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 브루에의 시간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클로드 브루에의 시간

마리끌레르 2026-10-27 16:06:36 신고

3줄요약

1947년, 열일곱 살에 ‘뉴룩’이 탄생한 크리스챤 디올의 첫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지켜본 이래 수많은 디자이너의 등장과 패션의 변화를 목격하며 1970-1980년대 마리끌레르 프랑스판의 편집장을 지낸 클로드 브루에. 그 기록을 담은 책 <클로드 브루에, 파리 패션 50년>이 한국에서 출간됐다. 어느덧 아흔일곱 살에 이른 그는 여전히 파리 거리를 걷고, 젊은 지휘자에게 첫눈에 반하며, 함께 사는 고양이를 ‘또 하나의 사랑’이라 부른다. 패션 저널리즘이 자유롭던 시절, 자신만의 안목을 지켜온 시간, 그리고 지금도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들. 클로드 브루에와 나눈 대화.

<클로드 브루에, 파리 패션 50년>에는 당신이 직접 경험한 패션의 반세기가 담겨 있습니다. 지금 이 이야기를 책으로 남기고 싶은 이유가 궁금해요. 제가 패션 저널리스트로 일하던 시절이 얼마나 흥미진진하고 자유로웠는지 전하고 싶었어요. 지금의 젊은 세대와는 또 다른 시대였죠. 당시에는 잡지마다 뚜렷한 개성과 관점이 있고, 새로운 인물을 발견하면 마음껏 소개할 수 있었어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느껴졌죠. 지금은 패션을 둘러싼 환경이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패션쇼에서 모두 열심히 메모했는데, 요즘은 휴대폰으로 모든 것을 기록하더군요. 지금 제가 다시 기자로 일해야 한다면 쉽지 않을 거예요. 다행히 제때 그만뒀죠. 이 책에 거창한 야심은 없어요. 그저 우리가 어떻게 일했는지 남겨두고 싶었을 뿐 이제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었으니까요.

열일곱 살에 ‘뉴룩’이 탄생한 크리스챤 디올의 1947 봄·여름 오트 쿠튀르 데뷔 컬렉션을 직접 보셨죠. 어머니가 스키아파렐리에서 일하셨기 때문에 아주 어릴 때부터 옷과 컬렉션에 익숙했어요. 하지만 패션을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죠. 어느 여름 피에르 가르뎅을 만났는데, 그가 새로 문을 여는 크리스챤 디올의 패션 하우스에서 일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어머니께 패션쇼 초대장을 구해주실 수 있느냐고 여쭤봤죠. 그렇게 열일곱 살에 디올의 첫 컬렉션을 보게 됐어요. 이후 디올의 컬렉션을 계속 보러 다녔고, 피에르 가르뎅이 자신의 이름으로 일을 시작했을 때도 그의 컬렉션을 지켜봤어요. 1950년에는 패션 잡지에 들어가 기자의 일을 처음부터 배웠죠. 그 이야기는 책에도 나와 있습니다.

책에는 패션이 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움직이던 순간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변화가 있나요? 패션 디자이너는 어느 정도 예술가지만, 변화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어요. 크리스챤 디올의 뉴룩을 생각해보세요. 전쟁과 그로 인해 물자가 부족하던 시대가 끝나갈 무렵, 풍성한 치마가 등장했죠. 여성들은 새 옷을 살 경제적 여유가 없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치마에 천을 덧대 길이를 늘이기도 했어요. 그 모습이 썩 아름답지는 않았지만요. 소니아 리키엘의 옷도 중요한 변화였어요. 니트와 저지 소재 옷은 몸에 부드럽게 밀착되고, 편안한 데다 여행 가방에 접어 넣기도 좋았죠. 마치 제2의 피부 같았어요. 어느 시점부터 오트 쿠튀르보다 레디투웨어에서 더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클로드 몽타나와 티에리 뮈글러의 과장된 실루엣이 등장했죠. 장 폴 고티에는 또 달랐어요. 자유분방한 상상력으로 유명하지만, 그 바탕에는 아주 고전적이고 정교한 옷 만들기 기술이 있었거든요. 패션은 그렇게 끊임없이 달라졌어요.

