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절정으로 향하는 다섯 가지 여정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가을의 절정으로 향하는 다섯 가지 여정

맨 노블레스 2026-10-24 14:00:00 신고

수상비행기로 만나는 퀘벡의 가을

단풍이 번지는 호수 위로 경비행기 한 대가 낮게 날아오른다. 캐나다 퀘벡, 이스턴 타운십의 가을은 땅이 아닌 하늘에서 완성된다. 1897년 문을 연 노스해틀리는 미국 남부의 부유층이 여름을 보낸 피서지로, 그 시절의 정취가 남아 지금도 ‘리틀 뉴잉글랜드’로 불린다. 마사위피 호숫가를 따라 이어지는 14km 트레일을 자전거로 달리다 보면 습기를 머금은 낙엽 냄새와 물안개가 유난히 청량하다. 추리소설을 즐기는 여행자라면 루이즈 페니의 데뷔작 <스틸 라이프> 속 마을 ‘스리 파인스’의 배경이 된 놀턴 일대를 걷거나, 세계에서 가장 긴 보행자 현수교가 놓인 코티쿡 협곡으로 발을 넓혀도 좋다. 페달을 멈추고 올라탄 수상비행기는 몽 오포드 국립공원과 멤프레마고그 호수까지 이어지는 단풍 지대를 펼쳐 보인다. 지상에서 가늠할 수 없던 색의 농도와 지형이 한눈에 들어오는 순간이다. 풍경을 감상하는 관광 비행에 그치지 않고, 다음 숙소로 향하는 프라이빗 항공 수단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하늘과 땅을 오가며 하루의 궤적을 그리다, 마사위피 호수를 마주 한 저택 마누아르 호비로 돌아와 미쉐린 레스토랑 르 아틀레에서 여정을 마무리해도 좋을 듯하다. 호텔 부지 내 가든과 숲에서 채집한 허브와 채소, 산나물 등을 활용한 코스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식사를 마친 후 벽난로가 놓인 캐빈형 객실로 돌아오면, 창밖으로 저무는 단풍을 바라보며 하늘과 호수 사이를 오갔던 하루의 여운을 천천히 삼킨다.

서부의 시간을 품은 황금빛 산후안

해발 2700m 콜로라도 산후안산맥 깊숙한 곳에 자리한 던턴은 1885년 은광을 좇던 광부 호레이쇼 던턴이 세운 마을이었다. 반세기 만에 유령 마을로 전락한 그곳에서 통나무집과 살룬을 한 채씩 복원한 던턴 데스티네이션은 미국 서부 역사 속에 머무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살룬은 개척 시대 광부와 카우보이들이 술 한잔에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던 술집으로, 무법자 부치 캐시디가 새겼다고 전해지는 서명이 지금도 벽에 남아 있어 시대를 짐작하게 한다. 아스펜 숲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계절이면 산후안은 능선 전체가 금가루를 뿌린 듯 반짝인다. 인적 없는 웨스트 돌로레스강의 물살에 낚싯줄을 드리우며 플라이낚시를 즐길 수도 있다. 또 샌드 캐니언까지 말을 타고 수백 년 전 이곳을 터전 삼은 고대 푸에블로인의 절벽 유적과 마주할 수 있다. 강과 협곡을 누비고 나면 자연히 발길이 향하는 곳은 마을 한복판의 온천이다. 이곳의 온천은 지하 광맥의 존재를 알려주던 표식이었다고 한다. 온천수에 몸을 푹 담그고 고개를 젖히면 별이 총총 뜬 산후안의 밤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위스키와 야외 스포츠로 만나는 하일랜드 열차 여행

증기처럼 피어오르는 새벽안개 사이로 벨몬드 로열 스코츠먼 열차가 미끄러지듯 하일랜드를 가로지른다. 에든버러에서 출발한 벨몬드는 스코틀랜드 위스키와 야외 스포츠를 잇는 여정을 4박에 걸쳐 그려낸다. 목재로 마감한 객실과 식당 칸을 오가는 사이, 창밖으로 붉게 물든 언덕과 호수, 작은 마을들이 느린 속도로 지나간다. 스페이강에서 케언곰스산까지 뻗은 로시머커스 영지에 다다르면 고대 칼레도니안 소나무 숲과 붉은 다람쥐 서식지를 곁에 두고 클레이 사격에 도전할 수 있다. 잔잔한 여유를 즐기고 싶다면 플라이낚시로 오후를 채워도 좋다. 하일랜드의 레일은 다시 글렌모렌지, 토마틴, 린도어스 애비 등 세계적 증류소로 향한다. 스카치 몰트위스키 소사이어티와 협업한 덕분에 생산 현장을 둘러본 뒤 각 증류소의 마스터가 곁들이는 설명으로 향과 풍미를 하나씩 음미할 수 있다. 혀끝에 새긴 위스키의 여운은 저녁 식탁으로 이어진다. 다이닝 카 레이븐에서 스코틀랜드 제철 식재료로 차린 코스가 오르고, 피들과 아코디언 연주자들이 빚어내는 전통음악이 곁들여진다. 흥겨운 저녁이 저물 즈음, 하루의 활동으로 쌓인 피로는 차내 디올 스파에서 풀어낸다. 몸과 마음을 이완하고 나면, 낮 동안 스쳐 지나간 풍경이 꿈결처럼 겹쳐지며 밤이 깊어간다.

