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국민사서함’으로 접수한 국민 의견 3만8741건을 대통령기록물로 등록하지 않고 파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실은 행사 활용을 위해 수집한 자료로, 목적을 달성해 파기했다고 설명했다. 쟁점은 모든 의견에 대통령이 직접 답했느냐에만 있지 않다. 어떤 의견을 선정해 보고했고, 나머지는 어떻게 검토했으며, 어떤 기준으로 보존 대상에서 제외했는지다. 행사 종료와 국민 의견의 처리·기록관리는 구분해서 확인해야 한다.
▲행사 활용 10건의 의미
29일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과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이 공개한 대통령비서실 국정감사 서면답변에 따르면, 국민사서함에는 지난해 6월 24일부터 9월 8일까지 국민 의견 3만8741건이 접수됐다.
대통령실은 이 가운데 경제·민생 분야 1만7062건을 선별해 세부 유형으로 분류하고, 주요 의견 10건을 지난해 10월 14일 디지털토크라이브 행사에서 활용했다고 밝혔다. 행사 활용 건수는 전체 접수량의 약 0.026%다.
이 비율을 곧바로 답변율이나 검토율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서면답변에는 1만7062건을 분류했고 주요 의견 10건을 대통령과 함께 논의했다는 설명이 있다. 나머지 의견을 전혀 검토하지 않았다거나 대통령의 답변이 한 건도 없었다고 단정할 근거로 삼기는 어렵다.
당초 발표도 대통령이 모든 질문에 개별 답변하겠다는 내용은 아니었다. 대통령실은 접수된 질문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공감대가 높거나 시의성 있는 의견에 대통령이 직접 답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확인해야 할 것은 전체 의견의 보고 여부와 선정 기준, 행사 이후 정책 검토로 이어진 내용이다.
대통령실은 답변 목록을 요구받자 주소·연락처 등을 수집하지 않았고 개별 의견에 답변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운영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는 개별 회신이 어려웠던 사정에 대한 설명이다. 분야별 검토 결과를 정리하거나 주요 의견의 선정·처리 경위를 공개했는지는 별도로 확인할 문제다.
▲창구 일원화와 자료 이관
운영 종료 안내도 기존 접수 자료의 처리와 나눠 봐야 한다. 천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사서함 접수 화면에는 “국민신문고로 운영을 일원화하게 되었습니다”라는 안내가 게시됐다. 그러나 국민신문고 운영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는 자료 이관과 관련해 협의한 바 없다고 회신했다.
신규 의견의 접수 창구를 국민신문고로 통합하는 것과 기존 국민사서함 자료를 이관하는 것은 다른 절차다. ‘운영 일원화’라는 안내만으로 기존 자료의 이관까지 약속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해당 문구에는 이미 접수한 의견을 어디에서 검토하고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자료 관리에는 직원 개인 계정이 사용됐다. 대통령비서실은 국민사서함을 관리자 개인 계정으로 운영했으며 관리자와 접근권한자가 동일 인물이었다고 답했다. 현재는 업무가 종료돼 접근권한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도 설명했다.
개인 계정 사용만으로 정보 유출이 발생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기관이 접수한 자료를 개인 계정으로 관리했다면 기관 차원의 접근권한 통제와 업무 인계, 다운로드·공유 및 사본 관리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실은 다운로드·공유 이력에 대해 수집 정보를 복구하거나 재생할 수 없도록 파기해 현재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답변만으로 자료가 외부에 유출됐다거나 별도 사본이 남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동시에 자료의 이용·공유 경위가 적절했는지 검증하는 데도 한계가 생겼다.
▲개인정보 파기와 기록 보존
대통령실은 국민사서함 의견을 디지털토크라이브 행사 활용 목적으로 수집했으며, 내부 검토 결과 대통령기록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대통령기록물로 등록한 사실이 없고 수집 목적 달성에 따라 파기했다는 설명이다.
동의서에 기재된 ‘6개월 후 파기’ 방침과 기록물 관리의 관계를 검토한 문서는 내부 보안과 관련된 사항이라 제출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공개된 자료만으로는 기록물 해당 여부를 판단한 구체적인 근거와 검토 과정을 확인하기 어렵다.
개인정보 파기 의무와 법정 기록물 보존 의무는 함께 검토해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법 제21조는 보유기간이 지났거나 처리 목적을 달성해 불필요해진 개인정보를 지체 없이 파기하도록 규정한다. 다만 다른 법령에 따라 보존해야 하는 경우에는 예외를 둔다. 수집 목적이 끝났다는 사실만으로 다른 법령에 따른 보존 의무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조문정보
반대로 공개된 서면답변만으로 불법 파기를 확정할 수도 없다. 해당 자료의 기록물 해당 여부와 적용한 보존·폐기 기준, 실제 파기 절차를 확인해야 한다. 대통령실의 미등록 사실과 기록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은 구분해서 검증할 사안이다.
행사 활용을 위해 의견을 수집했다는 설명과 국정에 반영할 국민 의견을 받았다는 당초 안내 사이의 관계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 행사 활용이 수집 목적이었다면 참여자에게 그 범위를 어떻게 고지했는지, 국정 의견 수렴의 성격도 있었다면 보고·검토 결과를 어떤 형태로 남겼는지가 중요하다.
필요한 것은 국민이 제출한 사연과 개인정보의 일괄 공개가 아니다. 의견 분류와 선정 기준, 보고·검토 경로, 기록물 해당 여부를 판단한 근거와 파기 범위를 확인하는 일이다. 공개가 곤란한 정보는 보호하되 그 범위와 사유는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국민사서함의 운영 성과도 접수 건수보다 접수 이후의 처리 과정으로 평가해야 한다.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은 “국민의 사연은 직원 개인 계정에 있다가 기록도 없이 사라졌다”며 “접수·답변·보관·폐기 기준부터 밝혀야 한다”고 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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