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가 플래그십 전기 SUV GV90에 적용된 핵심 안전 기술과 개발 과정을 공개했다. 기존 차체 구조를 바꾸면서도 충돌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설계와 시험 방식을 도입했으며, 실제 사고 상황까지 고려한 기술 개발에 역량을 집중했다고 제네시스는 밝혔다.
B필러 없는 차체의 안전성 확보… 평가 과정 3배 늘려
GV90 네오룬의 차체와 플랫폼. / 제네시스
제네시스는 지난 28일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에서 GV90 테크 데이를 개최하고 주요 기술을 개발한 연구진의 설명과 함께 차량의 설계·검증 과정을 소개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연구개발 및 제조 부문 실무 책임자 12명이 참여해 네오룬 콘셉트를 양산차에 구현하는 과정에서 마주한 기술적 과제와 해결 방법을 공개했다.
GV90 개발에서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는 B필러가 없는 차체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제네시스는 초기 기획 단계부터 B필러를 제거하기로 결정했지만, 기존 차체 구조를 유지한 채 도어만 변경하는 방식으로는 요구 성능을 충족하기 어려웠다. 이에 차체 골격과 도어, 힌지, 잠금장치까지 새롭게 설계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문제는 B필러가 사라진 공간에서 기존 기둥이 담당하던 하중 전달 기능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였다. 제네시스는 도어 개구부 주변을 하나의 고리처럼 연결하는 히든 롤케이지 구조를 적용하고, A필러에서 루프로 이어지는 차체 내부에 길이 2.5m의 고강도 스틸 튜브를 배치했다. 도어 내부에는 초고강도 듀얼 스틸 빔을 적용해 측면 충돌 시 충격을 분산하고, 상·하단 래치를 통해 도어가 차체 골격의 일부로 기능하도록 했다.
현장 질의응답에 참여한 제네시스 연구원들. / 제네시스
이러한 구조를 검증하기 위해 시험 과정도 확대했다. 안세진 제네시스프로젝트2실 상무는 현장 질의응답에서 일반적인 차량 개발 과정과 비교해 각 단계에서 약 3배에 달하는 평가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충돌 시험뿐 아니라 설계 초기부터 하중 전달 경로를 분석하고, 차량 구조가 완성되기 전 단계에서도 충돌 상황을 예측해 검증했다는 것이다.
제네시스 연구소 자체 시험 결과, GV90 네오룬은 지붕에 14톤포스 이상의 하중이 가해지는 조건을 견뎠다. 시속 60km 측면 직각 충돌 시험에서는 차체 측면이 밀려 들어온 이후에도 최소 320mm의 탑승객 생존 공간을 확보했다.
사고 이후의 탈출 가능성도 검토했다. 개발진은 다양한 충돌 시험에서 전원 공급이 유지되는 것을 확인했으며, 전원이 차단되는 상황을 대비해 수동 비상 탈출 레버를 마련했다. 초기 설계에서는 레버가 작고 낮은 위치에 있었지만, 반복적인 사용자 평가를 통해 크기와 위치를 변경했다. 체구가 작은 탑승자도 무거운 도어를 직접 열 수 있도록 조작에 필요한 힘을 줄이는 데 집중했다.
3톤 넘는 전기차도 충돌 시 비켜나도록… eMP 플랫폼 새롭게 설계
GV90의 eMP 플랫폼. / 권혁재 PD
GV90의 안전 기술은 새로운 전기차 전용 플랫폼에서도 이어진다. 제네시스는 플래그십 전동화 차량을 위해 eMP(Electric Mobility Prime) 플랫폼을 개발하면서 단순히 차체를 단단하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충돌 순간 차량이 움직이는 방향까지 제어하도록 설계했다.
대형 전기 SUV는 무거운 배터리와 구동계를 탑재하기 때문에 충돌 시 발생하는 운동에너지가 크다. 특히 GV90처럼 3톤이 넘는 차량에서는 충격을 흡수하는 구조뿐 아니라 에너지를 의도한 방향으로 분산하는 설계가 중요하다.
제네시스는 이를 위해 스몰 오버랩 충돌 시 차량이 장애물을 비켜 지나가도록 유도하는 슬라이드 어웨이 구조를 적용했다. 전방에 배치한 디플렉터와 프렁크바가 충돌 에너지를 측면으로 분산하고, 차체가 장애물에 정면으로 걸리는 대신 옆으로 이동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는 충격을 견디는 것뿐 아니라 차량의 충돌 후 거동까지 고려한 설계다. 박지웅 바디아키텍처개발팀 팀장은 가벼운 차량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을 비교적 쉽게 구현할 수 있지만, 3톤이 넘는 전기차에서는 매우 까다롭다고 설명했다. GV90는 차체 중량과 충돌 에너지를 고려해 새로운 부품과 하중 전달 구조를 개발했다.