천년 계곡을 따라 흐르는 오이라세

동틀 무렵, 물안개가 걷히면 쓰타누마 호수 수면에 붉게 물든 나무들이 거꾸로 맺힌다. 이곳을 사랑한 시인 오마치 게이게쓰가 ‘역단풍’이라 이름 붙인 이유다. 도와다하치만타이 국립공원 안, 화산 폭발로 파인 자리에 물이 고여 만들어진 도와다 호수에서 흘러나온 오이라세 계류는 14km를 굽이친다. 일본 정부가 지정한 천연기념물인 이 물길을 따라 300여 종의 이끼와 크고 작은 폭포가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초시 오타키 폭포의 시원한 물줄기와 불교의 육도 중 하나인 아수라의 이름을 본뜬 급류 아수라노 나가레의 거친 물살까지, 대조적인 물의 표정이 번갈아 등장하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계류가 끝나는 하류 초입 야케야마에 다다르면 호시노 리조트를 만날 수 있다. 로비에 들어서면 조각가 오카모토 다로가 만든 거대한 벽난로가 눈에 띈다. 벽난로의 온기는 곧 노천탕으로 이어져, 하코다산에서 끌어온 온천수 위로 단풍이 드리운 풍경을 오롯이 즐길 수 있다. 오이라세 계류를 따라 걸었다면, 하루의 끝은 쓰타 온천에서 보내도 좋다. 미나미 핫코다 산기슭에서 1147년부터 이어져온 이 온천은 1918년에 지은 목조 본관과 너도밤나무 원시림이 어우러져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을 만든다. 오마치 게이게쓰가 말년에 본적을 옮기고 생을 마감할 만큼 아끼던 곳이기도 하다. 욕조 바닥에서 온천수가 솟아오르는 원천 방류 방식은 일본에서도 서른 곳 남짓 남은 희귀한 형태다. 뜨끈한 탕에 몸을 맡기면 100년 전 이곳을 거닐던 문인이 느꼈을 계절의 사색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하늘에서 시작하는 토스카나의 수확 여행

프로펠러 소리를 가르며 헬리콥터가 토스카나의 구릉 위를 낮게 난다. 금빛과 붉은빛이 뒤섞인 포도잎과 짙은 초록빛을 지키는 1만 그루의 올리브나무, 숲과 호수가 뒤섞인 땅이 발아래로 물결처럼 펼쳐진다. 그사이 다다른 곳은 몬타이오네 언덕에 자리한 카스텔팔피. 헬리콥터가 내려앉으면 중세 시대 성과 보르고를 중심으로 2700ac의 영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에트루리아 시대에 세워진 이 오래된 마을은 한때 메디치 가문과도 인연을 맺은 곳으로, 골목 곳곳에 중세의 정취가 남아 있다. 돌길을 따라 걷다가 농장 사유지에 들어서면, 올리브 열매를 직접 수확하고 착유소에서 오일로 바꾸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갓 짜낸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을 맛본 뒤에는 와인 저장고도 방문할 수 있다.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프티 베르도를 블렌딩한 카스텔팔피의 시그너처 와인은 포도가 잘 자란 해에만 소량 생산되는데, 코코아와 담배 향까지 머금은 깊고 묵직한 인상이 오래도록 남는다. 해가 저물면 사륜구동 차량에 올라 지프 나이트 사파리에 나선다. 헤드라이트 대신 발자국과 울음소리에 의지해 어둠 속 생태를 좇는 방식으로 야생의 실루엣이 오히려 또렷하게 다가온다. 사슴과 노루가 수풀 사이로 스쳐 지나가고, 멧돼지의 낮은 울음소리와 여우의 재빠른 그림자, 이따금 들려오는 올빼미 소리가 숲 전체를 하나의 생태계로 엮어낸다. 수확과 미식을 거쳐 밤의 사파리로 저무는 하루, 카스텔팔피의 가을은 손끝과 혀끝으로 다가온다.

에디터 강승엽 사진 제공 뚜르 디 메디치, 호시노 리조트

Copyright ⓒ 맨 노블레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