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서울대병원 소아 뇌전증 환아 547명 가운데 494명(90.3%)이 수면 문제군에 해당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잠자리에 들기를 거부하거나 혼자 잠들기 어려워하는 문제가 두드러졌다. 수면 문제가 정서·행동 위험과 겹치는 환아도 적지 않았다. 발작을 얼마나 줄였는지만으로는 환아가 겪는 어려움을 충분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조재소 분당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최근 희귀난치성 발달지연 환아의 수면 개선에 주목하고 있다. 진료실에서 보호자들이 발작보다 더 힘들다고 호소하는 문제 중 하나가 아이의 수면이다. 잠들기까지 몇 시간이 걸리거나 새벽마다 반복해서 깨는 아이를 돌보면서 보호자 역시 장기간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 환아의 수면 문제가 가족 전체의 일상과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조 교수는 중증 소아 신경계 질환의 치료 목표를 발작 조절에만 두지 않는다. 그는 "발작만이 아니라 아이의 발달·수면·가족의 삶까지 포함해 치료 목표를 세우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급성기 치료 이후 신경학적 후유증이 남는 환아들이 재활과 학교생활까지 이어갈 수 있도록 연결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수면·인지기능의 변화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려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치료 이후의 일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지원은 충분하지 않다. 조 교수가 참여한 희귀질환 환아 가족 조사에서는 절반 이상이 아이를 돌보기 위해 경제활동을 중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퇴원 후에도 의료적 처치와 돌봄을 보호자가 감당해야 하는 현실에서 전문 돌봄 인력과 지원체계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3일 여성경제신문이 조 교수와 인터뷰를 통해 환아의 수면장애 실태·치료 연구·가족 돌봄의 어려움·제도적 과제를 들었다. 관련 기사: [명의] 조재소 분당서울대 소아청소년과 교수 ① 소아 뇌파 AI로 발작 감지 넘어 예측 도전
―희귀난치성 발달지연 환아의 수면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 진료에서 환아와 가족이 겪는 어려움은 어느 정도인가.
"수면은 아이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전체의 건강 문제다. 진료실에서 보호자들이 발작보다 더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밤'이다. 잠들기까지 몇 시간이 걸리거나 새벽에 여러 번 깨어 소리를 지르고 낮과 밤이 바뀐 아이들이 많다. 수면 부족은 발작을 악화시키고 낮에는 짜증·과잉행동·집중력 저하로 이어진다.
그 사이 보호자는 수년째 통잠을 자지 못한다. 형제자매·부부 관계는 물론 직장생활까지 흔들린다. 아이의 수면 문제를 단순히 밤에 잠을 못 자는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소아 뇌전증 환아의 수면 상태를 조사했다. 어떤 결과가 확인됐으며 특히 두드러진 문제는 무엇이었나.
"뇌전증 환아 547명 중 494명(90.3%)이 설문 기준 수면 문제군에 해당했다. 특히 잠자리에 들기를 거부하는 수면 저항과 혼자 자기 어려워하는 수면 불안이 두통 환아보다 두드러졌다.
분당서울대병원에서는 소아 신경 환자 모두에게 수면 설문을 진료에 도입하고 의료진이 보호자와 함께 결과를 확인하고 있다. 현재 1차 설문 기준으로 총 930명의 자료를 분석했다. 뇌전증 환아 654명·두통 환아 201명·기타 환아 75명이다.
수면은 국제적으로 사용되는 아동수면습관설문지(K-CSHQ)로 평가했다. 총점 41점 이상을 수면 문제군으로 분류했다. 뇌전증 환아의 수면 문제군 비율은 90.3%였고 두통 환아도 87.8%로 높았다.
정서·행동 설문(SDQ)을 함께 분석한 결과 뇌전증 환아의 26.8%는 수면 문제와 정서·행동 위험이 겹친 중증군이었다. 이 아이들은 낮 시간 졸림도 유의하게 심했다.
수면 문제는 이렇게 흔한데도 따로 묻지 않으면 진료실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모든 환자에게 수면 설문을 진료의 일부로 도입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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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장애 치료에서는 약물치료뿐 아니라 맞춤형 행동치료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희귀난치성 발달지연 환아에게 적용할 때 어려움은 무엇인가.
"수면 위생·일정한 수면 루틴·잠들기 전 자극 조절 같은 행동치료가 기본이다. 멜라토닌이나 수면제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약물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항발작약과의 상호작용도 고려해야 한다.
발달지연 아동은 의사소통이 어렵고 감각 예민성이나 운동장애가 있어 일반 아동에게 사용하는 방법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아이의 특성과 가정환경에 맞춘 계획이 필요한 이유다.
가장 큰 현실적 어려움은 행동치료를 지속적으로 지도할 전문 인력이 부족하고 상담 시간에 대한 수가도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미 지쳐 있는 보호자에게 행동치료가 또 하나의 과제가 돼서는 안 된다. 그래서 작은 변화부터 시작하고 자주 점검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해 수면 패턴을 분석하고 치료 효과를 평가하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어느 단계인가.
