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치레 일색, 알맹이 쏙…솔리다임 사태가 쏘아 올린 증권사 불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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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치레 일색, 알맹이 쏙…솔리다임 사태가 쏘아 올린 증권사 불신론

르데스크 2026-10-23 17:02:22 신고

SK하이닉스의 미국 자회사 솔리다임의 상장 검토를 중단을 계기로 국내 증권사들의 리포트를 둘러싼 신뢰성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그동안 발표된 증권사 리포트 대부분이 일반 투자자들이 우려했던 주주가치 훼손 가능성과 규제 위험에 대해서는 외면한 채 상장에 따른 장밋빛 전망만을 예고한 탓이다. 전문가들은 과거 기업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도 꾸준히 비슷한 논란이 불거졌던 점을 지적하며 증권사들이 기업의 성장 가능성뿐 아니라 기존 주주들의 이해관계와 잠재적 위험까지 균형 있게 분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6년 솔리다임·24년 두산 사태서 반복된 낙관론 일방통행…증권사 리포트 신뢰성 도마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이날 새벽 미국 자회사 솔리다임의 나스닥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IPO)와 기업공개(IPO) 검토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8월 5일 솔리다임의 상장 추진 사실이 알려진 지 79일 만이다. 솔리다임은 SK하이닉스가 2021년 미국 인텔의 낸드플래시 및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사업 인수를 위해 설립한 기업이다. 최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산에 따른 기업용 SSD(eSSD) 수요 증가로 생산시설 확충과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 재원 확보 필요성이 커지면서 미국 증시 상장을 추진해왔다. 앞서 솔리다임의 기업가치는 SK하이닉스 시가총액의 약 13% 수준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나스닥 상장 추진 사실이 알려진 이후 SK하이닉스 주주들 사이에서는 주주가치 훼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일기 시작했다. 솔리다임이 별도로 상장할 경우 SK하이닉스의 기업 가치에 반영돼 있던 낸드 사업이 독립적으로 평가받게 돼 SK하이닉스 주가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적지 않았다. 금융당국도 솔리다임의 미국 증시 상장 추진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을 내비쳤다. 앞서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9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모두 중복상장 규제에 저촉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2일에는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직접 "솔리다임의 미국 상장이 국내 중복상장 가이드라인 적용 대상이며 SK하이닉스와 SK스퀘어가 주주 보호를 위한 5대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 SK하이닉스는 23일 미국 자회사 솔리다임의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IPO)와 기업공개(IPO) 검토를 중단한다고 공시했다. 사진은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사진=연합뉴스]

 

솔리다임 상장 검토 중단 소식이 알려진 23일 SK하이닉스의 주가는 그동안 일반 투자자들과 금융당국의 우려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SK하이닉스 주가는 종가 기준 전 거래일 대비 4.42% 오른 127만7000을 기록했다. 삼성전자(+0.47%), 삼성전기(-2.01%), DB하이텍(-1.11%), 한미반도체(-0.10%) 등 주요 반도체 관련 종목들이 미국 빅테크 기업의 악재로 하락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이번 결정의 파장은 국내 증권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동안 증권사 대부분이 솔리다임의 미국 증시 상장이 SK하이닉스의 자금조달과 기업가치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만을 내놓은 탓이다. 일례로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8월 11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솔리다임의 미국 증시 상장을 단순한 중복상장이 아닌 인수·합병(M&A) 투자금 회수와 후속 투자 재원 확보를 위한 방안으로 평가했다. 솔리다임 지분 일부를 매각하면 약 150억달러(약 20조원)의 미국 현지 투자 재원을 마련할 수 있으며 SK하이닉스의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당시 SK하이닉스에 대한 투자의견 '매수'와 목표주가 280만원을 유지했다.

