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동차업계가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자율주행 기술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기아를 비롯해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 볼보, 스텔란티스, 토요타, 제너럴모터스(GM), BYD, 지리자동차 등 주요 완성차업체들이 엔비디아의 차량용 AI 컴퓨팅 기술을 채택하거나 자율주행 플랫폼 공동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최근 유럽 자동차업체들의 협력 발표가 잇따르면서 엔비디아가 차량용 반도체 공급업체를 넘어 자율주행 개발 플랫폼의 핵심 사업자로 부상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지난 10월 16일 엔비디아와 차세대 운전자 보조 및 자율주행 시스템 개발 협력을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자체 차량 운영체제 MB.OS에 엔비디아의 하이페리온과 알파마요 스택, 헤일로스 기술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벤츠는 이를 통해 도심 주행 지원 기능을 고도화하고 장기적으로 레벨3·레벨4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볼보자동차도 10월 15일 엔비디아와 협력을 확대했다. 차세대 차량에 하이페리온과 알파마요 스택 등을 활용하고 볼보가 축적한 차량 안전 기술과 AI를 결합한다는 구상이다.
폭스바겐그룹은 상용차 부문의 자율주행 전기밴 'ID. 버즈 AD'에 엔비디아 하이페리온을 활용하고 있다. 스텔란티스 역시 영국 자율주행 AI 기업 웨이브(Wayve), 엔비디아와 협력해 프랑스에서 레벨4 자율주행차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기아도 지난 3월 엔비디아와 자율주행 기술 협력을 확대했다. 양사는 하이페리온 기반의 데이터 중심 자율주행 시스템을 공동개발하고, 중장기적으로 자율주행 합작법인 모셔널의 로보택시 분야까지 협력 범위를 넓힌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포티투닷과 첨단차플랫폼(AVP)본부를 중심으로 자체 소프트웨어와 자율주행 AI도 개발하고 있다. 외부 기술을 활용해 개발 속도를 높이면서 핵심 기술의 내재화를 병행하는 전략이다.
엔비디아의 협력망은 일본과 중국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토요타는 차세대 차량에 엔비디아 드라이브 오린과 드라이브OS를 적용하기로 했으며, GM도 차량용 AI 컴퓨팅과 첨단 운전자 보조 기술 등에 엔비디아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BYD와 지리자동차는 하이페리온 기반 자율주행 개발에 참여하고 있으며, 닛산은 웨이브의 AI 소프트웨어와 엔비디아 플랫폼을 결합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중국의 리오토, 니오, 샤오펑, 샤오미, 지커, 장성자동차 등도 엔비디아 차량용 컴퓨팅 기술을 채택한 사례가 있다. 다만 반도체 채택과 자율주행 시스템 공동개발, 실제 로보택시 상용화는 서로 다른 단계다.
완성차업체들이 엔비디아와 손잡는 가장 큰 이유는 자율주행 기술의 개발 비용과 난도가 빠르게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차량용 반도체와 센서, 제어 소프트웨어를 개별적으로 개발하고 통합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AI 기반 자율주행은 대규모 주행 데이터 학습과 시뮬레이션, 실제 차량 검증까지 함께 수행해야 한다.
엔비디아는 차량용 컴퓨팅과 센서를 통합하는 하이페리온, AI 기반 주행 소프트웨어인 알파마요 스택, 안전성 개발·검증 체계인 할로스를 제공한다.
여기에 DGX 기반 AI 학습 인프라와 옴니버스, 코스모스 등의 시뮬레이션 기술을 결합해 가상환경에서 다양한 주행 상황을 학습하고 검증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완성차업체 입장에서는 모든 기술을 처음부터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부담을 줄이고 신차 적용 시기를 앞당길 수 있는 것이다.
엔비디아가 완성차업체뿐 아니라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와 모빌리티 서비스 기업으로 협력망을 확대하는 것도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 우버와 볼트, 그랩 등 모빌리티 사업자와 웨이브, 뉴로, 포니.ai, 위라이드 등 자율주행 기술기업이 관련 생태계에 참여하고 있다.
자동차 제조사가 차량을 생산하고 자율주행 전문기업이 AI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며 엔비디아가 공통 컴퓨팅 플랫폼을 제공하는 역할 분담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다만 엔비디아 중심의 협력 확대가 완성차업체에 긍정적인 결과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특정 기업의 반도체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경우 후속 기술 변경과 공급가격, 유지보수 비용 등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차량 데이터와 AI 알고리즘의 소유권 및 통제권도 중요한 문제다.
특히 동일한 엔비디아 플랫폼을 사용하는 업체가 늘어날수록 완성차업체 자체의 기술 차별화가 더욱 중요해진다.
하이페리온은 완성차업체가 독자 개발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도 활용할 수 있는 개방형 구조다. 따라서 플랫폼을 사용하더라도 실제 주행 성능은 AI 학습 데이터와 제어 알고리즘, 차량 통합 능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현대차·기아 역시 엔비디아의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포티투닷 등을 통해 자체 자율주행 AI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또한 레벨4 대응 플랫폼을 채택했다고 실제 무인 자율주행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양산차에 적용하려면 안전성 검증과 각국의 법적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글로벌 자동차업계의 엔비디아 협력 확대는 자율주행 경쟁의 중심이 차량 제조기술에서 AI 학습과 소프트웨어, 데이터 활용 역량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완성차업체 간 경쟁력 차이는 엔비디아와 협력했는지 여부보다 자체 기술을 얼마나 확보하고, 공동개발한 시스템을 실제 차량에 언제 적용하며, 어떤 수준의 안전성을 입증하는지에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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