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김주현 기자] “예술은 곧 일상이라는데, 그렇다고 정말 내 일상을 예술로 만든다면 작업이 너무 초라할 것 같아 억지로 무게감을 더해 작업했던 시절도 있었어요. 그런데 완성된 작품을 마주한 기분은 매우 부끄럽고 낯설었죠. 제 것이 아닌 이야기로 작업한 결과물은 저를 위축시켰어요. 한 번도 쉬거나 멈춰본 적이 없는 저는 이야기를 찾아내기 위해 잠시 멈추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어요.”
김민주 작가의 솔직한 고백으로 이번 인터뷰 글을 시작하고 싶어졌다. “억지로 무게감을 더한 적이 있다”고 토로한 그의 ‘쉼’은, ‘스스로에게서 멋진 이야기를 찾아내는 과정’이었다. 끝내 “그토록 찾던 멋진 이야기가 나의 머리에서, 손에 생겨나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덧붙인 김민주 작가의 ‘지금’이 관객으로부터 공감을 자아내는 이유다.
김민주 작가는 물감에 입체성을 부여해 평면을 넘어 공간으로 나아가게 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조소를 전공한 만큼 조각적 요소와 회화적 요소를 결합해 보는 재미까지 선사한다. 이 작업 기반은 작가 성향에서 출발했다.
“저는 혼자 있는 공간과 시간을 깊이 애정하는 사람입니다. 자극적인 요소들에 피로감을 많이 느끼는 편이라, 일상 대부분을 고요한 공간에서 아주 사소한 생각과 감각에 머무르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느슨하게 지내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혼자 있는 그 시간 속에서 세상과의 균형을 바쁘게 찾아가고 있습니다.”
‘방(room)’이 자연스레 작품의 주인공이 됐다. 누구에게나 허락된 평범한 공간, 그러나 작가는 거기서 특별함을 발견한다. “평범함도 드러냄으로써 특별해질 수 있다는 마음을 갖고 작업한다”고 했다.
미술을 전공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미술학과에 진학, 작품 외 여러 일도 해보았지만 결국 ‘나는 나의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쳤단다. 나의 이야기, 나의 생각을 표출하고 싶었던 작가에게 ‘작가’만큼 잘 어울리는 일이 없었다.
“침대에 눕고 의자에 앉아 고민하던 시간 덕분에 보이지 않던 이야기가 점차 모습을 드러냈고,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멈춤의 순간과 그 시간을 함께해 준 고요한 침대, 의자, 나의 방에게 감사하며, 그렇게 포착한 이야기를 물감에 담아 반복적으로 세상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평면 안에 머무는 것이 익숙했던 물감에 입체성을 부여하는 행위는 내면의 이야기를 외부로 이끌어 내려는 작가적 의지이자,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세상과 공유된 공간 속으로 옮겨오려는 시도입니다.”
결국, 작가에게 ‘미술’은 ‘정신적 지주’가 됐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작품을 제작하는 행위’가 그를 쓰러지지 않도록 받쳐 준다”는 것. 작업을 위해 생각하고 고민하다 보면 자연스레 머릿속이 정리된단다. 이러한 경험의 반복은 작업이 잘 풀리지 않더라도 그를 책상과 작업대 앞으로 자연스레 이끌었다.
그의 대표작 ‘EP. 36-1 보이지 않는 것을 응시하는 방법’, ‘EP. 25-1 엽서에는 침대가 그려져 있고 나는 빵 구워 먹을 생각을 하곤 한다’, ‘EP. 44-1 꿈은 높은 가지에 올라앉기를 좋아하지 않는가?’ 모두 작가가 지금껏 이야기해온 맥락과 나란히 한다.
“‘EP. 36-1 보이지 않는 것을 응시하는 방법’은 물감 덩어리를 더욱 입체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보이지 않는 것을 응시하는 방법’ 시리즈예요. 작품은 방구석을 배경으로 하는데, 평소처럼 방구석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던 중, 문득 이런 구석탱이도 매력적이라고 느껴졌습니다. 나는 그저 멍 때린다고만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머릿속으론 수만 가지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던 거죠. 작품 속 물감은 개인의 이야기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작품 속 원형 부분은 제 시선을 의미합니다. 이야기는 이미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내가 작은 시선을 던져 주어야만, 작은 에너지를 보태주어야만 세상에 드러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EP. 25-1 엽서에는 침대가 그려져 있고 나는 빵 구워 먹을 생각을 하곤 한다’는 2024년 첫 초대 개인전 ‘엽서에는 침대가 그려져 있고 나는 빵 구워 먹을 생각을 하곤 한다’의 메인 작품이자 전시 주제가 되었던 작품이에요. 나만의 이야기가 없는 것 같아 침대에 누워 고민에 빠지곤 했습니다. 사건, 사고 없이 잔잔한 삶, 일주일 정도 앓으면 잊히는 정도의 고통이 제 삶입니다. 여기서 어떻게 예술을 찾을 수 있을까 고민스러울 때 도움을 준 것들은 평범합니다. 글 한 문장, 노래 한 소절, 누워있기, 멍때리기. 내가 온갖 것에서 형체를 찾듯, 누군가는 그림을 통해 보이지 않던 무언가를 찾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엔 방구석과 침대가 있지만, 침대를 생각해 보자는 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저도 침대가 그려져 있는 엽서를 보고 빵 구워 먹을 생각을 하니까요. 책상 앞에 붙여 둔 엽서를 보고 오늘의 이야기가 시작되길 바라요.”
