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낙원' 연상호 감독 "어머니가 쓴 세 페이지 글…그 마음을 궁금해해야겠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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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낙원' 연상호 감독 "어머니가 쓴 세 페이지 글…그 마음을 궁금해해야겠다" [인터뷰]

디지틀조선일보 2026-10-23 17:26:0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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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실낙원'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 / CJ ENM 제공
    영화 '실낙원'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 / CJ ENM 제공

    ※ 해당 인터뷰에는 영화 ‘실낙원’의 주요 전개와 결말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실낙원'은 연상호 감독의 어머니가 쓴 세 페이지 분량의 글에서 시작됐다. 나쁜 짓을 일삼는 아들과 그 아들을 품에 안고 소멸하기로 결심한 어머니의 이야기. 아들은 어머니가 왜 이런 이야기를 썼는지 궁금해졌고, 그 궁금증은 수년에 걸친 작업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영화 끝에서 감독이 도달한 것은 어머니를 온전히 이해했다는 확신이 아니었다. “100퍼센트 아는 것은 힘들다”는 생각이었다.

    ‘실낙원’은 9년 전 캠핑스쿨 버스 실종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류소영(김현주)에게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 류선우(배현성)가 돌아오면서 시작되는 심리 스릴러다. AI 프로그램 ‘낙원의 아이들’ 속 열 살 아들에게 의지해 살아온 소영은 낯설게 성장한 실제 아들과 마주하며 혼란에 빠진다. 기억 속 아이와 눈앞의 아들 사이에서, 영화는 인간의 정체성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에 대한 화두를 길어올린다.

    하지만 연상호 감독은 영화 '실낙원'이 거창한 철학적 선언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라지 않았다. 대신, "아주 쉽게 아주 어려운 질문을 품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장르영화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라는 믿음을 영화 '실낙원'에서도 이어갔다.


  • 영화 '실낙원' 스틸컷 / CJ ENM 제공
    영화 '실낙원' 스틸컷 / CJ ENM 제공

    Q. 어머니가 직접 쓴 이야기가 영화의 출발점이다. 앞서 세 페이지 분량의 이야기라고 하셨는데, 원래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한 마을에 엄마와 아들이 사는데, 아들이 닭을 훔치고 사람을 때리는 등 너무 나쁜 짓을 하고 다닌다. 그로 인해 고통을 겪던 어머니가 아들을 품에 안고 소멸하기로 결심한다. 어머니가 그런 이야기를 쓰셨다며 보여주셨다. 많은 분이 그런 이야기를 아들에게 보여주는 건 어떤 마음이냐고 물으시는데, 반전은 아들이 저 혼자가 아니라는 거다. 우리 집은 삼 형제다. 세 명이 합쳐진 건가 싶기도 하다. (웃음) 저는 그 이야기를 보고 집착을 가진 인물의 심리에 관심이 갔다. 아들로서 엄마를 잘 모르면서도, 오랫동안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궁금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궁금증 때문에 꽤 오랜 시간 작업하게 됐다. 찾아보니 시작한 게 2020년 정도더라."

    Q. 어머니는 평소 글을 쓰셨던 분이실까. '실낙원'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어머니의 마음을 따라가며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을까.

    "글을 쓰시던 분은 아니다. 제가 1998년에 군대에 갔는데 그즈음이 IMF 시절이었다. 아버지도 명예퇴직하셨고, 어머니는 몇 년 전까지 오랫동안 청소 노동자로 일하셨다. 늘 자신의 노동을 자랑스러워하셨던 분이다. 그런데 말씀은 굉장히 재미있게 하신다. 아내도 시댁에 가서 어머니가 이야기를 시작하시면 정말 재미있다고 한다. 그런 부분은 저도 어머니에게 영향받은 것 같다. 궁금하니까 이런 생각도 하고 저런 생각도 하면서 작품을 썼다. 그 관점으로 계속 어머니를 바라보는 시간이 재미있었다. 그런데 작품을 통해 결론적으로 도달한 건 ‘알 수 없다’였다. 100퍼센트 아는 것은 힘들다는 생각이었다."


