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유정 작가] 5년 전 첫 개인전이 있었다. 그때 작품을 구매했던 분이 이번 개인전 오프닝을 함께 하며 귀한 말을 남겨줬다.
“사실 신작들 보면서 제가 가지고 있는 작품과 많이 달라진 것 같아서 걱정했어요. 그런데 와서 보니, 그때의 모습이 그대로인 위에 새로운 시도가 더해진 걸 알게 돼서 더 좋아요.”
가볍게 듣고 잊을 말이 아니었다. 매년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꾀하면서 은연중 고민하던 부분이기도 했다.
‘너무 많이 달라져서 실망하면 어쩌지?’
매년 참여하는 아트페어에서도 같은 마음으로 관객들을 바라보곤 한다. 그들의 호와 불호가 어떤지 들은 적은 없지만, 4년 전 그곳에서 작품을 구매하셨던 어느 부부가 재작년 다시 부스를 찾아와 나눈 대화가 생각나곤 한다.
“이렇게 달라졌구나.”
그래도 뭐, 걱정은 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그분들이 구매했던 시기의 작품을 가장 좋아하고 있고, 그때의 치열함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때 쏟아부었던 ‘오리지널’ 디자인만큼 내가 표하고자 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때의 지독하게 정제된 여백을 여전히 갈망하고 사랑하고 있다.
반면 혹자는 매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서 계속 찾게 된다고 말한다. 생각지도 못한 방향을 시도하는 모습이 놀랍고 재밌다고.
솔직히 나 또한 언제까지 그럴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관객들이 좋아하는 부분(컬러가 많고 텍스처가 다채로운 이번 스타일에 반응이 좋았다)과 내가 좋아하는 부분(평양냉면에 소주 한 잔 곁들이는 걸 좋아하는데, 백묘법이 그렇다. 슴슴하고 단단하다. 먹선과 여백의 조화가 절정에 이르는 백묘화를 그려내고 싶다)을 반반씩 설치할 여유가 생겼다. 사람들이 좋아할 것에만 눈치 보지 말고, 시도를 시도해도 괜찮다는 사실을 경험해 낸 것이다.
이 경험치는 좀 더 대중적인 것을 그려보는 게 낫지 않겠냐는 몇몇 조언을 종식시켜 주었다. 왜냐하면 나는 디자이너가 아니기 때문이다.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받아 수정이 전제된 미감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자의적으로 연구하고 해석하여 공유할 수 있는 형태로 표현하는 문인이다. 그렇기에 이 다름을 그저 아는 것이 아닌 경험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유정이 드디어 자기 것을 하고 있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여기까지-. 이번 개인전만 하더라도 “할 수 있다”를 밤낮 새벽으로 얼마나 읊조렸는지 모르겠다. 누가 보면 하루 종일 입술을 달싹이며 주문을 외우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겠다. 그만큼 또 한 차례 무사히 전시를 오픈했다는 안도와 함께 피드백을 한가득 주워 담았다.
“구작은 나의 원동력. 언제든 그 미감을 지금의 나와 조화시킬줄 알 것. 그러기 위한 실력을 가꾸는 데 꾸준할 것”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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