앙드레 꾸레쥬가 등장했을 때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겠군요. 꾸레쥬는 아주 많은 것을 걷어냈어요. 프릴이며 장식이며, 제가 치치(chichi, 지나치게 화려하고 번잡한 치장)라고 부르는 온갖 자잘한 것들을요. 마치 대청소를 한 것 같았죠. 옷이 훨씬 간결하고 짧아졌으며, 스포티하고 경쾌한 분위기가 났어요. 그런데 그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여성들도 있었어요. 꾸레쥬 드레스에 샤넬 샌들을 신고 방돔 광장에서 산 브로치를 다는 식이었죠. 당시 유행하는 드레스는 입었지만, 꾸레쥬가 보여주려던 것과는 정반대였어요. 그때는 패션 잡지가 여성들에게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조언하는 역할도 중요했죠.

책상 한편에 놓여 있던 <CLAUDE BROUET, Journaliste de mode>.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패션을 접하는 방식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런 변화는 어떻게 바라보세요? 솔직히 지금 여성들이 패션 잡지에 무엇을 기대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조언을 원하는지, 아니면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도요. 소셜미디어는 제가 잘 모르는 세계예요. 가끔 인스타그램을 보긴 하는데, 한번 보기 시작하면 끝이 없더군요. 오후를 통째로 보낼 수도 있겠더라고요. 하지만 패션이든 다른 분야든, 훌륭한 저널리스트는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그것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책을 통해 여러 디자이너와의 만남을 돌아보셨을 텐데요. 지금도 눈여겨보는 디자이 너가 있나요? 재능 있는 사람은 언제나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거예요. 다만 요즘은 제가 모든 디자이너를 따라가지는 못하죠. 존 갈리아노와 마틴 마르지엘라 이후로는 첫눈에 반할 만큼 마음을 사로잡은 사람이 없어요. 알렉산더 맥퀸은 대단한 디자이너였고, 그의 뒤를 이은 사라 버튼도 훌륭했죠. 지금 지방시에서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컴퓨터로 찾아보기도 해요. 조나단 앤더슨에게도 관심이 있었어요. 로에베에서 보여준 아이디어가 좋았죠. 특히 로고를 드러내지 않고도 아름다운 가방을 만드는 방식이 마음에 들더군요. 요즘 패션은 디자이너뿐 아니라 거리의 젊은이들과 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서도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옷차림이 엉뚱한 젊은이들도 있지만, 그 모습이 흥미로울 때가 있어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죠.

수많은 여성을 만나고 옷을 보아온 지금, 어떤 차림의 여성이 가장 멋지다고 느끼세요? 저는 심플한 차림의 여성을 좋아해요. 그렇다고 아무 옷이나 단순하게 입는다는 뜻은 아니에요. 자신의 몸을 잘 알고, 어떤 색과 실루엣이 어울리는지 아는 사람이죠. 무릎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굳이 짧은 치마를 입을 필요가 없잖아요. 요즘 거리에서 눈길이 가는 여성들은 일본인인 경우가 많아요. 한국인이나 다른 아시 아의 젊은 여성들도 그렇고요. 옷이 잘 맞고, 지나치게 꾸미지 않으면서도 우아해요. 결국 자신에게 무엇이 어울리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죠.

수많은 이미지와 트렌드를 접하는 시대입니다. 자신만의 취향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좋은 취향과 나쁜 취향을 구분하는 건 어쩌면 조금 낡은 생각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자신만의 취향을 갖는다는 건 여전히 흥미로운 일이죠. 저는 스스로를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여성들에게 관심이 있어요. 자신에게 무엇이 어울리는지 알고, 아름다운 것을 알아보는 안목을 지닌 사람들이죠. 그런 안목은 문화와 교육,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자라온 환경에 따라 기회는 다를 수 있지만,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배울 수 있죠. 어릴 때부터 아름다운 것을 보고, 좋은 이야기를 듣고, 자연과 예술을 가까이하는 경험은 아주 중요해요. 다만 취향을 기른다고 해서 반드시 창의적인 사람이 되는 건 아니에요. 그건 또 다른 문제니까요.

에르메스에서는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셨죠. 지금도 당시의 옷을 입으시나요? 그럼요. 에르메스에서 일할 때 맞춘 옷을 지금도 입어요. 특히 제게 잘 어울리고 마음에 드는 옷들은 여전히 옷장에 남아 있죠. 오늘날에는 옷을 사고 버리는 일이 지극히 당연해졌어요. 평생 입을 코트를 산다는 생각이 구식으로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하면 충분히 입고, 잘 보관해두었다가 몇 년 뒤 다시 꺼내 입을 수 있잖아요. 물론 한 가지 옷만 계속 입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마치 제복을 입는 것 같으니까요. 어떤 옷은 한동안 마음에 들지 않아 옷장에 넣어두었다가도, 나중에 다시 좋아질 수 있어요. 옷과 맺는 관계는 사람마다 다른 법이죠.