  • 영화 '실낙원' 스틸컷 / CJ ENM 제공
    영화 '실낙원' 스틸컷 / CJ ENM 제공

    Q. 어머니에게 없던 AI 설정이 들어오게 된 배경이 있었을 것 같다.

    "저도 어릴 때는 정말 귀여웠다. (웃음) 어린 시절의 연상호와 지금의 연상호가 같은 사람인가 하는 질문을 할 수 있지 않나. 그것을 확신할 수 있느냐고 하면, 결국 같은 사람이라고 인정하게 해주는 것은 연속성이다. 그런데 류소영과 류선우 사이에는 그 연속성이 빠져 있다. 같은 아이라는 것을 확인해주는 것은 유전자뿐이다. 그 연속성이 사라졌을 때의 문제를 생각하게 됐다."

    Q. 류선우는 10살 때, 한 사건을 통해 자신의 본성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어떤 인물로 규정했을까.

    "전체적인 설정은 밀턴의 ‘실낙원’에 많이 기댔다. 사탄이 뱀의 몸을 빌려 이브를 시험에 들게 하는 이야기에서 저는 질투라는 감정에 초점을 맞췄다. 영화에서 납치범이 류소영을 돌아보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도 아이를 걱정하는 엄마에 대한 일종의 질투라고 생각했다. 돌아온 류선우가 AI 아들에게 질투를 느끼는 모습 역시 그런 맥락에서 보이길 바랐다. 살인에서 쾌락을 느끼는 부분은 정체성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선우는 사건 당시 자신에게 아들이 되라고 했던 납치범의 아들로서 오랫동안 살아온 인물이다.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그렇게 규정한 것이다. 그런데 류소영이 “넌 내 아들이야”라고 말하면서 그가 규정해 온 정체성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배현성과도 그런 점에 관해 이야기했다."


  • 영화 '실낙원' 스틸컷 / CJ ENM 제공
    영화 '실낙원' 스틸컷 / CJ ENM 제공

    Q. 김현주와 배현성을 모자로 캐스팅했다. '실낙원'은 두 사람의 굵은 감정선을 지나는 작품이기에 이 둘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특히 인상 깊었던 순간이 있었을 것 같다.

    "탄광 장면에서의 두 사람이 특히 좋았다. 배우에게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고 이야기하기 힘든 장면이었다. 제가 한 것은 뒤에 있는 차 앞에서 이야기하게 하고, 라이트를 켜놓자고 한 정도다. 라이트로 역광을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김현주의 연기가 동물적이라고 느껴졌다.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상황이다. AI 아들과 진짜 아들이 있고, 하오도 있어서 굉장히 복잡하다. 그런데 김현주는 배현성의 연기와 그 상황을 거의 품어내면서 동물적으로 연기하려는 느낌을 줬다. 되게 기묘했다. 저는 그것을 찍은 것이다. ‘기묘한데? 괜찮겠다’라고 생각했다. 거의 첫 촬영에 가까운 시점이었다."

    Q. 마지막 소영의 선택이 강렬했다. 그 선택에 대한 감독의 생각이 궁금하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말씀드린 이유와 연결된다. '이방인'을 읽을 때 주인공 뫼르소의 심리에 동의하기 힘들 때가 있었다. 그런데 살다 보니, 그 마음이 이해될 때가 있다. 류소영의 마지막 선택은 정확하게 이해되지 않지만, 감정적으로 이해되길 바랐다. 그 감정은 인간의 정체성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완벽하게 설명하는 건 AI가 더 잘할 수도 있다. 인간은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해도 '무슨 말인지 알겠다'라는 느낌이 존재한다.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인 것 같다."


