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유정 작가] 지난 글에서 ‘잘’, ‘좋은’ 두 낱말이 좋아졌다고 쓴적이 있었다. 그에 하나가 더 생겼다.
“아름답다”
참 피상적이고 추상적으로 여겨 예의상 사용했던 이 낱말들이, 실은 여러번 덧칠되고 두터워진 이야기들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단순히 겉모습, 표상적인 보기 좋음을 넘어 내면에 무언가가 닿았을 때 건드려지는 미감이 팡 터져 나왔을 때, 그 때 말할 수 있는 것 같다. 아름답다.
美(아름다울 미)의 갑골문자는 사람이 머리 위에 장식물을 얹은 모양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장식물은 양의 뿔을 그려 놓은 것이며, 그를 얹은 형태가 화려하다, 예쁘다, 보기 좋다의 의미로 해석된 것으로 알려 졌다. 함께 쓰이는 佳(아름다울 가), 麗(고울 려) 또한 사람과 동물의 뿔을 의미하는 한자를 포함한다.
고대인들이 거대한 뿔을 머리에 이고 축제를 벌였듯, 우리 역시 예술이라는 거대한 화두를 머리에 이고 작업을 이어간다. 겉보기엔 화려하고 고상해 보일 수 있는 ‘미술’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작가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때로는 날것의 생존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녹록지 않은 일상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찬란한 순간들 때문이다. 어떻게든 기록하거나 표현해내지 않고는 아까워 죽겠는 찰나들 말이다. 그러한 진심과 정성. 완벽하게 정돈된 미적 기준이 아니라, 각자의 치열함으로 덧칠해진 캔버스 구석에서 발견하는 마음. 겉멋이 아니라 내면의 결핍과 욕망이 다듬고 다듬어져 터져 나오는 미감. 그 낯선 생명력과 마주할 때, 조용히 발음하게 된다.
참 아름답다고.
작가들이 캔버스 앞에서 마주하는 ‘아름다움’은 기어코 발견해낸 생명력을 힘껏 벼려낸 끝에 터뜨리는 탄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수없이 지우고 덧칠한 반복 속에서 어쩌면 부끄러웠을 자신의 내면을 드러냈을 때의 날것, 그 진심 말이다.
가장 큰 묘미는 그 완성된 화면을 마주하는 관객의 온도는 조금 다른 것 같다는 데서 느낀다. 관객은 작가가 쏟아부은 치열한 노동과 고뇌를 낱낱이 해부하기보다, 문득 그 형체와 색채 사이에서 자신의 지나온 생애를 발견한다. 잊고 지냈던 상처, 무뎌졌던 그리움, 혹은 젊은 날의 한구석에서 마주했던 아릿한 기억의 조각들 같은.
“아름답다.”
관객이 건네는 이 한마디는 그래서 신기하고 좋았다. 그 미감이 작가의 의도와 일치하는지 와는 상관없이, 관객이 자신의 삶에서 끊임없이 반복한 결핍과 온기의 모습을 버무려 보여주는 것 같아 고마웠다.
하여 예술에서의 아름다움이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타인과 타인이 그림이라는 얇은 판으로 하여금 서로의 진심을 인지하는 순간이 아닐까 재차 생각한다.
2주 동안 인사동 1층에 위치한 갤러리 재재에 상주했다. 그곳에서 각기 다른 발음을 지닌 외국인들이 건네는 이 말이 참 좋았다.
“Beauti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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