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N] 외국인이 장을 보던 곳, 외국인이 관광 오는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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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N] 외국인이 장을 보던 곳, 외국인이 관광 오는 시장

뉴스컬처 2026-10-30 17:01:4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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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신포국제시장 전경. 사진=인천관광공사
인천 신포국제시장 전경. 사진=인천관광공사

 

[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인천 제물포구 우현로49번길. 신포국제시장 입구에는 닭강정을 사려는 손님들의 대기 줄이 생긴다. 튀긴 닭에 매콤달콤한 양념을 입히는 점포에서 몇 걸음만 옮기면 채소와 반찬, 생선, 의류를 파는 가게가 나온다. 공갈빵과 만두를 파는 가게도 골목을 채운다. 먹거리로 이름났지만 시장의 시작에는 채소가 있었다. 19세기 말 중국인이 기른 채소를 일본인 거주자에게 팔던 푸성귀전이 출발점이었다.

1883년 인천항 개항 이후 조계지에 정착한 외국인은 식재료를 구할 시장이 필요했다. 중국인 농민이 채소를 재배하고 일본인 소비자가 구매하는 거래가 시작됐다. 주변에는 조선 상인의 어물전과 닭전거리도 생겼다. 140여 년이 흐른 지금 시장은 인천 개항기의 상업사를 보여주는 생활 공간이자 관광객이 찾는 먹거리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1880년대부터 1960년대 차이나타운 일대 옛 모습. 사진=인천광역시교육청
1880년대부터 1960년대 차이나타운 일대 옛 모습. 사진=인천광역시교육청

 

◇화교가 기른 채소, 일본인 식탁에 올랐다

신포 일대는 과거 '터진개'라 불리던 포구 주변이었다. 인천항이 문을 열자 항구 가까운 곳에 일본인 거주지가 조성됐고, 1884년에는 청국 조계도 설치됐다. 일본인과 청나라 상인, 서양인이 들어와 살면서 개항장 식생활도 달라졌다. 낯선 식재료를 필요로 하는 외국인과 음식점이 생기자 채소 장사가 성장했다. 1887년 무렵 중국 산둥성 출신 이주민들이 양파와 당근, 토마토 등의 종자를 가져와 농사를 시작했다. 재배지는 지금의 인천 도화동과 숭의동 일대까지 퍼졌다. 중국인 농민을 뜻하는 '화농(華農)'이 기른 채소는 신포동의 푸성귀전에 공급됐다. 점포는 20곳 안팎이었다고 전해진다. 일본인 거주자가 주요 구매자였고, 조선인도 오가며 중국어·일본어·한국어가 섞인 흥정이 벌어졌다.

양파와 토마토, 완두콩, 당근, 연근 등은 당시 조선의 일반적인 장터에서 익숙하게 접하기 어려운 식재료였다. 조계지 가정 외에 중국요릿집과 일식집, 서양식 숙박시설도 주요 소비처였다. 항구가 외국 물품을 실어 나르는 관문이었다면 푸성귀전은 개항장의 식탁을 공급하던 장터였다. 시장 안에 설치된 푸성귀전 조형물은 채소를 파는 중국인과 장을 보는 손님의 모습을 담고 있다. 1899년 경인철도가 개통되면서 인천항에서 서울에 물건을 보내는 속도도 빨라졌다. 바닷길과 철길이 만나는 교통 여건은 개항장 상권의 성장에 힘을 보탰다. 신포시장의 '국제'라는 이름은 훗날 붙었지만 서로 다른 국적의 상인과 손님이 거래하던 역사는 개항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인천 신포국제시장 전경. 사진=인천관광공사
인천 신포국제시장 전경. 사진=인천관광공사

 

 

◇조선 어물전 위협한 일본 자본…전쟁 뒤 재건

푸성귀전 주변에서는 수산물 거래도 활발했다. 조선인 상인이 운영하던 신포동 어시장에는 인천 연안에서 잡은 생선과 충청도에서 올라온 수산물도 들어왔다. 닭과 달걀, 오리 등을 파는 닭전거리도 형성됐다. 생선·육류·채소를 구할 수 있는 상권이 만들어지자 음식점과 생활용품 상점도 늘었다. 어시장의 성장은 일본 상인의 진출을 불렀다. 일본인들은 1890년대 말 별도 어시장을 개설하고 어선과 유통시설을 확충했다. 식민지 지배가 본격화된 뒤에는 자본력과 행정권력을 앞세워 조선인 수산상인의 영업 기반을 잠식했다. 생선을 신선하게 보관하는 데 필요한 얼음과 제빙시설까지 일본 업체가 장악하면서 수산물 유통의 주도권은 점차 일본 자본에 기울었다.

시장 운영 방식도 달라졌다. 일제는 1914년 시장규칙을 제정해 거래를 허가·관리 체계에 편입했다. 1929년 12월에는 수산물을 취급하는 제1공설시장이 문을 열었고, 1932년 7월에는 청과물을 취급하는 제2공설시장이 준공됐다. 신포 일대의 채소전과 어시장은 외국인의 식료품 수요에서 시작됐지만 식민지기에는 공설시장 제도와 유통자본의 이해에 따라 재편됐다. 광복 뒤에도 시장은 안정되지 못했다. 한국전쟁 때 시장 시설 다수가 파괴됐고, 상인들은 파손된 건물과 노점 주변에서 다시 생계를 꾸렸다. 전쟁 전후 '신포시장'이라는 이름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개설 연도는 개항기 자연발생 장터와 전후 재개장, 정식 등록 중 어느 시기를 택하느냐에 따라 달리 기록돼 있다. 1971년에는 신포 상가를 새로 지어 상설시장 시설을 정비했다. 전쟁 때 중단된 거래가 다시 살아나면서 시장은 인천 구도심 주민의 식재료와 생활용품을 공급했다.

