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주주가 상장폐지를 목적으로 공개매수에 나서더라도 일반주주들은 제시된 가격이 적정한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베어허그는 주주평등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 규범이 될 수 있습니다.” (권태준 트러스톤자산운용 수탁자책임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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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인수제안에 대한 이사회의 검토·공시 의무를 강화하는 이른바 ‘베어허그법’이 국회에 발의된 가운데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보완책 마련이 과제로 떠올랐다. 일본의 선행 사례를 참고하되 국내 기업의 높은 지배주주 지분율과 우호지분 구조를 고려해 공시 대상을 확대하고 이사회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29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교육원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베어허그의 조건’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참석자들은 베어허그가 경영권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고 일반주주의 권익을 보호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국내 지배구조에 맞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베어허그는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인수 희망자가 인수 조건을 공개적으로 제시하면 대상 기업의 이사회가 이를 검토하고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도록 하는 방식이다. 국내에서는 지난 9월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1명이 기업이 진정성 있는 인수제안을 받으면 제안 내용과 검토 과정, 최종 판단 및 사유를 공시하도록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정남 전 APG 아시아태평양 선진시장 총괄은 앞선 일본의 베어허그 도입 사례를 거론하며 “동의 없는 제안은 적대적이라고 해서 무조건 반대할 게 아니라 바람직한 제안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 일본 지침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은 지난 2023년 경제산업성이 ‘기업인수 행동지침’을 마련하면서 기존의 폐쇄적인 M&A 관행을 바꾸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경영진의 사전 동의를 받지 않은 인수제안을 적대적 행위로 간주해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기업가치와 주주 공동의 이익을 중심으로 판단하도록 지침을 마련되면서 변화가 나타났다.
김 전 총괄은 “2023년 8월 일본에서 해당 지침이 발표된 이후 M&A가 크게 증가했다”며 “2023년 4015건에서 2025년 5115건으로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긍정적인 M&A 환경 속에서 일본에 대한 행동주의 펀드의 관심도 크게 증가했다”며 “올해 상반기 행동주의가 관여한 기업이 139개사로 전년 대비 24% 늘었고 금액은 18조엔에 달했다”고 부연했다.
한국은 이 같은 일본의 경험을 참고해 인수제안 공시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국내 지배구조의 특수성을 고려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배주주와 우호지분을 보유한 기업들이 인수제안을 거절하더라도 일반주주가 이를 알기 어려운 구조가 문제로 지목됐다.
김수현 DS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국내 기업의 높은 지배주주 지분율과 우호지분 구조가 베어허그의 실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대주주 지분율이 높고 우호지분도 많아 베어허그가 도입되더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며 “인수 대상 기업뿐 아니라 경영권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가 인수제안을 받았을 때도 공시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호지분을 보유한 이유도 공시할 필요가 있다”며 “경영권 변경 시 대출 조기상환이나 라이선스 계약 해지 등이 발생하는 조항도 사업보고서에 미리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사회에 대한 제재 수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주홍 라이프자산운용 변호사는 개정안에 담긴 최대 1억원의 과태료만으로는 이사회의 의무 이행을 강제하기 어렵다고 봤다. 그는 “과태료가 부과되더라도 이사 개인이 아니라 회사가 부담하게 되면 결국 주주에게 부담이 돌아간다”며 “이사가 의무를 위반했을 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벌칙 규정을 정확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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