  • 영화 '실낙원'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 / CJ ENM 제공
    영화 '실낙원'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 / CJ ENM 제공

    Q. 영화 '얼굴'도, '실낙원'도 몰입감 있게 보다가 그 끝에 묵직한 여러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철학적인 질문을 품으면서도 장르영화의 겉옷을 차려입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많은 관객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난 뒤 생각해 봐야 할 문제는 굉장히 복잡하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 뒤의 사색이 목적인데, 그 사색까지 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 늘 장르라는 틀로 이야기를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존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했지만 이 영화를 그렇게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 단순하게 몰입해서 보고, 영화가 던지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를 많이 본 사람도, 많이 보지 않은 사람도 각자 취할 수 있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대중예술의 숙명인 것 같다. 아주 쉽게, 아주 어려운 질문을 품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장르영화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장르영화는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이지, 쉬운 사색을 하게 만드는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Q. 관객에게 쉽게 다가가는 방식에 관한 생각도 궁금하다.

    "얼터너티브 음악에 빠졌던 시기가 있다. 가장 좋아하는 밴드는 라디오헤드이고 ‘OK Computer’를 좋아했다. 라디오헤드의 후기 음악을 들으면 너무 멋있는데, 돌고 돌아 ‘Creep’이더라. 라디오헤드가 가장 싫어하는 음악이 ‘Creep’이라고 해서, 저도 팬이다 보니 한때는 그 곡을 후진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고 돌아 다시 'creep'이다. 그런 시기가 있는 것 같다. 방식이 쉽다고 쉬운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니다. 아주 대중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다는 것이 제 방식이다. 다만 그 방식에서 재미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다른 문제다. 재미의 영역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다."


  • 영화 '실낙원'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 / CJ ENM 제공
    영화 '실낙원'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 / CJ ENM 제공

    Q. 그렇다면 돌고 돌아 연상호 감독의 작품은 스스로 뭐라고 생각할까.

    "상업영화나 텐트폴 영화를 할 때는 많은 분을 만족시키기 위한 정교함이 들어간다. 그런데 영화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는 지금 봐도 이야기의 촘촘함에 감탄한다. 반면 ‘4월 이야기’는 처음 봤을 때 조금 실망했다. 그런데 최근에 다시 보니 그 안에 무언가가 있더라. 작법에는 정답이 없는 것 같다. 여러 시도를 하되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하고 싶다. 예를 들어 만화로 실존주의를 보는 것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한들, 한국 영화 시스템에서 누가 선뜻 돈을 대주겠나. 그러니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해보고 싶은 것이다. 그런 작업이 휴식이 된다. 그렇게 ‘얼굴’을 만들었는데 잘되니까 ‘이것도 괜찮네?’ 싶었다. (웃음)"

    Q. 영화의 제작비, 국적 등 다양한 도전을 이어오고 있다. 그 과정을 통해 발견해 가는 지점이 있을까.

    "아예 그 느낌이 다른 것 같다. ‘돼지의 왕’과 ‘사이비’를 할 때는 강박이 있었다. 이 영화의 정체성이 곧 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산행’을 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부산행’은 다른 이야기였으니까. '부산행' 개봉하고, 장인어른과 식사하러 갔을 때, 장인어른께서 서빙해 주시는 이모님께 '부산행 봤어요?'라고 물어보시고 "봤죠"라고 답하자 "우리 사위"라고 하셨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면, 아이들이 좀비 흉내를 내며 뛰어다니기도 했다. 모두가 다 아는 영화를 만든다는 건 전혀 다른 세계의 것 같다. ‘돼지의 왕’과 ‘사이비’를 만들며 느꼈던 정체성도 있고, 그런 기쁨도 있다. 무엇이 같고 다르다고 간단하게 말하기는 힘들다.

    하루하루를 살면서 생각보다 수학의 답처럼 정확하게 떨어지는 답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어머니의 세 페이지 글에서 시작된 영화 '실낙원' 역시 끝내 그 마음을 다 알았다는 답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대신 설명할 수 없지만, '이런 거구나' 느껴지는 지점을 마주하게 됐다. 연상호 감독은 여전히 그런 마음의 한편에 있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을 통해 관객들은 한가지 모범 질문과 답안이 아닌, 각자 자신만의 질문들을 마주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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