"발작 횟수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변화를 수면·인지·일상 기능 등 여러 지표로 확인하려는 연구다. 아직 도입 단계다.
첫 적용 대상으로 최근 드라베 증후군 환자에게 쓰이기 시작한 신약 펜플루라민의 투약 전후를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투약 전후 인지기능과 수면 설문 결과를 비교하고 손목에 착용하는 활동량 측정기인 액티그래피를 활용해 수면 양상도 함께 분석한다. 지금까지는 신약을 사용한 뒤 보호자가 '인지가 좋아진 것 같다'거나 '잠을 더 잘 자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이를 객관적인 자료로 확인하려는 것이다.
난치성 뇌전증에서는 발작이 크게 줄지 않더라도 수면·인지·일상 기능이 나아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변화를 여러 지표로 보여줌으로써 발작 횟수만으로는 평가하기 어려운 약의 효용성을 입증하는 것이 목표다."
―수면을 개선하면 환아의 인지·집행기능도 향상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현재 확보된 근거는 어느 정도인가.
"희귀난치성 발달지연 환아에서 수면을 개선했더니 인지기능이 좋아졌다는 근거는 아직 제한적이다. 현재는 가능성 단계로 봐야 한다.
수면이 기억 공고화와 주의·집행기능에 중요하다는 사실은 일반 아동에서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다만 이러한 결과를 희귀난치성 발달지연 환아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앞으로 표준화된 수면·인지 지표를 마련해 개입 전후의 변화를 추적하는 전향적 연구가 필요하다.
현재 뇌파 기반 인지 평가 연구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일반적인 표준 검사가 어려운 아이들에게서 인지기능의 변화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방법을 찾으려는 것이다."
―희귀질환 환아 가족을 조사한 연구에서는 보호자가 경제활동을 중단하는 문제도 확인됐다. 실제로 가장 부족한 지원은 무엇인가.
"가장 부족한 것은 '돌봄을 나눠 질 수 있는 사람'이다. 중증 환아는 밤낮으로 지켜봐야 하지만 발작에 대처하고 의료기기를 다룰 수 있는 돌봄 인력은 거의 없다.
2022~2023년 서울대어린이병원 희귀질환센터를 찾은 환아 101명의 가족을 조사한 결과 53.5%가 환아를 돌보기 위해 일을 그만뒀다. 주 보호자의 90% 이상은 어머니였다. 보호자 한 명이 일을 그만두면 가정의 소득이 줄어드는 동시에 의료비는 늘어난다. 돌봄을 가족 한 명에게 맡기는 구조에서는 경제적·신체적·정서적 부담이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
전문 돌봄 인력을 포함한 단기 휴식(레스파이트) 서비스가 필요하다. 여러 제도를 한곳에서 안내해 줄 코디네이터와 희귀질환을 연구하고 진료하는 전문 의료인력 양성도 시급하다."
―중증 소아환자는 퇴원 후에도 의료적 관리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가정에서 안정적으로 생활하기 위해 어떤 지원이 가장 시급한가.
"소아 전문 방문간호와 의료적 돌봄이 가능한 돌봄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퇴원 후 가정에서는 발작 대처·경관영양·산소 공급과 흡인 같은 의료적 처치를 보호자가 거의 혼자 감당하고 있다. 병원에서 급성기 치료를 마쳤다고 해서 의료적 관리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가정용 뇌파나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한 원격 모니터링과 비대면 상담이 제도권에 들어오면 불필요한 응급실 방문을 줄이고 가족의 불안도 덜 수 있다.
병원·지역사회·가정을 연결하는 담당 코디네이터도 필요하다. 환자가 퇴원한 이후에도 필요한 의료와 돌봄을 이어갈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의료적 관리가 계속 필요한데도 장애등록이나 기존 복지서비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희귀질환 환자들이 있다. 지원 기준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나.
"진단명이나 고정된 장애 정도가 아니라 실제 의료·돌봄 필요도를 기준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진료 현장에서 이런 사례를 자주 접한다. 뇌전증은 발작이 없는 날에는 정상처럼 보여 장애 판정에서 불리하고 아주 어린 아이는 발달지연이 있어도 나이 기준 때문에 장애등록이 어려운 경우가 있다.
희귀질환 산정특례도 진단명이 확정돼야 적용할 수 있어 원인을 찾지 못한 아이들은 사각지대에 남는다. 진단명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진단 미확정 희귀질환'에 대한 별도 지원체계도 필요하다."
―중증 소아환자를 진료하고 연구하면서 의사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한 아이의 하루가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것'이다. 발작 횟수를 줄이는 것만큼 아이가 잘 자고 보호자가 한숨 돌릴 수 있는 밤을 돌려주는 것도 중요하다. 환자 가족의 목소리가 정책에 닿도록 계속 이야기하겠다."
☞드라베 증후군= 영유아기에 발생하는 난치성 희귀 뇌전증 증후군이다. 잦은 발작과 발달 지연을 동반하며 일반적인 항발작 약물에 잘 반응하지 않아 지속적인 의료 관리가 필요하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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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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