GV90의 충돌시험 장면. / 제네시스
고속 정면충돌에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배터리와 탑승 공간을 보호한다. 충돌로 뒤쪽으로 밀려나는 서브프레임과 PE 시스템이 고전압 배터리를 직접 압박하지 않도록 아래쪽으로 미끄러져 지나가는 구조를 마련했다. 충돌 시 주요 구동계 부품의 이동 방향까지 제어해 배터리 손상 가능성을 줄이려는 설계다.
차체 구조물의 72%에는 알루미늄 경량재를 적용해 중량 증가를 억제했으며, 하중이 집중되는 서스펜션 연결부에는 할로우 캐스팅 공법을 도입했다. 여러 폐단면을 접합부 없이 하나의 부품으로 주조하는 방식으로, 제네시스는 제조비가 높은 공법임에도 플래그십에 필요한 차체 강성을 확보하기 위해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차량 내부 공간 역시 안전성과 함께 고려했다. 제네시스는 기존 차량에서 바닥 아래에 위치했던 통합 충전 제어 장치(ICCU)와 실내 공조 장치를 전방 PE룸으로 옮기고, 후방 구동계와 서스펜션, 후륜 조향 장치를 입체적으로 배치했다. 이를 통해 1열부터 2열까지 이어지는 평평한 바닥과 넓은 실내 공간을 확보하면서도 충돌 하중을 전달하는 차체 구조를 설계했다.
실제 전복 사고 재현한 루프 에어백… 실차 40대로 검증
GV90 전복 실험. / 제네시스
GV90에 세계 최초로 적용된 루프 에어백 역시 실제 사고에서 탑승객이 다치는 상황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출발했다. 제네시스 연구진은 차량 전복 사고에서 루프 글라스를 통한 탑승객 이탈과 머리 부상 위험에 주목하고, 기존 커튼 에어백과 별도로 천장 전체를 보호하는 장치를 개발했다.
루프 에어백은 차량이 전복되는 상황에서 천장을 따라 펼쳐져 탑승객이 외부로 이탈하는 것을 막고, 천장과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머리 부상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약 1400mm에 달하는 구간을 0.08초 만에 덮어야 하는 만큼, 일반적인 에어백과 다른 전개 구조가 필요했다.
개발진은 양쪽 측면에 수납된 와이어와 스프링 하우징을 활용해 에어백이 천장을 따라 펼쳐지면서 고정되는 구조를 개발했다. 초기에는 전개 과정에서 측면과 전방 일부에 보호되지 않는 공간이 발생했지만, 에어백이 추가로 펼쳐지는 영역을 마련해 비전 루프 글라스를 덮도록 개선했다.
루프 에어백 전개 예시. / 제네시스
작동 조건도 실제 사고 상황에 맞춰 설계했다. 측면 충돌과 동시에 차량이 전복된다고 판단하면 사이드·커튼 에어백과 루프 에어백이 함께 전개된다. 반면 측면 충돌 이후 차량이 미끄러지다가 전복되는 상황에서는 사이드·커튼 에어백이 먼저 작동하고, 전복이 감지되는 시점에 루프 에어백이 추가로 펼쳐진다.
검증 과정 역시 일반적인 평가 조건보다 확대했다. 제네시스는 차량이 약 90도 기울어지는 시험을 넘어 180도 이상 회전하는 전복 시험을 새롭게 마련했으며, 실차 40대와 300회 이상의 에어백 단품 평가를 진행했다. 현장에서는 시속 110km 조건의 전복 시험까지 진행했다는 설명도 나왔다.
손유지 승객안전시스템설계팀 책임연구원은 안전벨트를 착용한 승객도 고속 다중 전복이나 사고 이후 장애물이 루프 쪽으로 침입하는 상황에서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개발진은 큰 체격의 탑승자를 모사한 더미를 활용한 시험에서도 탑승객 이탈이 발생하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GV90 네오룬. / 권혁재 PD
GV90의 안전 기술은 단순히 새로운 장비를 추가하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B필러를 없애기 위해 차체 전체의 하중 전달 구조를 다시 설계하고, 무거운 전기차의 충돌 방향을 제어하는 부품을 개발했으며, 기존 평가에서 충분히 다루지 않았던 전복 사고를 직접 재현하는 시험 방식까지 마련했다.
허광훈 제네시스개발담당 상무는 이날 행사에서 "엔지니어링은 흔히 타협의 기술이라고 하지만 GV90는 그 순서를 뒤집어 고객을 위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기준부터 먼저 세우고 이를 끝까지 지켜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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