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치 포인트까지 잡았다. '숙적' 가지와라 다이키(일본)를 넘어설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다. 한국 장애인 배드민턴의 간판 유수영(24·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90분 혈투 끝에 아시안패러게임(APG)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유수영은 23일 일본 아이치현 이치노미야 시립체육관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APG 배드민턴 남자 단식(스포츠등급 WH2) 결승에서 가지와라에게 게임 스코어 1-2(10-21, 21-18, 22-24)로 석패했다.
가지와라는 이 종목 세계 최강자다. 2020 도쿄와 2024 파리 패럴림픽에서 남자 단식(WH2) 2연패를 달성했다. 2022 항저우 APG 결승에서도 유수영을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현재 세계랭킹 역시 가지와라가 1위, 유수영이 2위다.
유수영은 이번 대회에서 설욕을 노렸지만 출발은 좋지 않았다. 1게임 초반 공격이 조금씩 라인을 벗어나며 1-9까지 끌려갔고, 결국 10-21로 첫 게임을 내줬다.
하지만 2게임부터 반격에 나섰다. 적극적인 공격으로 주도권을 잡은 유수영은 11-6으로 인터벌을 맞았다. 이후 13-12까지 추격을 허용했지만 다시 점수 차를 벌리며 21-18로 승리,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마지막 3게임은 그야말로 혈투였다. 8-11로 끌려가던 유수영은 끈질긴 추격 끝에 14-14 동점을 만들었다. 이후 한 점씩 주고받는 접전이 이어졌다. 가지와라의 매치 포인트 위기를 두 차례나 넘긴 유수영은 오히려 22-21로 역전하며 자신의 매치 포인트를 잡았다.
하지만 마지막 한 점이 야속했다. 가지와라의 코트 구석을 찌르는 공격에 동점을 허용한 유수영은 이후 연속 2점을 추가로 내주면서 22-24로 패했다. 휴식 시간까지 포함해 90분 동안 이어진 승부였다.
경기 후 붉게 충혈된 눈으로 믹스트존에 나타난 유수영은 "앞서가고 있을 때 안심해 버린 것 같아 아쉽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매치 포인트를 잡았을 때 상대가 지치고 무너지는 게 보였다"라며 "오히려 마음을 강하게 먹고 갔어야 했는데, 안심하는 바람에 계속 보여주던 퍼포먼스를 못 보여준 것 같다"고 돌아봤다.
가지와라는 유수영이 반드시 넘어서고 싶은 상대다. 유수영은 대회를 앞두고 "세계 최강 가지와라의 벽을 넘어 배드민턴 종목의 독보적 타이틀로 기억되고 싶다"고 각오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 벽을 넘지 못했다. 유수영은 "지금까지 가지와라를 이긴 적이 없다"라며 "할 수 있는 만큼은 했다. 마지막 마무리가 아쉽다"고 털어놨다. 그래도 이번에는 처음으로 매치 포인트까지 잡으며 세계 최강자를 꺾기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아직 설욕의 기회는 남아 있다. 유수영은 전날 박해성(29·울산중구청)과 호흡을 맞춘 남자복식 준결승에서 가지와라-니시무라 게이타 조를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단식에선 가지와라에게 패했지만, 복식에서는 승리한 것이다.
이날 열리는 남자복식 결승에선 중국의 마이젠펑-취쯔모 조와 맞붙는다. 2024 파리 패럴림픽 결승에서 유수영에게 패배를 안겼던 상대다. 단식에선 아쉽게 금메달을 놓쳤지만, 복식에서는 또 다른 설욕과 금메달에 도전한다.
이치노미야(일본)=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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