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 칼럼] 상념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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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 칼럼] 상념①

문화매거진 2026-10-28 20:29:4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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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gn', 모래, 형광등, 가변설치, 2017
▲ 'sign', 모래, 형광등, 가변설치, 2017


[문화매거진=이응 작가] 학부 시절, 미술이론 시간에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자주 거론됐고, 그 질문을 두고 학생들끼리 함께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정확히 어떤 말이 오갔는지는 다 기억나지 않지만, 예나 지금이나 내 예술관에는 크게 변하지 않은 부분이 있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탈바꿈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변하지 않는 지점부터 말해보자면, 나는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예술을 만들고 향유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예술보다 삶이 먼저라는 생각이다. 예술은 행위로서 분명히 존재하지만, 인간의 삶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서 있는 실체는 아니다. 그래서 예술을 만들고 향유하는 인간이 하는 하나의 행위라는 관점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 관점은 나를 ‘중증 예술가병’까지는 가지 않게 해준 생각이기도 하고, 언제나 현실감각을 잃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중요한 기준이기도 하다.

변해버린 것들을 하나씩 나열하자면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현실감각이 예전보다 훨씬 강해졌다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내가 좋아하는 예술의 취향도, 감각적으로 마음이 열리는 지점도 많이 달라졌다. 불혹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자기만의 관점과 시선도 생각보다 완고해진 것 같다. 쉽게 마음을 열지 않게 되었고, 무엇이 좋은지 싫은지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알아차리게 되었다. 좋고 싫음에 반응하는 감각의 날이 전보다 더 벼려진 것 같기도 하다.

예를 들어 20대 중후반까지는 데미안 허스트나 트레이시 에민의 작품을 재미있어하고 좋아했다. 그런데 지금은 별다른 감흥이 없다. 때때로 허스트의 작품을 떠올리면 ‘굳이 동물의 사체를 유리장에 넣어 전시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행위가 더 이상 예술적으로 강렬하게 다가오기보다는, 작품을 철수하는 날이 되면 ‘저건 누가 치우지?’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질문이 먼저 떠오른다. 

예전에는 작품을 보면서 그 작품이 만들어내는 충격, 낯섦, 환상, 개념적 가능성에 먼저 반응했다면, 지금은 그 작품이 놓여 있는 물질적 조건과 인간의 삶이 먼저 보이는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지금 느끼는 ‘현실감각’이 정말 더 깊어진 감각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삶의 경험이 많아지면서 예술에 쉽게 속아주지 못하게 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예전엔 반 고흐의 그림을 보면 너무 대중적으로 소비된 탓인지 조금 지겹고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여전히 고흐의 그림 자체가 특별히 재미있지는 않지만, 색감과 터치를 이전보다 유심히 들여다보게 된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당시 한 사람의 손에서 이런 표현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림 자체보다 그것을 그린 고흐라는 사람에게 조금 더 시선이 기울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고흐라는 인물에 대해 너무 심취하고 싶지도 않은데, 그의 삶은 너무 비극적이고 그 비극이 작품만큼이나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방식이 어딘가 불편한 마음도 든다.

그래서인지 우스갯소리로, 나는 살아 있을 때 행복한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 고흐의 비극적인 삶을 바라보며 그와는 반대편에 서고 싶은 마음도 있다.

나는 삶을 바쳐 작품을 남기는 이야기에는 마음이 가지 않는다. 내게 창작은 실제 삶이기 때문이다. 예술이 사람의 행위라면 그 행위는 사람의 시간으로 이루어지고, 그 시간이 곧 삶이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작품이 되기 전에 먼저 내가 살아내는 하루이고, 훗날 작품이 어떤 평가를 받는다 해도 그 하루는 돌려받을 수 없다. 그러니 작업은 삶을 바치는 곳이 아니라 삶이 이루어지는 자리이길 바란다.

▲ 'sign', 모래, 형광등, 가변설치, 2017
▲ 'sign', 모래, 형광등, 가변설치,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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