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대전환] ①무기 수출 넘어 산업 수출로…한화가 넓힌 K방산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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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대전환] ①무기 수출 넘어 산업 수출로…한화가 넓힌 K방산 ‘영토’

한스경제 2026-10-28 10:55:5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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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K9 자주포와 천무 다연장로켓 수출을 넘어 폴란드·루마니아·호주 등 해외 현지 생산거점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진은 한화의 방산 수출과 현지 생산·공급망 확대 전략을 이미지화한 모습. AI생성 이미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K9 자주포와 천무 다연장로켓 수출을 넘어 폴란드·루마니아·호주 등 해외 현지 생산거점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진은 한화의 방산 수출과 현지 생산·공급망 확대 전략을 이미지화한 모습. AI생성 이미지 

한화그룹이 방산·조선·에너지를 중심으로 사업의 판을 바꾸고 있다. K9·천무 수출을 넘어 해외 생산거점과 현지 공급망을 구축하고, 조선에서는 한국의 제조기술을 미국으로 확장하는 모습이다. 그 배경에는 시장이 주저할 때 미래 산업에 선제적으로 투자해온 한화 특유의 장기 전략이 있다. 한스경제는 3회에 걸쳐 한화의 방산 수출모델, 조선·해양방산 확장성, 역발상 M&A 전략을 순서대로 짚어본다. <편집자주>

| 서울=한스경제 고예인·이경진 기자| “실패해도 좋다. 자주국방을 위한 기술은 남을 것 아닌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2005년 천무 독자개발을 밀어붙이며 남긴 말이다. 당시만 해도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데다 실패하면 수백억원이 매몰될 수 있는 선행투자였다. 하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 ‘천무’는 K9 자주포와 함께 한화 방산을 대표하는 수출 무기로 자리 잡았다.

한화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자주국방을 위해 축적한 기술을 해외에 판매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이제는 생산시설과 기술, 공급망, 정비체계까지 함께 수출하고 있다. 한국에서 만든 무기를 넘겨주는 데 그치지 않고 구매국이 직접 생산하고 운용·정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는 방식이다. 과거 ‘무기 수출’에 머물렀던 사업의 무게중심이 ‘국방 생산능력 수출’로 옮겨가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변화는 글로벌 방산시장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최근 구매국들은 무기의 가격과 성능뿐 아니라 빠른 납기와 안정적인 공급능력, 자국 산업의 참여까지 요구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필요한 무기를 제때 생산하고 보충할 수 있는 능력이 안보 경쟁력으로 부상하면서 현지 생산과 정비체계의 중요성도 커졌다.

한화는 이 변화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국내 방산기업 가운데 하나다. 폴란드·루마니아·호주 등 주요 수출국에 생산거점을 마련하고 현지 기업을 부품 공급망에 참여시키는 한편, 장비가 배치된 이후의 정비와 성능개량까지 사업영역을 넓히고 있다. 한 번의 수주를 넘어 수십년간 이어지는 후속 물량과 부품·MRO(유지·보수·정비) 수요까지 연결하는 장기 사업구조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성과는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올해 2분기 단독 기준 매출 2조1075억원 가운데 해외 매출은 1조2324억원으로 약 58%를 차지했다. 수주잔고 38조3000억원 가운데 수출 비중은 무려 75%다. 국내 수요를 기반으로 성장했던 방산기업에서 해외 시장이 성장을 이끄는 글로벌 방산기업으로 체질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의미다.

▲완제품 수출에서 ‘현지 방산 생태계’ 구축으로

한화가 현지화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최근 글로벌 방산시장의 구매 공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가격과 성능, 납기가 수주의 핵심이었다면 최근에는 구매국이 자국 기업의 생산 참여와 기술협력, 정비 역량 확보까지 요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필요한 무기를 얼마나 많이 보유했느냐 못지않게 전시에 얼마나 빨리 추가 생산하고 정비할 수 있느냐가 안보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한화는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이집트다. 한화디펜스는 2022년 이집트와 약 2조원 규모의 K9 자주포 수출계약을 체결했다. K9만 공급하는 계약이 아니었다. K10 탄약운반장갑차와 이집트군 작전환경에 맞춘 K11 사격지휘장갑차를 함께 묶었고 초도 물량 이후에는 기술이전을 통한 현지 생산 방식도 포함했다.

