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유정 작가] 최근 내가 하는 일이 인간의 마음과 동시대의 정신을 나누는 일이라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물이 있어야 밀가루가 덩어리가 될 수 있듯, 우리는 물이라는 유동체로써 어디든 스며들어 접착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어떤 형태의 오감으로 경험하게 하느냐를 구상하며 조금 기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매화를 그리되 매화를 그리는게 아니라는 말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건지 조금 명확해진 이유일터다.
“매화를 그리되 이것은 매화가 아니다.”
유정의 작업은 관념화이며, 관념화는 추상의 영역에 속한다. 무언가를 알아야 할 필요도, (감상자의 입장에서) 그림 안의 요소가 정확한 의미를 가진 것도, 하나하나 뜻을 읽어가며 감상할 필요도 없다. 그저 제한을 두지 않고 자유롭게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혹 아무런 교감이 일지 않는다면 그 또한 맞는 것이기에.
그렇다면 도대체 자유롭게, 편하게 보는 것이 무엇인가. 이는 상주하는 동안 만나는 관객들이 자연스레 답을 내어 주는데. 전시를 관람하는 방법에 대해 한국인과 외국인의 차이점이 두드러지는 점이 그렇다. 외국인은 주로 자신의 시선이 가는대로 보다 한 마디씩 건넨다.
“따뜻함이 느껴져요.”
“아름다워요.”
“전통과 현대가 섞여 있어서 흥미로워요.”
“저 컬러는 나의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해요.”
반면 한국인의 대부분은 입구쯤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묻는다.
“어떻게 봐야 하죠?”
“이게 무슨 분야입니까? 동양화인가요, 서양화인가요?”
“왜 글씨를 못 읽게 작게 썼죠?”
“이 모양을 뭐라고 보면 되나요?”
전자의 경우엔 재차 몇 마디 더 주고 받는다. 그에 서로가 강요하는 바 없이 유유히 거니는 기분으로 인사를 나눔에 가깝다. 후자의 경우엔 조금 다르다. 감상 전에 정보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겐 그림 자체보다 작가의 말이 선행되어야 한다. 예전엔 그 또한 방법이니 열심히 설명했는데, 요즘엔 그 노력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던지라 보다 짧게 말을 마무리하곤 한다.
“어떻게 보이느냐에 대한 설명은 잘 드리지 않습니다. 그저 컬러나 모양 등을 떠오르는대로 보시길 바랍니다.”
음, 사실 뭐 어떻게 더 설명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저 네모는 무엇입니다 라고 답하는 순간 그렇게만 볼 것 같아 망설여진다. 그냥 느끼는 그대로 단순하게 봐주시면 좋겠다.
하지만 답이 정해지지 않은, 정보가 필요하지 않은 이런 질문이라면 환영한다.
“참외 색상이 다양한 것 같아요. 왜 그렇게 표현이 됐나요?”
재밌어하며 답변했다.
“마음이 힘들어 아무것도 먹지 못할 때, 우연히 창문 틈으로 들어온 참외향기를 맡고 한 덩이를 사서 먹었어요. 그러고선 조금씩 음식을 먹고 회복하기 시작했지요. 그 때 참외가 제게 줬던 생명력을 한 가지 색깔로는 도무지 표현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생명이라는 것으로부터 희열을 느끼는 푸름과 강렬함을 느끼는 빨강을 참외에 덧대곤 해요.”
그리고 묻는다.
“선생님껜 어떤 컬러가 생명력을 닮았나요?”
답변이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다. 관람자에게 평소 익숙하지 않던 질문을 건넨 것, 이로써 그 날 전시가 역할을 다한다.
사람의 마음, 그로부터 비롯된 우리가 말하는 예술의 아름다움은 추상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마치 매화를 그리되 매화를 그리는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내가 그리려는건 매화가 아니라, 피어남과 지는시간, 거기에 들인 관심 등이다.”
- 예컨대 어머니는 보다 터프하고 무언가를 결정하는 힘이 있는 분이다. 평생 해오시던 음식과 그 솜씨만큼 한상 가득 채워내시는 분이다. 그래서 그녀를 볼 때면 만개한 꽃이 떠오른다. 만약 만개한 꽃을 그렸다면 나는 그에 어머니를 그린 것이다.
- 아버지는 아기자기하고 감도 있는 소품을 좋아하신다. 이십대부터 함께 해온 테니스공들을 종류별로 설명해주기를 재밌어 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그를 볼 때면 꽃봉오리가 여럿 모인 가지가 떠오른다. 만약 알알이 모여 있는 꽃봉오리를 그렸다면 나는 그에 아버지를 그린 것이다.
이와 같이 결국 답변하게 되는 것은 추상적인 표현들이다. 무엇을 그렸고 그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관한 정보 이전에, ‘유동적인 상태’, ‘변화가능성이 있는 마음’ 등을 자연사물의 모양과 색을 빌려 표현하기 때문이다.
하여 이번 개인전을 마무리하며 재차 생각하기를, 매화를 그리되 매화를 그린 것이 아님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가. 다음 전시에서 다시 시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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