게 흔들린 사람이 오워노였다고 입을 모았다. 아스는 그를 아는 이들이 오워노를 다정하고 사려 깊은 사람으로 평가한다고 덧붙였다.
스페인 국가경찰은 과실치사 가능성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다만 카나리아제도 사법 당국은 자연사가 아닌 사망 사건에 대해 통상적으로 밟는 절차라고 설명했다. 산타크루스 데 테네리페 수석검사도 경기 중 벌어진 충돌인 만큼 형사 절차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견해를 내놨다.
징계 문제도 남아 있다. 스페인 일간 마르카에 따르면 스페인축구협회 징계 규정상 경기 중 폭력적 행위로 상대에게 심각한 부상을 입힌 경우 4~12경기 출장정지 처분이 가능하다. 다만 실제 적용 여부는 충돌 경위와 플레이의 성격 등을 따지는 징계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 사망이라는 결과만으로 최고 수위의 징계가 자동으로 내려지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형사 책임을 둘러싼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마르카는 스페인 형법 제142조가 과실치사를 중대한 과실과 그렇지 않은 과실로 나누고 있으며, 중과실이 인정되면 1~4년의 징역형, 그렇지 않으면 벌금형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당시 요구되는 주의 의무를 심각하게 어겼는지, 충돌과 사망 사이에 법적 인과관계가 있는지, 정상적인 경기 과정의 신체 접촉이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게 매체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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