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건호의 예술의 구석] 누드 좀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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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건호의 예술의 구석] 누드 좀 봐라

문화매거진 2026-10-31 11:48:53 신고

▲ 누드 좀 봐라 / 그림: 윤건호
▲ 누드 좀 봐라 / 그림: 윤건호


[문화매거진=윤건호 작가] AI가 일러스트와 디자인은 물론 서류 작성, 사고의 영역까지 맡아주는 시대가 정말 도래해버렸다.

이렇게 “해줘”가 가능한 시대, 그림을 그리기 위한 피사체도 더이상 직접 촬영하고 연출할 필요가 없어졌다. 내가 그리고 싶은 피사체를 명령하면 만들어준다. 마치 자판기처럼.

이런 와중에 ‘누드 스케치 수업은 현대에는 필요 없는 구시대적인 방식이다’라는 말도 조금씩 들린다. 미술 교육과정에서 더 이상 실제 누드모델을 앞에 세워놓고 수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말만 들으면 그럴듯해 보이는 주장이다. 실제로 사진이나 디지털 이미지로도 충분히 신체를 학습할 수 있고, 기술이 발전한 만큼 교육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의견에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미술에서 관찰이라는 행위가 갖는 의미를 간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레퍼런스 이미지로도 충분하다는 주장은 미술의 ‘ㅁ’자도 모르는 소리라고 말하고 싶다.

미술에서 관찰은 너무나 중요하다. 사람들은 눈을 가졌으니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이 관찰의 전부라고 오인하곤 한다. 하지만 관찰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다. 대상을 관찰한다는 것은 결국 그것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과정이다. 재질과 물성, 특성과 고유성 등을 알아가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스케치와 같다. 채색하기 전 밑그림을 그리듯 대상을 바라보면서 생각하고, 이해하고, 관찰하는 것이다. 이미지는 결코 관찰 그 자체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여기서 “그러니까 볼 수 있는 이미지가 있는데 굳이 실제로 모델을 세워야 하나? 그것도 다 벗은 나체로?“라고 물을 수도 있다.

물론 누드모델 수업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교육 환경이나 비용의 문제도 있고, 디지털 이미지로 충분히 학습할 수 있다는 기술적인 판단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담긴 나체에 대한 인식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 나체를 마주하는 순간을 특별함이 아닌 특이함으로 여기는 걸까? 나체라는 이유만으로 성적인 의미를 먼저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미지는 그저 자료이자 한 장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나체의 이미지를 바라볼 때 우리는 그 안의 인물을 하나의 인격체로 느끼기보다 신체의 형태와 특징을 분석하는 대상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이미지에는 내가 원하는 만큼의 시선과 해석을 투영할 수 있고, 그 안에서 어떤 인식이나 판타지를 확장하는 데에도 별다른 제약이 없다.

하지만 실제 누드모델이 내 눈앞에 있다면 어떨까?

자료이기 이전에, 벗은 몸이기 이전에, 여자나 남자이기 이전에 하나의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마주하게 된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사람, 윤리없이 해석하거나 소비해서는 안되는 사람을 관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가지고 놀면 안되는’ 인격체를 앞에 두고 그 사람의 신체를 관찰한다는 것. 그 과정에서 우리는 신체를 단순한 형태나 성적인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다양한 관점으로 이해하고 구현하게 된다.

인격을 가진 사람을 관찰하고 사고하는 과정은 수백 장의 이미지로는 얻기 어려운 입체적인 감각과 시각을 키워준다. 사람의 몸을 관찰하면서, 사람을 자료로 사용하면서도 그 사람을 하나의 자료로만 취급하지 않는 경험. 나는 이것이 실제 누드모델 수업이 가진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누드 스케치 수업은 미술이 그저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무수한 정보와 이미지로 인해 대상의 가치가 가벼워지는 현재의 시점에서 실제 모델을 세우는 누드 스케치 수업은 오히려 더 많이 진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자료를 존중하는 법을 잃어버리면 가치가 언제 사라졌는지도 모르게 된다.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엄과 가치, 약속과 같은 것들을 믿고 지켜오면서 교양을 쌓고, 그것을 학문으로 발전시켰으며 예술로 승화시켜왔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1차원적인 시각으로 사고한다면 우리는 잃을 것이 너무 많다.

이미지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대상을 이해하는 일까지 쉬워진 것은 아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볼 수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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