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규원 작가] 로댕Auguste Rodin의 ‘칼레의 시민(The Burghers of Calais)’을 함께 본다면 몸의 문제까지 이야기를 넓힐 수 있다. 여섯 인물은 같은 운명 앞에 있지만 손의 움직임과 자세는 저마다 다르다. 로댕은 집단의 사건을 다루면서도 각 인물의 성격과 감정을 탐구했다.
이 조각을 보고 곧바로 ‘용기’라는 말을 적어 넣는 대신, 한 인물의 자세를 잠깐 따라 해보면 어떨까. 고개를 숙이거나 손을 벌린 채 서 있으면 사진으로 볼 때와는 다른 부분이 느껴질 수 있다. 몸의 무게를 어느 발에 두어야 하는지, 팔을 오래 들고 있는 일이 얼마나 어색한지 알게 된다. 그 자세가 특정 감정을 그대로 전달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인물을 바라보는 관심은 조금 구체적이 된다. 얼굴만 보던 시선이 손끝과 어깨, 발의 방향으로 옮겨간다.
AI로 조각의 여러 모습을 살펴보는 활동도 가능하겠지만, 화면에서 확인한 정보가 몸으로 경험하는 것을 모두 대신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직접 작품을 보러 가기 어려운 환경에서는 디지털 자료가 첫 만남을 가능하게 한다. 도구의 가치는 어떤 경험을 열어주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모두에게 같은 사용법을 정하기보다 아이가 지금 무엇 때문에 멈추어 있는지 살펴야 할 이유다.
누군가는 그릴 것이 없어 도움이 필요하고, 누군가는 이미 너무 많은 이미지를 보아서 잠깐 화면을 꺼야 할 수 있다. 누군가는 자신의 선을 지켜줄 격려가 필요하다. 여기에 하나의 처방을 적용하기는 어렵다.
수업이 끝날 무렵 책상 위에 결과물을 펼쳐놓는다고 생각해보자. AI가 만든 이미지를 거의 그대로 사용한 작업도 있고, 그 위를 온통 덧칠해 원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작업도 있다. 찰흙으로 만든 작은 덩어리 옆에는 끝내 쓰지 않은 스케치가 놓여 있다. 보기에는 서로 다른 완성도를 가진 결과들이다. 그러나 그 시간을 배움으로 돌아보려면 다른 질문이 필요할 것이다.
“어디에서 생각이 바뀌었니?”
이 질문에는 잘 그린 아이만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너져서 낮게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사람을 넣었는데 없는 게 나았어요.” “AI가 만든 그림이 예뻤는데 내 이야기 같지는 않았어요.” 작업의 변화가 말로 이어진다. 감정의 이름을 정확히 고르지 못했더라도 자신이 한 선택은 이야기할 수 있다.
어쩌면 감정을 표현하는 법은 마음속에 완성되어 있는 무언가를 꺼내는 기술만은 아닐 것이다. 손을 움직이고 결과를 바라보면서 비로소 무엇을 느꼈는지 알게 되는 일도 있다. AI가 창작을 도울 때 남겨두어야 할 여유가 바로 그 부분에 있다. 아직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해도 되는 여유, 중간에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여유다.
Copyright ⓒ 문화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