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여의도 증권가엔 돈이 넘쳐 흘렀다. 코스피 지수가 5000을 넘어 9000으로 치솟으면서 시중 여유자금이 증시로 몰렸다. 은행 예금을 깨서 증시에 넣는 투자자도 많았다. 증시로의 자금쏠림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12월 말 87조원이던 투자자예탁금(증시 대기자금)은 올해 6월 4일 139조원으로 급증했다. 증가율은 60%다.
분위기가 반전된 건 6월 말이다. 증시가 사상 최고점을 찍고 속락하면서 증시에 몰렸던 자금이 서서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빠져나간 돈은 다시 은행으로 향했다. 변동성에 지친 투자자들의 위험 자산 회피 심리, 은행권의 수신금리 인상이 맞물린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금리전쟁도 갈수록 치열해지는 분위기다. 투자자 자금을 계속 묶어두려는 증권사, 증시로 향한 자금을 예금으로 되찾아오려는 은행은 고금리 상품으로 '구애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5대 은행 정기예금 잔액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와 맞물려 지속 상승 추세다. 올 1월 말 936조8730억원 수준이던 잔액은 3월 말 937조4565억원으로 소폭 증가한 뒤 6월 말에는 949조3998억원으로 1.3% 상승했다. 이후 7월·8월 기준금리가 기존 2.5%에서 각각 2.75%, 3%로 상승하자 9월 말에는 1006조871억원으로 1000조를 돌파했다. 10월에는 1010조원으로 역대 최대치다.
같은 기간 증권사들의 투자자예탁금은 정반대 흐름을 보였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투자자예탁금은 88조6841억원으로 상반기 사상 최대치였던 139조6974억원과 비교해 약 51조원(36.5%) 감소했다. 투자자예탁금은 통상 상반기보다 하반기에 높고, 변동폭이 10조원 안팎이라는 점에서 올해 하반기 감소폭은 이례적이라는 게 증권가 공통된 평가다. 코스피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증시 피로감에 지친 투자자들이 증권가를 떠나 안전자산인 은행권의 고금리 예금으로 대거 이동했다는 분석이다.
증권사들은 은행보다 0.5%~2%포인트 높인 연 4.5~6%대의 발행어음으로 맞불을 놨다. 발행어음 1위 사업자인 한국투자증권은 신규 계좌 개설 고객을 대상으로 연 4.6%의 금리를 제공하는 '퍼스트 특판 발행어음'을 판매 중이다. 삼성증권 역시 1년물 연 4.6%의 금리를 제공하는 적립형 상품과 4.05%를 제공하는 1년 약정형 상품을 판매중이다. 최근 적극 영업에 나선 하나투자증권도 연 4%, 적립시 연 4.35% 금리를 제공하는 발행어음을 판매 중이다. 신한투자증권과 키움증권은 각각 연 4.05%, 연 4% 금리의 1년 만기 발행어음을 내놨다.
6%에 가까운 금리를 주는 상품도 있다. 키움증권은 이달 초 3개월 만기에 세전 연 5.80% 금리를 주는 발행어음 특판상품을 내놨다. 최근 발행어음 사업인가를 받은 메리츠증권도 이달 말 최대 5.8% 금리의 발행어음 상품을 준비 중이다.
전문가들은 증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당분간 지속돼 '머니무브'가 장기 트렌드로 고착될 수 있다고 본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예금금리가 오르면서 예금에 대한 유인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며 "부동산 등 다른 투자처도 제한되면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예금으로 이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도 "증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내년 상반기까지 유동자금의 은행권 쏠림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라며 "증권사들도 투자자를 잡아둘 특판 상품을 계속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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