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원 칼럼] 감정 읽는 법을 배우는 시대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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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원 칼럼] 감정 읽는 법을 배우는 시대③

문화매거진 2026-10-29 22:00:23 신고

[정규원 칼럼] 감정 읽는 법을 배우는 시대②에 이어 
 

▲ 감정 읽는 법을 배우는 시대 CHAT GPT 생성 이미지
▲ 감정 읽는 법을 배우는 시대 CHAT GPT 생성 이미지


[문화매거진=정규원 작가] 종이를 건네받았다고 해서 곧바로 무언가를 그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연필을 쥔 채 오래 앉아 있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머릿속에는 장면이 있는데 손이 따라주지 않거나,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조차 모를 수 있다. 어떤 아이는 옆자리 그림을 보고 시작하기도 전에 자신은 못 그린다고 말한다.

이런 망설임 앞에서 생성형 AI는 꽤 유용한 동료가 될 수 있다. 막연한 말 몇 개로 출발할 이미지를 얻을 수 있고, 같은 생각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도 볼 수 있다. ‘혼자 있는 방’이라는 짧은 말이 창문이 큰 방과 작은 방, 가구가 많은 방과 거의 비어 있는 방으로 바뀌면 아이는 선택을 시작할 수 있다. 좋아 보이는 이미지를 고르는 데서 끝날 수도 있지만, “내가 생각한 방에는 문이 없었어”라는 뜻밖의 설명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런데 도움을 받는 순간부터 비교도 시작된다. 화면에서는 빛과 그림자가 자연스럽고 사물의 모양도 매끄럽다. 자신의 그림은 선이 흔들리고 의자가 기울어져 있다. 어른이 보기에는 창작의 문턱이 낮아졌는데, 아이에게는 잘 그린 이미지의 기준만 더 높아질 수도 있다. AI가 몇 초 만에 만들어낸 그림 앞에서 자신의 서툰 선을 계속 그을 이유를 찾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미술 교육에서 AI를 쓴다면 ‘쉽게 잘 그릴 수 있다’는 장점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을 쉽게 해주고, 어떤 수고는 남겨둘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시작할 단서를 얻는 일과 자신의 감각을 확인하는 일은 서로 다른 속도를 요구한다.

사진 한 장을 잘라 붙이는 순간에도 생각보다 많은 결정이 들어간다. 얼굴을 남길지 배경을 남길지, 가운데 놓을지 가장자리로 밀어낼지, 잘못 잘린 부분을 다시 붙일지 그대로 둘지 정해야 한다. 이때 찢어진 종이는 화면의 실행 취소 버튼처럼 완벽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풀은 마르고 종이는 울며, 덧칠한 색 아래로 이전의 흔적이 비친다. 이런 성질은 불편하지만 작업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찰흙은 또 다르다. 화면에서는 가늘고 길게 서 있던 형태가 실제로 만들면 무너질 수 있다. 손으로 받치고 밑을 넓히고 높이를 줄여야 한다. 처음에 생각했던 모양과 재료가 허락하는 모양 사이에서 타협이 일어난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고치고 받아들이는 시간도 창작의 일부다.

감정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이 과정은 흥미롭다. 아이는 ‘나는 답답하다’는 내용을 표현하는 동시에, 실제 작업에서 생긴 답답함을 겪는다. 원하던 대로 만들어지지 않아 화가 나고, 잠깐 쉬었다가 다른 방법을 시도할 수 있다. 감정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는 일과 감정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작업을 이어가는 일이 한 자리에서 만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경험만으로 어떤 교육적 효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완성된 이미지의 감정 이름을 맞히는 활동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종류의 배움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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