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53년 만 존폐 갈림길 선 체육인 병역특례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남자 23세 이하 축구 국가대표팀이 일본을 1대 0으로 꺾고 대회 사상 최초의 4회 연속 금메달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그러나 우승의 환희는 채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거센 역풍을 맞았다. 결승전 직후 일부 선수들이 보인 병역 혜택 관련 언행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다. 선수 개인의 부적절한 처신에서 비롯된 비판 여론은 체육요원 병역특례 제도의 공정성과 실효성을 묻는 사회적 논쟁으로 번졌고, 정부와 정치권이 제도 전반에 대한 재검토에 착수하는 도화선이 됐다.
“군대 안 갑니다” 경솔한 언행이 부른 나비효과
논란의 발단은 지난 10월 3일 결승전 종료 직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과 라커룸에서 나왔다. 대표팀 주장 이기혁은 취재진과의 인터뷰 전후로 금메달을 들어 보이며 “군대 안 갑니다”라고 말했고, 공격수 양민혁은 우승 소감을 묻는 질문에 “군 면제라는 보상 하나만 보고 뛰었다”는 취지로 답해 태극마크의 가치보다 개인의 병역 혜택을 우선시했다는 비판을 불렀다. 여기에 또 다른 선수 박승수가 관중석에서 건네받은 구형 전역모를 삐딱하게 착용하고 거수경례를 하는 사진과 영상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게시하면서 여론은 급격히 냉각됐다.
같은 시기 국방의 의무를 이행 중인 청년 장병들과 대중 사이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주요 외신까지 한국 선수들의 병역 관련 발언 논란을 비중 있게 보도하며 파장이 커졌다. 사안이 심각해지자 해당 선수 3명은 곧바로 SNS와 귀국 인터뷰를 통해 사과문을 게재했고, 유승민 대한체육회장 역시 “국가대표에 걸맞은 정제된 발언과 품위를 갖춰야 한다”며 유감을 표했다. 대한축구협회 또한 공식 사과와 함께 자체 징계 절차 검토에 나섰으나, 한번 불붙은 여론은 선수 개인의 인성 문제를 넘어 ‘예술·체육요원 편입 제도’ 자체의 존폐 논의로 빠르게 옮겨붙었다.
시대 변화와 충돌하는 ‘국위선양’ 프레임
이번 사태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고 제도 폐지론으로 직결된 배경에는 오랫동안 누적되어 온 병역특례 제도의 구조적 모순이 자리 잡고 있다. 1973년 도입된 체육요원 병역특례(현행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1위 입상자 대상 기초군사훈련 및 34개월간 특기 봉사활동으로 군 복무 대체)는 과거 엘리트 체육 육성을 통한 ‘국위선양’을 목적으로 설계됐다. 그러나 한국 스포츠의 위상이 높아지고 프로 스포츠 시장이 비대해지면서 제도의 본래 취지가 퇴색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로 최근 조사에 따르면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와 2023 항저우 대회를 통해 병역특례 혜택을 받은 체육요원 98명 중 약 70%에 달하는 68명이 축구와 야구 두 종목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아이치·나고야 대회에서도 축구와 야구 두 종목에서만 36명이 편입 요건을 충족했다. 단일 종목으로 최대 20여 명의 엔트리가 한꺼번에 혜택을 받는 구기 종목의 특성상, 개인 종목 선수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끊이지 않는 대목이다. 또한 아시안게임 축구는 23세 이하 연령 제한이 적용되고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포인트조차 부여되지 않는 대회인 만큼, 세계 최고 권위의 무대에서 활약하는 대중문화 예술인이나 순수 아마추어 비인기 종목 선수들과 비교해 보상의 기준이 과도하다는 비판이 힘을 얻고 있다. 실제로 대회 직후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3.7%가 예술·체육요원 병역특례 제도의 축소 또는 폐지에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체육계 현실 고려한 정교한 대안 필요
여론이 악화하자 정부와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제도 손질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방부는 정례브리핑을 통해 “병역의무자 간의 형평성과 공정성, 저출산에 따른 병역자원의 급격한 감소 상황, 국민적 공감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예술·체육요원을 포함한 보충역 감축·폐지를 국방개혁 기본계획에 반영해 추진할 계획”이라고 공식화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역시 국회 국정감사에서 제도를 보다 공정하고 엄정하게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국회에서는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병역특례 요건에서 제외하거나 체육요원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내용의 병역법 개정안 발의가 잇따르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여론에 떠밀린 즉흥적 폐지보다 체육계의 현실을 반영한 정교한 제도 재설계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20대 초반에 기량이 만개하는 운동선수의 특성상 현역 입대에 따른 경력 단절이 해외 리그 진출 및 국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고, 특히 비인기 아마추어 종목의 경우 병역특례와 상무(국군체육부대) 외에는 선수 생명을 이어갈 동력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프로 구단 역시 병역 혜택이라는 유인이 사라지면 차출 의무가 없는 아시안게임에 핵심 선수 차출을 거부할 가능성이 커 대회 경쟁력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결국 50여 년간 유지되어 온 병역특례 제도는 인구 절벽 시대의 ‘공정’이라는 거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과거처럼 메달 색깔 하나로 면죄부를 부여하는 일률적 포상 방식에서 벗어나, 국제대회 입상 점수를 합산하는 ‘누적 점수제’ 도입이나 올림픽 입상으로의 기준 상향, 혹은 은퇴 시점까지 입영을 연기해 경력 단절을 막아주는 대체 복무 다양화 등 청년 세대가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개편안 마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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