“‘EP. 44-1 꿈은 높은 가지에 올라앉기를 좋아하지 않는가?는 제일 최근작이에요. ‘꿈은 높은 가지에 올라앉기를 좋아하지 않는가?’라는 문장을 책에서 봤어요. 꿈은 크고 높게 꾸라는 말이 있듯, 사람이 꿈을 크게 꾸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인데 어느 순간 꿈을 꾸는 것도 망설여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문장의 힘을 믿어서 여기저기 크게 말을 하고 다니곤 했습니다. 그런데 자신 있던 목소리도 이루어지지 않음의 반복 앞에선 아주아주 작게 쪼그라듭니다. 점점 더 건조하고 무덤덤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다시 작은 공간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이 작은 공간이라면 자유롭고, 가능하며, 기대되는 일들로 넘치게 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면,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그동안 형태 없던 이야기들을 물감에 응축하고 그것을 반복적으로 드러내며 생명력을 더해왔듯이, 이 작은 공간에서의 상상도 조금 더 단단한 힘을 가진 무언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의 방 한구석에서도 다시 시작할 아주 작은 용기가 피어나기를 바라며 이 작품을 대표작으로 꼽고 싶었어요.”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작품이 세상의 빛을 보면, 관객은 작가의 고뇌에 힘입어 작품에 매료된다. 김민주 작가는 “우울한 감정을 있는 힘껏 내뱉을 수 있는 건 작가의 특권”이라며 겸손한 태도를 취했다. 스스로의 극복을 위해 내뱉어내는 소리 없는 함성은 훌륭한 작업 소스가 된다. 그리고, 작가 역시 그렇게 태어난 작품을 바라보며 극복해낸다.
“오늘 집에 가서 침대에 누우면 작가님 생각이 날 것 같아요.” 한 관객이 그에게 전해준 말이다. 그는 “그분은 제가 그간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흐릿한 작업의 목적을 명확하게 잡아 주셨다”며 “그 후로 제 작품이 침대에 있는 누군가에게, 의자에 앉아 있는 누군가에게, 멍 때리는 누군가에게 작게나마 생각의 물꼬를 터줄 수 있길 바라며 작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 한 해의 시작에 기대했던 것만큼 멋진 날들이 가득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작업을 꾸준히 하면 우상향의 그래프가 그려질 줄 알았지만, 수평의 흐름을 유지할 때가 많다는 현실을 배우는 시기였죠. 하지만 다행인 점은 수평의 흐름 속에서도 작업의 끈을 놓지 않다 보니 감사하게도 찾아주시는 분들이 하나둘 늘어갑니다. 멈춰 서있는 것 같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누군가가 새로운 제안으로 저를 끄집어내 의자에 앉혀주신 덕분에 힘을 내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김민주의 소중함 발걸음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스스로와 스스로의 작업을 대외적으로 알리지 못한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올해 가장 잘한 일로 “그러한 제안을 시작으로 더욱 적극적인 조각적 시도들을 선보인 것”을 꼽았다. 그는 “새로운 시도들을 바탕으로 내년에도 흔들림 없이 흐름을 잘 유지했으면 좋겠다. 관객분들께는, 오늘밤 침대에 누워 자신의 이야기에 온전히 머물러보는 시간을 가져보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올해 새롭게 시도해 보았던 작품이 있어요. ‘방법 1. 가지런히 걸어보기’인데요, 유일하게 제목 앞에 EP. 넘버링을 하지 않았어요. 방구석이 완성되지 않은 생각들이 허용되는 ‘미완의 장’임을 알고 있지만, 방구석 너머의 바깥 공간까지 미완의 상태를 데려오는 것은 큰 다짐이 필요한 일이었거든요. 그럼에도 극복을 위해 미완을 가지런히 걸어두었고, 찬찬히 보니 예상외로 좋은 게 많았어요. 이렇게 천천히 정제를 줄여가다 보면, 저를 알리고 작품을 알리는 행위가 조금 더 자연스러워지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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