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 되찾은 생명의 숨, 팔현습지를 그대로 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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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 되찾은 생명의 숨, 팔현습지를 그대로 두라

프레시안 2026-10-29 14:06: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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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초, 생태조사 활동에 참여하는 시민들과 함께 팔현습지로 발을 들였다. 대구 도심을 가로지르는 금호강 중류에 자리한 이 습지는, 인구 200만이 넘는 대도시 한복판에 이런 곳이 남아 있었나 싶을 만큼 깊고 고요하다. 물가를 따라 걷다 보면 습지는 어느 순간 걸음의 속도를 늦추게 만든다. 그 품으로 들어서자, 우리가 잠시 머물다 가는 이곳이 실은 다른 생명들의 오랜 보금자리라는 것을 스치는 공기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꺽지, 참몰개, 돌마자, 밀어, 꾀꼬리, 파랑새, 후투티, 오목눈이, 고마리, 좀목형, 노랑어리연, 털중나리, 그리고 수많은 생명들.

팔현습지는 올해 우리에게 눈부신 이름들을 알려줬다. 봄과 가을에 진행한 생태조사에서 22종의 어류를 확인했고, 그 가운데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얼룩새코미꾸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물가에서는 봄에 26종, 가을에 24종의 새들을 만났으며,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흰목물떼새 역시 두 번 모두 모습을 보였다. 물속에서 흔들리는 나사말부터 물가의 왕버들까지, 기록한 식물만 153종에 이른다. 그 이름 하나하나는 이 습지가 견뎌온 시간의 증거였다.

그런데 이제 그 고요한 터전 위로 다리를 놓겠다고 한다. 낙동강유역환경청이 추진하는 금호강 고모지구 하천환경정비사업이다. 이 사업에는 886미터 길이의 보도교를 포함한 약 1.5킬로미터 산책로 공사 계획이 들어 있다. 반대에 부딪혀 멈춰 선 공사는 지난 4년 동안 팔현습지의 평온함을 언제든 깨트릴 수 있는 불안이었다. 그러던 지난 10월 16일, 환경청이 올해 안에 보도교 기초작업을 추진한다는 내용을 담은 사업계획서를 기습적으로 승인했다. 2029년까지 보도교에만 142억 원을 들이겠다는 계획이다.

▲2026년 10월 28일 촬영한 대구 금호강 팔현습지, 150년 된 왕버들 군락 ⓒ이명은

이것은 팔현습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전국의 강과 습지, 갯벌과 숲에는 '시민 편의'와 '친수 공간'이라는 이름으로 데크길과 전망대, 출렁다리가 놓이고 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았던 곳일수록 더 많은 사람을 불러들이려는 사업의 표적이 되고, 자연을 보여주겠다는 시설이 정작 그 자연을 밀어내는 일이 곳곳에서 되풀이된다. 팔현습지에서는 그 역설이 한층 도드라진다. 보도교는 습지를 지켜야 할 환경 당국이 직접 추진하는 사업이다. 한쪽에서는 지키겠다면서 다른 쪽에서는 그 한가운데 다리를 놓는 이 모순은, 우리 사회가 자연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되묻게 한다.

강물이 산에 부딪혀 돌아 흐르며 오랜 세월 깎아낸 벼랑을 하식애라 한다. 금호강 거센 물길이 긴 시간 같은 자리를 거듭 할퀴어 팔현습지에서 하식애를 빚었고, 산은 묵묵히 제 살을 내어줬다. 그것은 강이 제 몫의 일을 해 온 흔적이다. 그렇게 깎인 벼랑은 수리부엉이가 깃들이는 둥지가 됐고, 그 아래로는 왕버들 숲이 자라나 그늘을 드리웠다. 자연이 스스로 만든 자리가 귀한 생명들의 안식처가 됐다.

환경청이 연 자문회의에서 전문가들은 대도시권에서 하늘다람쥐와 담비를 확인한 첫 사례인 만큼 보도교가 이들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며 공사를 멈추고 기존 시설을 활용한 우회로를 검토하라고 권고했다. 올해 3월에는 국가유산청도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자 천연기념물인 남생이의 보호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그런데도 환경청은 사업계획서에 도장을 찍었다. 환경청은 설계를 세 차례 고치고 다리를 절벽에서 64미터 떨어뜨렸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다리를 어디로 옮기든, 사람의 길과 인공 구조물이 습지를 가로질러 생명의 터전을 끊어놓는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 사이 팔현습지를 지키려는 마음들이 하나둘 모였다. 전문가와 시민이 참여한 생태조사는 습지에 깃든 생명들의 이름을 차곡차곡 기록해 왔고, 예술인들은 습지에서 예술활동을 하며 사람들이 이곳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후보 22명이 보도교 공사 철회를 함께 약속했다. 9월에는 보도교에 반대하는 인근 주민들이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언제든 공사를 시작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대구 18개 시민사회단체와 정당이 참여하는 '팔현습지 지키기 공동대책위원회'는 10월 28일부터 보도교 공사가 철회될 때까지 습지 곁에서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보도교를 짓기를 바라는 마음은 얼마나 다른 걸까. 팔현습지 쪽은 강 건너편과 다르게 길이 이어져 있지 않다. 다리를 놓고 자연을 편리하게 이용하고 싶다는 마음 또한 자연이 가치 있기 때문에 품는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자연을 좋아하는 것이 과연 모든 곳을 다 들여다보고 발자국을 남기는 일이어야 하는 걸까. 편리한 통로가 들어서고 관광 명소가 되는 순간, 습지가 지켜 온 고요는 가장 먼저 바스러진다. 아끼는 대상일수록, 필요한 것은 그 스스로가 간직해 온 침묵과 자리를 침범하지 않는 절제다.

금호강은 1960~1970년대에는 산업화의 그늘 속에서 극심한 오염으로 신음했고 물길은 메말라 갔다. 그 많던 물고기들도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2001년 임하댐 물을 영천댐으로 끌어오는 도수로가 놓이고 나서야 강은 겨우 숨을 되찾았고, 떠났던 물고기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 회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금호강은 지난 그 아픔을 품에 안은 채 조용히 다시 살아나는 중이다. 한 번 무너진 하천 생태계는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금호강이 수십 년에 걸쳐 되찾은 생명의 숨을, 다리 하나와 사람의 편리를 위해 다시 흔들 수는 없다.

시간이 빚어낸 강의 모습을 그대로 두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이 습지에 건넬 수 있는 가장 깊은 사랑이다. 우리는 생명의 터전 팔현습지와 오래 오래 함께하고 싶다.

▲대구 금호강 팔현습지, 18개 시민사회단체와 정당이 꾸린 ‘팔현습지 지키기 공동대책위원회’가 게시한 현수막. ⓒ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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