개인적으로 옷장에 가장 오래 남아 있던 옷은 무엇이었나요? 폴 푸아레의 이브닝 코트였어요. 남편이 골동품 가게에서 발견해 선물한 옷이죠. 한 번 입어보고 오랫동안 보관해두었는데, 얼마 전 파리의 팔레 갈리에라 박물관에 기증했어요. 아직 정리하지 못한 옷이 많아서 앞으로 더 기증할지도 모르겠네요. 피에르 가르뎅과 소니아 리키엘, 미쏘니의 옷도 가지고 있어요. 특히 미쏘니의 니트는 참 많이 입었죠. 제 옷장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한 옷들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옷을 보고 ‘저건 꼭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세요? 별로요. 이제는 제게 어울리는 옷이 무엇인지 대충 알거든요. 격식을 차려야 할 자리도 많지 않고, 그런 자리가 생기더라도 입을 옷은 이미 충분히 있어요. 가끔 마음에 드는 색의 스웨터나 스카프를 살 수는 있겠죠. 하지만 일부러 쇼핑하러 나가고 싶지는 않아요. 신발은 예외예요. 매일 걸어야 하니까 닳으면 새로 사야 하거든요. 아무 신발이나 신고 오래 걸을 수는 없잖아요. 요즘 제게 필요한 건 멋진 구두보다 걷기 편한 신발이에요.

이제는 일에서 조금 벗어나 파리에서 지내고 계시죠. 요즘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시나요? 아흔일곱 살이 되니 좋아하는 일뿐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일도 생겼어요. 바로 걷는 일이죠. 근육을 유지하려면 매일 걸어야 하거든요. 휴대폰으로 걸음 수를 확인하면서 하루에 7천~8천 보씩 걸어요. 그런데 늘 같은 동네를 걷다 보니 조금 지루해지더군요. 이제는 새로운 산책길을 찾아봐야겠어요. 책을 읽고 영화관이나 전시에도 가요. 다만 요즘 파리의 박물관은 사람이 너무 많아요. 작품을 천천히 살펴보기 어려울 정도죠. 다행히 명예 기자증(carte de journaliste honoraire)이 있어서 줄을 서지 않고 들어갈 수 있어요. 그건 아주 고마운 일이에요. 파리도 참 많이 변했어요. 저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파리도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최근에는 무엇이 마음을 사로잡았나요? 그건 미리 물어봤어야죠!(웃음) 이제는 무언가를 떠올리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리거든요. 저는 음악을 무척 좋아해요. 브뤼노 몽생종의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를 알게 됐는데, 그야말로 첫눈에 반했죠. 지금도 여전히 좋아해요. 몇 년 전에는 젊은 지휘자 클라우스 매켈래를 발견했어요. 음악에 완전히 빠져 있는 모습이 얼마나 근사하던지! 디자이너에게 이런 감정을 느낄 수도 있었겠지만, 이번에는 지휘자였어요. 아, 그리고 또 하나의 커다란 사랑이 있죠. 제 고양이요. 저는 혼자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혼자가 아니에요. 우리 둘은 아주 사이가 좋거든요.

마지막으로 조금 엉뚱한 질문을 해볼게요. 지금 다시 스무 살의 패션 저널리스트가 된다면 무엇을 취재하고 싶으세요? 음, 제가 지금 스무 살이라고 상상하기가 무척 어렵네요. 어떤 교육을 받고,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랐을지부터 생각해야 하잖아요. 지금의 제 취향과 생각을 떼어 놓고 다른 사람을 상상하는 건 불가능해요. 저는 부모님께 많은 것을 배웠어요. 아주 어릴 때부터 박물관과 음악회에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도 자라났죠. 그런 경험 없이 제가 어떤 사람이 되었을지는 모르겠어요. 물론 지금 스무 살이 된다면 기적 같은 일이겠죠. 하지만 오늘날의 세상을 생각하면 걱정도 많을 것 같아요. 저는 늘 자연과 동물을 사랑했어요. 지금 스무 살이라면 기후변화로 지구가 어떻게 달라질지 몹시 불안했을 거예요. 아이를 가질 것인지도 진지하게 고민했겠죠. 그러니 무엇을 취재하고 싶을지까지는 대답하기 어렵네요.(웃음)

클로드 브루에의 서재. 초현실주의 화가 외젠 베르망의 그림과 책으로 가득 둘러싸인 벽면, 모던한 소파와 은방울꽃 조명에서 그의 취향을 엿볼 수 있다.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