인천 신포국제시장 전경. 사진=인천관광공사
인천 신포국제시장 전경. 사진=인천관광공사

 

◇닭전거리 기억 품은 닭강정…쫄면은 제면소에서

신포국제시장의 대표 먹거리는 닭강정이다. 1985년 문을 연 신포닭강정은 튀긴 닭에 물엿과 고추 양념을 버무리고 청양고추와 땅콩가루 등을 곁들이는 조리법을 사용한다. 달콤한 맛에 매운맛을 더하고 포장해 가져가기 편한 점이 인기를 키웠다. 시장 초입에 닭강정을 사려는 줄이 생긴 풍경은 신포를 대표하는 관광 이미지가 됐다. 개항기에는 닭과 달걀을 사고팔던 닭전거리가 신포시장 주변에 있었다. 닭전거리와 현재 닭강정 점포 사이에 직접적인 계보를 입증하는 기록은 드물다. 생닭을 거래하던 장소에서 완성된 닭 요리를 구매하는 소비 형태가 발달했다는 변화에 의미가 있다. 장보기의 목적이 식재료 구입에서 즉석 먹거리 구매까지 넓어진 셈이다.

쫄면은 인천 분식 문화의 또 다른 상징이다. 1970년대 초 인천 경동의 제면공장에서 굵고 탄력 있는 면발이 생산됐고, 인현동 분식점 '맛나당'에서 채소와 매콤한 양념에 비벼 팔면서 인기를 얻었다. 광신제면에서 냉면 면을 만들다 틀을 잘못 끼운 탓에 쫄면이 탄생했다는 일화가 널리 알려졌으나, 다른 제면업자가 굵은 면을 개발했다는 설도 있어 기원을 하나로 확정하기는 어렵다. 신포우리만두는 쫄면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1971년 송현시장의 작은 만두가게에서 출발해 1977년 신포동에 매장을 열었다. 만두와 쫄면을 주요 메뉴로 팔았고, 1980년대 후반 공장과 가맹점망을 갖추며 인천의 분식을 전국에 알렸다. 제면소의 생산 기술, 분식점의 조리법, 가맹사업의 유통망이 쫄면의 대중화에 각각 기여한 셈이다.

공갈빵과 만두에서는 화교 음식문화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공갈빵은 밀가루 반죽을 얇게 펴 구워 속을 비우듯 부풀린 음식이다. 바삭한 과자처럼 쪼개 먹는 간식이 됐다. 메밀국수, 순대, 칼국수, 떡볶이도 시장의 식사 메뉴를 이룬다. 포장해서 가져가는 관광객의 간식과 시장 안에서 허기를 채우는 주민의 한 끼가 한 골목에서 팔린다.

인천 신포국제시장 전경. 사진=인천관광공사
인천 신포국제시장 전경. 사진=인천관광공사

 

◇시청 떠난 구도심…개항장 관광이 찾은 새 손님

신포시장은 오랫동안 인천 구도심의 대표 상권이었다. 인천시청과 관공서가 가까웠고 동인천역과 항구도 멀지 않았다. 그러나 1985년 인천시청이 구월동에 이전하고 상업시설과 주거지가 외곽에 확산하면서 구도심의 손님이 줄었다. 시장이 살아남으려면 기존 주민의 장보기 수요 외에 새로운 소비자를 끌어들여야 했다. 2002년 시장 현대화 사업 때 아케이드를 설치하고 바닥과 편의시설을 정비했다. 2010년 3월 문화관광시장 지원사업 대상에 선정되면서 '신포국제시장'이라는 새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개항 당시 여러 국적의 상인이 거래한 역사를 관광 자원에 반영한 조치였다. 시장에는 푸성귀전 조형물과 등대공원 등이 조성됐고, 채소·수산물·반찬·의류 수선 점포 옆에 먹거리 가게가 영업한다.

지난해 인천시는 신포국제시장을 생활문화 분야 인천지역유산에 선정했다. 올해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의 K-관광마켓 2기 대상에 포함됐다. 차이나타운과 개항장 거리, 인천아트플랫폼, 자유공원을 찾는 여행객이 신포시장까지 걸어서 방문할 수 있다는 접근성도 강점이다. 관광사업은 다국어 안내와 소비자 편의, 시장 체험 확대를 과제로 삼고 있다. 닭강정 관광 수요의 증가가 채소·생선·반찬 점포의 매출 성장까지 보장하지는 못한다. 시장의 오랜 경쟁력은 낯선 상품을 받아들이면서도 주민의 식생활을 공급한 데 있었다. 19세기 말 외국인에게 채소를 팔던 푸성귀전과 여행객이 찾는 먹거리 골목 사이에는 서로 다른 시대의 소비가 쌓여 있다. 신포국제시장의 역사는 변화를 견디면서 장사를 지속한 상인들의 역사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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