 

대신증권도 지난 9월 28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솔리다임 기업공개(IPO)와 해외 생산시설 투자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과도하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요인들이 SK하이닉스의 기업 기초체력(펀더멘털)을 훼손할 수준은 아니라며 투자의견 '매수'와 목표주가 320만원을 유지했다. 삼성증권 역시 솔리다임의 미국 증시 상장이 SK하이닉스의 기업가치를 재평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DS투자증권 역시 솔리다임의 사업구조와 상장 방식을 근거로 중복상장에 따른 기업가치 할인 우려가 과도하다는 내용을 담은 리포트를 발표했다. 


▲ 솔리다임의 상장 검토 중단 사태로 앞서 기대효과만을 강조했던 국내 증권사들의 리포트의 신뢰성에도 의문 부호가 뒤따르고 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증권가 모습. [사진=연합뉴스]

 

특히 비슷한 일이 과거에도 수차례 반복돼 왔다는 점은 증권사 리포트 신뢰 하락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2024년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이 꼽히고 있다. 당시 두산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밥캣을 분리한 뒤 두산로보틱스의 자회사로 편입하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당시 두산그룹은 계열사 간 사업 시너지 확대와 경영 효율성 제고를 개편 명분으로 내세웠으며 증권가에서도 사업 경쟁력 강화와 기업가치 상승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석이 대거 쏟아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2024년 7월 11일부터 26일까지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두산로보틱스, ㈜두산을 대상으로 발간된 증권사 보고서에서 매도 의견은 한 건도 없었다. 반면 매수 의견은 두산에너빌리티 4건, 두산밥캣 2건, 두산로보틱스와 ㈜두산 각각 1건으로 집계됐다. 일례로 당시 메리츠증권은 2024년 7월 15일 '분할합병 오해 마세요. 좋은 겁니다'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두산에너빌리티가 보유한 두산밥캣 지분을 두산로보틱스에 넘기는 대신 두산로보틱스 주식을 확보하는 지배구조 개편이 기존 주주들에게 유리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실제 주가는 증권사들의 전망과 다른 흐름을 보였다. 두산에너빌리티 주가는 지배구조 개편 발표 당일인 2024년 7월 11일 2만1850원에서 같은 해 8월 27일 1만7860원으로 18.26% 하락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 하락률(-6.99%)의 두 배를 웃도는 수준이었다. 두산밥캣(-15.87%)과 두산로보틱스(-19.93%)도 두 자릿수 하락률을 기록했다. 기업가치 상승 가능성을 강조했던 증권사들의 분석과 달리 시장에서는 지배구조 개편에 따른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가시지 않았다는 방증이었다. 

 

▲ 2024년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당시에도 국내 증권사들은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지만 해당 계획은 주주 반발과 금융당국의 문제 제기 끝에 무산됐다. 사진은 지난 3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북미 최대 건설장비 전시회 '콘엑스포(CONEXPO) 2026'을 방문한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왼쪽 두 번째). [사진=연합뉴스]

 

두산밥캣 소액주주들의 반발도 상당했다. 수익성이 높은 두산밥캣의 기업 가치는 낮게 평가된 반면 적자를 기록하던 두산로보틱스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높게 산정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금융감독원도 관련 증권신고서에 정정을 요구하면서 거래구조와 주식교환 비율의 적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확대됐다. 결국 두산그룹은 같은 해 8월 29일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간 포괄적 주식교환 계획을 철회했다. 이후 수정된 분할합병안을 추진했으나 주가 하락에 따른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부담 등을 이유로 끝내 계획은 중단됐다.

 

전문가들은 증권사 리포트가 기업의 성장 가능성과 사업 재편에 따른 기대효과를 강조하는 데만 치중할 경우 종국엔 누구도 믿지 않는 보고서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증권사 리포트는 기업의 사업 확장이나 자금조달에 따른 긍정적인 효과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주주가치 훼손 가능성과 규제 위험까지 균형 있게 분석해야 한다"며 "기업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닌데도 긍정적인 전망에만 무게를 둔다면 투자 참고서로서의 존재 가치를 영영 상실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솔리다임 상장에 따른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매우 컸음에도 긍정적인 효과에 무게를 둔 분석이 이어졌다는 점은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 아쉬운 대목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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