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한 여인의 재혼이 작은 나라의 재정을 좌우한다.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은 한나 글라바리가 파리 사교계에 나타나자, 외교관들은 구혼자를 찾느라 분주해진다. 한나가 외국인과 혼인하면 막대한 재산이 국경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유력한 후보는 옛 연인 다닐로 백작. 정작 두 사람은 과거의 상처와 자존심 때문에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한다.
성동문화재단은 오스트리아 작곡가 프란츠 레하르의 오페레타 ‘유쾌한 미망인’을 내달 27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성동구 소월아트홀에서 공연한다. 1905년 빈에서 초연된 작품을 90분 길이의 ‘성동 미니어처 오페라’ 형태로 재구성했다.
◇한나의 유산을 지켜라…사랑과 외교가 얽힌 파리의 무도회
‘유쾌한 미망인’은 가상의 나라 폰테베드로 출신 인물들이 파리 사교계에서 벌이는 소동을 그린다. 남편에게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한나는 구혼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다. 폰테베드로의 제타 남작은 한나가 외국인과 재혼하면 국가 경제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우려해 자국 출신 다닐로와 혼인시키려 한다. 다닐로와 한나는 과거에 사랑했던 사이다. 가난했던 시절 신분 차이로 헤어진 기억이 남아 있고, 다닐로는 재산을 노려 접근한다는 의심을 받을까 봐 구애를 주저한다. 한나도 자신의 재산과 상관없이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못한다.
두 사람의 밀고 당기기에 제타 남작의 아내 발랑시엔과 젊은 귀족 까뮈 드 로시옹의 관계까지 끼어들면서 파티는 복잡한 연애 소동으로 번진다. 발랑시엔과 까뮈의 비밀스러운 관계가 드러날 위기에 처하자 뜻밖의 오해가 생기고, 한나와 다닐로의 사랑도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경쾌한 연애극의 속에는 재산을 둘러싼 계산도 담겨 있다. 누구와 혼인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행복과 나라의 재정까지 흔들린다는 설정은 20세기 초 유럽 사교계의 허영과 이해관계를 익살스럽게 드러낸다. 1905년 초연 당시부터 인기를 얻은 ‘유쾌한 미망인’은 프랑스 극작가 앙리 메이야크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빅토르 레옹과 레오 슈타인이 대본을 썼으며, 레하르의 왈츠 선율과 재치 있는 극적 전개가 작품의 특징이다.
◇왈츠와 아리아로 풀어낸 사랑…이경진·오바울 주역
레하르의 음악은 부드러운 왈츠와 경쾌한 합창, 서정적인 아리아를 오간다. ‘빌랴의 노래’와 ‘입술은 침묵하고’는 작품을 대표하는 곡으로, 소월아트홀 공연에서도 라이브 연주로 선보일 예정이다. 오페레타는 19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경희극 성격의 음악극이다. 성악 독창과 합창, 관현악 연주에 대사와 춤을 활용한다. 비극적 서사가 많은 정통 오페라와 비교하면 희극적 사건과 인물들의 재치 있는 대화에 무게를 싣는 경우가 많다.
‘유쾌한 미망인’에서도 음악은 인물의 감정을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나와 다닐로는 서로에게 애정이 남아 있으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고백을 미룬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노래와 왈츠는 말로 표현하지 못한 감정을 드러내는 수단이다. 한나 글라바리 역은 대한민국 오페라 대상 여자 신인상을 수상한 소프라노 이경진이 맡는다. 옛 연인 다닐로 백작은 바리톤 오바울이 연기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을 전체 수석으로 졸업한 오바울은 여러 성악 콩쿠르에서 입상했다.
소프라노 조예희는 제타 남작의 아내 발랑시엔 역에 출연한다.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를 수석 졸업했으며 여러 오페라에서 주역을 맡았다. 발랑시엔과 비밀스러운 사랑에 빠지는 까뮈 드 로시옹 역은 테너 오의영이 담당한다. 독일 뉘른베르크 국립음대 오페라과를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그라츠 오페라극장 오펀스튜디오에서 활동했다. 바리톤 이천초는 한나의 혼인을 국가 재정과 연결해 접근하는 제타 남작으로 출연한다. 이탈리아 파르마 국립음악원을 졸업한 이천초는 국립오페라단 솔리스트를 역임했다. 연출은 국내 여러 오페라단과 작업한 최이순이 맡았다. 정월태가 예술감독 겸 지휘자로 참여하고, 박진희가 음악감독을 담당한다. 유니버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며 메트 오페라 합창단이 무대에 오른다.
◇90분에 압축한 고전…성동 미니어처 오페라의 시도
성동문화재단은 2022년부터 고전 오페라를 비교적 짧은 공연 시간에 소개하는 ‘미니어처 오페라’ 시리즈를 운영했다. ‘라 트라비아타’, ‘카르멘’,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 ‘사랑의 묘약’, ‘리골레토’, ‘세빌리아의 이발사’ 등 널리 알려진 작품을 선보였다. 긴 공연 시간과 복잡한 줄거리에 부담을 느끼는 관객도 오페라를 접할 수 있도록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대규모 오페라는 공연 시간이 길고 등장인물이 많아 처음 관람하는 관객에게 진입 문턱이 높을 수 있다. 성동 미니어처 오페라는 작품의 주요 서사와 음악을 압축해 비교적 짧은 시간에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데 목적을 둔다. ‘유쾌한 미망인’은 원작부터 노래와 대사, 춤이 어우러지는 오페레타다. 복잡한 연애 관계 속에서도 경쾌한 음악이 극의 분위기를 이끄는 만큼 가족 관객과 오페라 입문자에게 소개할 만한 작품이다.
90분 공연에서는 한나의 재산을 둘러싼 구혼 작전과 다닐로와의 재회, 발랑시엔과 까뮈의 연애 소동이 주요 이야기를 이룬다. 세 막으로 구성된 원작을 압축하면서 대표적인 선율과 인물들의 관계를 어떻게 살려낼지가 관람의 관심사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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