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고 살아남는 암세포가 있다. 이른바 '좀비 암세포'다. 이 세포들은 증식을 멈춘 상태에서도 염증 물질을 분비해 주변 환경을 변화시키고, 암의 재발과 치료 저항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좀비 암세포의 생존 원리를 밝히고, 특정 단백질을 차단해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방법을 해외 연구진이 찾아냈다. 항암치료 후 살아남은 암세포까지 제거해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아일랜드 트리니티칼리지 더블린 스머핏 유전학연구소의 시머스 마틴 교수와 고칸 구나이 박사 연구팀은 항암제에 노출된 암세포가 죽지 않고 노화 상태로 살아남는 과정과 이를 제거할 수 있는 분자적 기전을 규명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10월 23일 자에 발표됐다.
항암제에도 살아남는 '좀비 암세포', 왜 위험할까
항암화학요법은 항암제로 암세포의 DNA를 손상시켜 세포가 더 이상 증식하지 못하거나 스스로 죽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일부 암세포는 죽는 대신 분열을 멈춘 채 살아남는다. 이를 '세포 노화(senescence)'라고 한다.
문제는 노화 상태의 암세포가 단순히 활동을 멈춘 세포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 세포는 염증 물질과 성장 인자 등을 주변으로 분비한다. 이를 '노화 관련 분비 표현형(SASP)'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물질은 주변 면역세포를 불러들이고 조직 환경을 변화시켜, 일부 상황에서는 암세포의 생존과 재성장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 수 있다.
면역체계가 손상된 조직을 회복시키는 과정이 오히려 암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노화 암세포가 모두 재발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며, 일부는 면역체계에 의해 제거된다.
암세포 생존 돕는 단백질 차단했더니 스스로 사멸
연구팀은 암세포의 생사를 결정하는 '죽음 수용체(death receptor)'에 주목했다. 항암제로 DNA가 손상되면 암세포 표면에는 Fas와 TRAIL-R2(DR5)라는 죽음 수용체가 증가한다. 이 수용체는 손상된 세포에 사멸 신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일부 암세포는 세포사멸 억제 단백질(IAP)을 이용해 이러한 신호를 차단하고 살아남는다. 연구팀은 특히 cIAP-2라는 단백질이 암세포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팀이 IAP의 작용을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하자, 억제돼 있던 세포사멸 신호가 다시 활성화되면서 노화 상태의 암세포가 선택적으로 제거됐다. 이는 항암제에 살아남은 암세포가 의존하는 생존 경로를 차단하면, 기존 치료에서 제거하지 못한 세포까지 죽일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세포 실험과 동물 실험을 통해 이러한 기전을 확인했다. 마틴 교수는 항암제 투여 후 IAP를 차단하면 암세포가 노화 상태로 살아남는 것을 막고, 더 많은 암세포를 사멸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항암치료의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기존 항암치료가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방식이라면, 이번에 제시된 전략은 항암제의 공격을 견디고 살아남은 암세포의 생존 수단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특히 항암치료 후 노화 상태로 남은 암세포를 제거하는 '노화세포 사멸 치료(senolytic therapy)'의 새로운 표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이번 결과는 주로 세포와 동물 실험에서 확인됐다. 실제 암환자에게 IAP 억제제를 투여했을 때 암 재발이 줄어들거나 생존 기간이 늘어나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정상 조직에 미치는 영향과 약물 안전성도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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