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연택 기자
서울 정비사업 이주 수요가 전·월세 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세의 월세화와 민간 임대주택 감소까지 겹치면서 이주 시기 조정과 대체 임대주택 확보, 공급 속도 개선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7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정비사업 이주 수요가 사업장 인근을 넘어 서울 전역의 빌라·오피스텔 등 비아파트 임대차시장과 경기 인접 지역으로 번지면서 수도권 전·월세 시장 불안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새 아파트 입주 전까지 거주지를 옮겨야 하는 이주 가구 상당수가 임차시장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주 수요가 집중되는 지역에서는 전세 매물이 빠르게 소진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택으로 수요가 이동하면서 주변 지역의 임대료 상승 압력도 커질 수 있다.
전세의 월세화도 임차시장 불안을 키우는 요인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9월 서울 아파트 월세 거래량은 8만7740건으로 전체 전·월세 거래량(17만2027건)의 51%를 차지했다. 월세 거래가 전체 임대차 거래의 절반을 넘어선 것이다.
전세 매물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주 수요까지 늘면 원하는 지역에서 집을 구하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전·월세를 찾는 사람은 늘지만 집은 부족해 임차시장 불안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다.
정비사업을 통한 서울 주택 공급을 늦출 수는 없는 만큼, 단기적으로는 사업장별 이주 시기를 조정해 수요 집중을 분산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꼽힌다. 서울시는 2012년 도입한 '정비사업 시기조정 제도'로 2000가구 이상 대규모 사업장의 이주 시기를 관리하고 있다. 인접 자치구의 공급·멸실 물량까지 고려해 인가 시기를 조정하는 방식이다. 정비사업 자체를 늦추기보다 사업장별 일정을 분산해 시장 충격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다만 이주 시기 조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주 단계에 들어선 사업장은 일정을 늦출수록 금융비용 부담이 커지는 데다, 정비사업 조합 간에도 절차를 서둘러 먼저 이주에 나서려는 경쟁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대체 임대주택 확보와 민간 임대 재고 유지를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기적으로는 사업장별 이주 일정을 분산해 수요 쏠림을 완화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등록 임대주택의 이탈을 줄이는 한편 토지 보상과 사업성 개선을 통해 실제 입주 시점을 앞당겨야 한다는 것이다.
신보연 세종대 부동산AI융합학과 교수는 "현실적으로 이주 시기를 조정할 수 있는 폭이 6개월~1년 수준"이라며 "이주를 늦추더라도 이를 흡수할 전·월세 주택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일정 조정만으로 부족한 임대 물량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만큼 대체 주택 확보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 역시 "이주 시기 조율은 단기적인 수요 집중을 완화하지만 사업 지연과 조합원 부담 증가라는 한계가 있다"며 "지역별 임대차 수급을 고려한 조정과 함께 대체 주택 확보 및 금융지원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사진=강민석 기자
이주 수요를 분산하려면 민간·공공임대주택 공급 기반을 확충하고 관련 규제를 완화해 임대 공급을 유도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기업형 임대와 공공지원 민간임대를 확대하는 동시에 개인 임대사업자의 세제·금융 부담을 낮춰 장기 임대 운영을 유도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도 필요하다.
등록임대주택의 의무임대기간 종료는 민간 임대 재고를 줄일 수 있는 변수다. 향후 3년간 서울에서 의무임대기간이 끝나는 등록임대주택은 16만3371가구로, 이 가운데 아파트는 약 4만 가구다. 의무기간이 끝난 주택이 매매시장으로 넘어가거나 임대 공급에서 이탈하면 전·월세 재고가 줄어 정비사업 이주 수요를 흡수할 여력도 축소될 수 있다.
공공임대와 전세임대·매입임대를 이주 일정에 맞춰 공급하고, 취약계층 주거비 지원과 이주비 금융지원을 병행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주 시기 조정으로 단기적인 수요 쏠림을 완화하더라도 임대 물량 자체가 부족하면 주거 불안을 해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존 임대주택의 이탈을 줄이는 동시에 이주 수요를 흡수할 대체 주택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신보연 교수는 "신규 입주 물량이 연간 4만 가구 수준을 회복할 때까지 등록임대사업자 제도를 민간 임대 재고 관리 수단으로 유지해야 한다"며 "보증금 인상률을 5% 이내로 제한하는 조건으로 임대 연장 기간에 비례해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기존 임차인의 계속 거주를 전제로 재등록을 허용하는 등 선별적인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대 재고 확충과 함께 신규 정비사업의 공급 속도를 높이는 것도 과제로 꼽힌다. 인허가 기간을 줄이더라도 사업성이 확보되지 않아 착공이 늦어지면 실제 입주 시점을 앞당기는 데 한계가 있다. 공사비 상승에 따른 금융 부담을 완화하고 지원을 확대해 인허가 이후 착공까지 원활하게 이어질 수 있는 사업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송승현 대표는 "인허가 단축은 공급 시차를 줄이는 데 기여하지만 실제 입주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며 "공사비 상승과 사업성 악화가 착공을 지연시키는 만큼 금융지원과 사업성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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