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일의 보건복지 행복정책 제언] AI 병원은 무인(無人) 병원일까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양성일의 보건복지 행복정책 제언] AI 병원은 무인(無人) 병원일까

헬스경향 2026-10-25 00:07:44 신고

양성일 국가바이오혁신위원회 규제특위위원장·전 보건복지부 1차관
양성일 국가바이오혁신위원회 규제특위위원장·전 보건복지부 1차관

지하 물류창고에서 출발한 자율주행 로봇이 야간 병동으로 약제를 배송하고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의사와 환자의 대화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전자의무기록을 작성한다. 중환자실에서는 AI 모니터링 시스템이 미세한 생체신호의 변화를 감지해 심정지나 패혈증 위험을 미리 알리고 AI 영상·병리 판독 솔루션이 의료진의 진단을 보조한다.

주요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확산하는 ‘AI 병원’의 풍경이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머지않아 AI와 로봇이 의사와 간호사의 일자리를 빼앗고 병원이 사람의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차가운 무인 공장으로 바뀌는 것 아니냐고 걱정한다.

과연 AI 병원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사람의 존재가 사라진 공간일까.

수십 년 동안 보건복지 정책을 다루고 바이오헬스 규제 혁신의 현장을 지켜본 필자의 답은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 AI 병원은 사람을 쫓아내는 차가운 공간이 아니라, 첨단기술을 통해 사람의 온기와 인간성을 되찾는 더 따뜻한 공간이어야 한다.

그동안 의료현장은 어떤 모습이었는가. 숙련된 간호사는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위로를 건네야 할 시간에 물품 배송과 약제 카트 이동, 반복적인 서류 작업에 매달렸다. 의사 역시 진료와 수술에 더해 쏟아지는 의무기록 작성과 검사 결과 입력에 치여 환자와 눈을 맞추며 설명할 시간을 충분히 갖기 어려웠다. 만성적인 업무 과중과 피로는 의료진의 번 아웃과 이탈을 부르고 남은 인력의 부담을 키워 환자 안전을 위협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AI 병원의 진짜 가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AI가 진료 대화와 차트 작성을 보조하고 영상 판독의 일차적 선별을 맡으며 로봇이 단순 물류를 담당하면 의료진에게 가장 귀한 자원인 시간이 생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몇 명의 인력을 줄였는지가 아니다. 가혹한 반복 노동에서 벗어난 의료진이 환자의 침상 곁에 얼마나 더 머물 수 있는지, 환자의 질문에 얼마나 충분히 답할 수 있는지가 AI 병원의 성패를 가른다. AI 병원의 핵심은 무인화가 아니라 시간의 재배치다.

AI는 환자 안전을 지키는 새로운 감시망이 될 수도 있다. 중환자의 생체신호를 지속 분석해 패혈증이나 다기관 장기 부전 위험을 조기에 알리고 와상환자의 낙상 가능성이나 병동의 비상 상황을 감지해 대응 시간을 앞당길 수 있다. 사람의 눈과 손이 24시간 모든 환자를 살피기는 어렵다. AI는 그 빈틈을 보완해 의료진이 위험 신호를 더 빨리 발견하도록 돕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단 AI의 경고가 곧바로 정답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최종 판단과 책임은 환자의 상태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의료진에게 남아 있어야 한다.

AI 병원으로 가는 길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수백억 원에 이르는 초기 투자 비용에 비해 현행 행위별 수가제에서는 AI 도입이 만들어 낼 수 있는 환자 안전과 업무 개선의 가치를 충분히 보상하기 어렵다. 기술만 화려하게 들여놓고 원내 동선과 업무방식, 조직 문화를 바꾸지 못하면 AI 병원은 비싼 장비를 전시하는 공간에 그칠 수 있다. 새로운 시스템을 사용하는 의료진에게 교육과 참여의 기회를 주지 않으면 현장의 저항도 커진다.

따라서 정부와 의료계는 AI 병원을 단순한 기술 도입 사업이 아니라 가치 중심 의료의 수단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AI를 통해 환자 안전이 높아지고 불필요한 재원일수가 줄며 의료진의 이탈이 감소했는지를 평가하고 그 성과에 맞는 보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한시적 가산이나 별도 보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초기 위험을 분담하되 장기적으로는 실제 환자 결과와 현장 개선을 반영하는 지불제도로 나아가야 한다. 기술의 성능만큼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이 병원의 일하는 방식과 환자의 경험을 어떻게 바꿨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AI 병원의 완성된 모습은 차가운 모니터만 가득한 무인 로비가 아니다. 로봇이 위험하고 반복적인 일을 대신한 덕분에 간호사가 환자의 떨리는 손을 한 번 더 잡아주고 의사가 환자의 불안한 눈빛을 바라보며 치료 과정을 차분히 설명하는 병원이다.

무인(無人)이 아닌 유인(有人)의 고도화, 기술을 통한 인간성의 회복.

이것이 AI 병원의 변화를 거꾸로 읽어내며 우리가 도달해야 할 의료 혁신의 방향이다.

<글 양성일 국가바이오혁신위원회 규제특위위원장·전 보건복지부 1차관ㅣ정리 헬스경향 장인선 기자>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