여기에 장비 운용교육과 부대·야전·창정비 등 후속 군수지원도 들어갔다. 자주포를 판매하고 사업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장비가 실제 전력화된 이후의 운용과 정비까지 책임지는 구조다.

이집트에서 보여준 모델은 유럽으로 확장되고 있다. 폴란드에서는 K9과 천무 공급을 넘어 현지 생산체계 구축에 들어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현지 WB그룹과 합작법인을 통해 천무 유도탄을 현지 생산할 계획이다. 2025년 12월 체결한 약 4조원 규모의 유도탄 공급 실행계약에도 현지 생산체계가 포함됐으며 생산은 2030년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단순히 한국산 무기를 많이 사는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폴란드 방산산업 안으로 한화가 직접 들어가는 구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현지 기업이 생산에 참여하면 공급망과 정비체계까지 장기간 연결되는 만큼 한화 입장에서도 후속 사업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루마니아 80% 현지화…공장이 곧 다음 수주의 교두보

루마니아에서는 현지화 전략이 한 단계 더 구체화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4년 루마니아에 K9 자주포 54문과 K10 탄약운반장갑차 36대 등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올해 2월 듬보비차주 페트레슈티에 유럽 생산거점인 'H-ACE Europe'을 착공했다.

이 시설은 단순한 조립공장이 아니다. 조립라인과 성능검증시설, 주행시험로를 갖추고 K9·K10의 조립과 통합, 시험부터 정비까지 담당하는 전 생애주기 지원거점으로 조성된다.

목표 현지화율은 최대 80%다. 30개 이상의 루마니아 기업을 공급망에 참여시켜 부품 조달과 생산까지 현지 산업과 연결할 계획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공장의 확장성이다. 한화는 H-ACE Europe을 K9 생산에만 사용하는 시설로 두지 않고 향후 보병전투장갑차(IFV), 장거리 정밀타격체계, 무인지상체계(UGV) 등까지 생산·지원 범위를 확대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첫 수주가 다음 무기체계 수주의 교두보가 될 수 있도록 처음부터 생산기지를 만든 것. 한화가 현지화 전략을 단순한 수주 조건 충족이 아니라 장기 시장 진입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대목이다.

호주에서도 같은 그림이 현실화됐다. 2021년 호주 정부와 K9 자주포 30문과 K10 탄약운반장갑차 15대 공급계약을 체결한 한화는 빅토리아주 질롱에 현지 생산시설 H-ACE를 세웠다. 올해 2월에는 호주형 K9인 AS9 자주포가 이 공장에서 처음 출하됐다.

이 생산기지는 앞으로 레드백 보병전투장갑차에도 활용된다. K9을 수출하기 위해 만든 공장이 또 다른 무기체계 생산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했다. 

폴란드·루마니아·호주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한화가 현지 공장을 한 번의 수주를 위한 조립라인이 아니라 추가 수주와 부품, 정비, 성능개량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장기 사업 플랫폼'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빠른 납기에 현지화까지…한화식 수출 경쟁력

현지화가 한화의 새로운 무기라면 빠른 납기는 이미 검증된 경쟁력이다. 김홍대 첨단민군산업협회 기술이사는 "한국산 무기체계가 해외에서 인기를 얻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빠른 납기"라며 "현지화는 수출기업의 역할도 있지만 무기체계를 구매하는 국가가 자국의 운용환경에 따라 어떻게 국산화를 진행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노르웨이 정부는 천무 도입 발표 당시 한화가 성능과 납기, 비용 요건을 모두 충족한 유일한 업체였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현지 생산능력이 더해지면서 한화의 경쟁력도 달라지고 있다. 기존의 '빠르게 만들어주는 회사'에서 '필요하면 현지에서 계속 만들어낼 수 있게 해주는 회사'로 한 단계 올라서는 양상이다. 

