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구씨 작가] 2년마다 열리는 비엔날레는 빼놓지 않고 관람하는 편이다. 올해는 창원조각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가 비슷한 시기에 열렸지만 여러 여건상 광주만 다녀오게 되었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에서는 5개 관으로 구성된 본전시가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서 진행되었고, 국가·도시·문화예술기관 27곳이 참여한 28개 전시가 광주 전역의 파빌리온에서 열리고 있었다. 세계 각국 작가의 작업, 그리고 평소 전시장에서 보기 힘든 설치 작업을 즐기다 보면 광주라는 도시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질 수 있었다.
효율적인 관람을 위해서는 사전에 세워 둔 계획의 몫이 컸다. 짧은 일정 속에서 여러 전시를 봐야 하는 만큼 이동 시간을 줄이는 것이 중요했는데, 지도상에 보고자 하는 파빌리온의 위치를 미리 찍어 둔 동행자 덕분에 생각보다 많은 전시를 보며 2박 3일을 보낼 수 있었다. 첫날은 비엔날레의 중심이 되는 본전시관을, 이튿날은 파빌리온을 돌아보는 우리의 마음가짐은 모든 전시를 꼼꼼하게 보겠다는 거창한 계획보다는 재미있게 열심히 광주를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첫날은 열차 시간에 맞춰 비엔날레 전시관까지 이동하느라 정작 관람에 쓸 수 있는 시간은 두 시간 남짓이었다. 4관과 5관은 꼼꼼히 보지 못했지만, 지난 비엔날레보다는 오히려 힘을 빼고 즐기며 볼 수 있는 계기였다.
사실 이번 비엔날레 주제인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는 문구가 다소 강렬해서, 전시장 곳곳의 작업들이 캐치프레이즈 같은 교훈을 내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일상과 사물이라는 소재를 둘러싼 작업들 가운데 일부는 오히려 웃으며 관람할 수 있었다. 캡션이 유난히 길게 느껴지던 1관을 지나면서 점점 간소해졌고, 그것이 마치 작품과 내가 친해지고 있다는 신호처럼 받아들여졌다. 모든 작업과 모든 관에 같은 집중을 요구하지 않는 전시였다. 동선을 고려한 구성 덕분에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시간과 집중력의 문제로 모든 작업을 세세히 관람하지는 못했지만, 그중에서도 눈에 남은 작업이 있었다. CAMP의 ‘Bombay Tilts Down’(2022)이 그중 하나였다. 35층 높이 건물의 CCTV 영상을 보여 주는 7개의 디스플레이가 불규칙한 지그재그로 놓여 있었고, 그 앞에서 영상을 보는 나의 행위는 CCTV를 보는 방식과 닮아 있었다. 단조로운 영상이 움직이기 시작할 때 고개를 돌려 다른 채널을 보게 되었고, 긴 시간을 빠르게 돌리며 겹쳐 놓은 영상의 기법과 사운드는 낯선 도시 속 삶을 압축적으로 감각해 보게 만들었다. 팬데믹 시기 CCTV에 찍힌 뭄바이의 극적인 불평등이라는 작업의 출발점은 직관적인 화면 연출만으로도 관람객에게 분명하게 전해졌다. 비슷한 결의 작업들 덕분에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는 큰 이야기가 사소한 일상과 사물을 통해 친숙하게 다가왔다.
이튿날에는 열한 시쯤 파빌리온을 향해 나섰다. 숙소에서 도보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첫 파빌리온이 있었고, 그곳에서부터 최대한 많은 파빌리온을 걸어서 돌아보는 게 우리의 목표였다. 광주 송정역 인근을 제외하면 파빌리온은 약 세 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파빌리온 중 아카이브 방식의 전시에서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어 대략적으로 읽어 보고 나오는 방식으로 관람했던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가장 궁금했던 대만관의 ‘인스턴트 던전: 회색지대’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건물 내부에 있었다. 작품 설명에서 AI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기술을 활용한 전형적인 작업과 달리 AI 기술을 각자의 관심사와 이어 전시장까지 끌고 온 과정이 보였고, 작가들의 이전 작업들도 궁금해졌다. 쑤후이위의 ‘우주전사와 디지털 무덤’(2023~2025)은 여러 기술이 접목된 영상이었지만, 정치적·사회적 은유를 퀴어적 요소와 함께 B급 영화처럼 보여 주는 방식은 다음 장면이 궁금한 영상이었다. 루안바이위안의 ‘그라인딩_tw’(2026)은 AI 기술에 대한 오해를 작가가 적극적으로 풀어낸 점이 흥미로웠다.
파빌리온을 따라 도시 곳곳을 둘러보며 광주의 여러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커피 향을 따라 들어간 희경루에서는 작업과 함께 광주가 보이는 경치를 즐길 수 있었고, 광주 극장에서는 작업과 함께 세월이 쌓인 공간의 모습을 그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작업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광주의 거리와 건물이 눈에 익어 있었다. 2028년의 비엔날레에는 더욱 즐기는 관람자로서의 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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