수주 역시 밀려들고 있다. 올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노르웨이에 천무 16문 약 1조3000억원, 핀란드에 K9 112문 약 9400억원 규모 계약을 체결했다. 크로아티아에서도 천무 18문 6411억원 규모 계약을 확보했다.

미국에서는 K9MH 시제품 6문과 옵션을 포함해 최대 2억6290만달러 규모 사업에 진입했다. 미국 육군 역시 자주포 사업 참여업체에 현지 증산능력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화가 유럽과 호주에서 쌓은 현지 생산 경험은 미국 시장에서도 강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K9의 몸체에 레이더·지휘체계까지…그룹 전체가 움직인다

한화 방산의 또 다른 강점은 제품 하나의 경쟁력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K9·천무와 엔진 등 무기 플랫폼을 담당한다면 한화시스템은 레이더와 사격통제, 지휘통제체계를 맡는다. 여기에 한화오션의 해양방산까지 더해지면서 지상·항공·해양을 아우르는 사업구조가 갖춰졌다.

실제 이집트 K9 사업에서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K9과 관련 장비를 공급하고 한화시스템이 자동사격통제장치와 지휘통제장치를 맡았다. 한화시스템은 2024년 12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약 822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KF-21에서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엔진을, 한화시스템은 AESA 레이더와 임무컴퓨터 등 핵심 항전장비를 담당한다. 천궁-II에서도 한화시스템의 다기능레이더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발사대·관련 차량 기술이 함께 들어간다.

2014~2015년 삼성 방산계열사 인수 이후 한화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중심으로 한화시스템과 한화오션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사업구조를 구축했다. 육상 무기에서 시작한 사업영역은 항공엔진과 레이더, 해양방산, 우주까지 확대됐다.

제품 하나를 수출하는 기업보다 고객이 필요로 하는 체계를 여러 계열사의 기술로 묶어 제공할 수 있는 기업이 글로벌 방산시장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다. 한화가 개별 방산회사를 넘어 '종합 방산 플랫폼'으로 평가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지난 9월 한화시스템 구미사업장을 방문해 콕핏(Cockpit)형 통합함교체계(IBS) 운영 시연하는 모습. 한화그룹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지난 9월 한화시스템 구미사업장을 방문해 콕핏(Cockpit)형 통합함교체계(IBS) 운영 시연하는 모습. 한화그룹

▲"실패해도 기술은 남는다"…20년 투자 끝에 수출산업으로

지금의 한화 방산을 설명하려면 20여년 전 천무 개발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초 차기 군단급 화력무기체계를 놓고 미국산 다련장로켓 직수입 가능성이 거론되자 한화는 국내 기술 축적의 기회가 사라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정부가 개발사업과 투자비를 정한 뒤 업체가 참여하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라 회사가 먼저 돈을 들여 개발하는 업체주도 방식이었다. 실패하면 수백억원의 투자금이 그대로 손실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당시 내부에서도 회의론이 적지 않았지만 김승연 회장은 2005년 당시 "실패해도 좋다. 자주국방을 위한 기술은 남을 것 아닌가"라며 개발을 밀어붙였다. 2009년에는 방산을 내수산업이 아닌 수출산업으로 전환해야 하며 천무가 그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장기적인 기술투자에 가까웠던 선택이 20여년 뒤 글로벌 수출 경쟁력으로 돌아온 셈이다. 

K9과 천무가 해외 시장의 문을 열었다면 이제 한화는 그 문 안에 직접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폴란드에서는 유도탄을 만들고, 루마니아에서는 현지 기업 30곳 이상과 공급망을 구축한다. 호주에서는 K9과 레드백을 생산하고, UAE에서는 현지 MRO 체계 구축까지 추진하고 있다.

과거 K방산의 경쟁력이 '성능 좋은 무기를 빠르게 공급하는 것'이었다면 한화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는 발자취를 만들고 있다. 고객에게 무기를 넘겨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공장을 짓고 기술을 이전하고 현지 산업과 공급망을 만든 뒤 정비와 성능개량까지 함께한다.

한화가 수출하는 것은 이제 K9과 천무만이 아니다. 무기를 만들고, 운용하고, 고치고, 다시 공급할 수 있는 '국방 생산능력' 자체가 한화의 새로운 수출상품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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