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호 태풍 '참피(CHAMPI)'가 대만 동쪽 해상에서 방향을 틀어 일본 규슈 쪽으로 향할 전망이다. 한반도 직접 상륙 가능성은 낮지만 정부는 23일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고 제주도와 남해안 위험지역에 대한 선제적 통제를 지시했다. 태풍이 끌어올린 수증기와 강풍 탓에 이번 주말 제주 산지에는 150㎜ 이상의 비가, 제주 남쪽 바깥먼바다에는 최고 6m의 물결이 예보됐기 때문이다. 참피가 국내 영향 태풍으로 분류되면 1951년 태풍 기록 집계 이래 가장 늦게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태풍으로 남게 된다.
23일 오전 일본 기상 위성에 포착된 제30호 태풍 '참피' / himawari8
대만 코앞에서 '급선회'…24일부터 북동쪽으로 방향 튼다
기상청이 23일 오전 10시 발표한 태풍정보에 따르면 참피는 이날 오전 9시 현재 대만 타이베이 남동쪽 약 360㎞ 해상(북위 22.6도, 동경 123.8도)에서 시속 15㎞의 속도로 북서진하고 있다. 중심기압은 960hPa, 중심 부근 최대풍속은 초속 39m(시속 140㎞)로 강도 3 수준이다. 초속 15m 이상의 바람이 부는 강풍반경은 470㎞에 이른다.
새 예상 경로의 핵심은 대만 북동쪽 해상에서의 '방향 전환'이다. 참피는 이날 오후 9시 타이베이 동남동쪽 약 130㎞ 해상까지 바짝 다가선 뒤 진로를 북북서에서 북쪽으로 바꾸겠다. 24일 오전 9시에는 타이베이 북동쪽 약 140㎞ 해상, 같은 날 오후 9시에는 타이베이 북북동쪽 약 310㎞ 해상을 지나며 본격적으로 북동쪽을 향할 것으로 예상된다.
25일 오전 9시에는 일본 가고시마 서남서쪽 약 590㎞ 해상에 도달하겠다.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워지는 시점이 바로 이 무렵이다. 이후 참피는 시속 20㎞대 중반으로 이동 속도를 높여 일본 규슈 쪽으로 빠져나가고, 26일 오전 9시 가고시마 북쪽 약 70㎞ 부근 육상에서 온대저기압으로 바뀔 전망이다.
세력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참피는 지난 20일 밤 중심기압 910hPa, 최대풍속 초속 56m(시속 202㎞)로 기상청 강도 분류상 최고 단계인 '초강력'(강도 5)까지 발달했던 태풍이다. 하지만 이날 오전 3시 중심기압 950hPa, 최대풍속 초속 43m였던 세력은 6시간 만에 960hPa, 초속 39m로 한풀 꺾였다. 24일 오전 9시에는 강도 2(초속 29m), 25일 오전 9시에는 강도 1(초속 23m, 중심기압 992hPa)까지 약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상청은 참피가 북쪽으로 올라오면서 상대적으로 바닷물 온도가 낮은 해역에 들어선 데다, 한반도 상공에 부는 강한 편서풍이 태풍의 북상을 가로막고 있어 한반도 직접 상륙 가능성은 낮다고 내다봤다. 다만 태풍 중심이 제주에서 멀리 떨어져 지나가더라도 25일 전후로 제주 남쪽 해상과 남해상 일부가 강풍반경 안에 들 수 있어 안심하기는 이르다.
23일 오전 10시 기상청이 발표한 태풍 정보에 담긴 제30호 태풍 '참피' 예상 이동경로 / 기상청
상륙 안 해도 비는 온다…제주 산지 150㎜ 이상 '물폭탄'
태풍이 직접 오지 않는데도 비 피해가 우려되는 이유는 수증기다. 태풍과 아열대고기압 가장자리를 타고 올라온 덥고 습한 공기가 한반도 주변의 찬 공기와 부딪히면서 비구름이 강하게 발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는 23일 오후 제주도에서 먼저 시작돼 밤사이 전남과 경남 남해안으로 번지겠다. 24일에는 남부지방 곳곳으로 강수 구역이 넓어지고, 25일에는 충청 일부 지역과 강원 동해안·산지에도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전라권은 25일 오후, 경상권 내륙과 남해안은 25일 밤 대부분 그치겠지만 제주 일부 지역에는 26일 새벽까지 비가 이어질 수 있다.
23일부터 주말까지 예상 강수량은 제주도 50~100㎜이며, 제주 산지와 중산간에는 150㎜ 이상 내리는 곳도 있겠다. 광주·전남과 부산·울산·경남은 20~60㎜, 대구·경북과 울릉도·독도는 5~40㎜, 전북은 5~20㎜다. 25일 하루 동안 대전·세종·충남·충북에는 5~10㎜, 강원 동해안과 산지에는 5㎜ 안팎의 비가 예보됐다.
특히 제주도에는 23일 밤부터 24일 새벽 사이, 24일 밤부터 25일 새벽 사이 시간당 20~30㎜의 강한 비가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쏟아지면 하천 수위가 빠르게 오르고 저지대나 지하차도, 상습침수지역에서 피해가 날 수 있는 만큼 각별한 대비가 필요하다.
태풍 영향으로 강한 파도가 치고 있는 제주 해안 자료 사진 / 뉴스1
최고 6m 파도에 하늘길·뱃길 '빨간불'…대만·일본은 이미 비상
비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바람과 파도다. 23일 오후부터 제주에는 순간풍속 시속 55㎞ 이상의 강풍이 불겠고, 제주 산지에는 시속 70㎞ 이상의 바람이 몰아칠 수 있다. 24일부터는 남해안에도 순간풍속 시속 55㎞ 이상의 강한 바람이 예상된다.
바다는 더욱 거칠어진다. 제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제주도 남쪽 바깥먼바다의 물결은 24일 최고 5.5m, 25일 최고 6m까지 높아지겠다. 25일 이 해역의 예상 풍속은 초속 14~22m다. 제주 남부와 동부 앞바다에서도 25일부터 26일 오전까지 최고 5m의 물결이 일겠고, 동중국해에는 24~25일 최고 7m의 높은 파도가 예보됐다. 제주도 남쪽 먼바다와 남해동부 바깥먼바다에는 24일 새벽부터 풍랑특보가 강화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제주를 오가는 항공기와 여객선 운항에 차질이 생길 수 있어, 이번 주말 이동 계획이 있다면 출발 전 운항 정보를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좋다. 방파제와 갯바위, 해안 산책로에서는 예고 없이 덮치는 너울성 파도에 휩쓸릴 위험이 있으므로 접근을 삼가야 한다. 주말 제주에서 열릴 예정인 제주마축제(제주시 애월읍), 수월봉 지질트레일(제주시 한경면) 등 야외행사 참가자들도 날씨에 따른 운영 변경 여부를 미리 살펴야 한다.
참피의 위력은 이미 이웃 나라에서 확인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22일 대만에서는 국내선 항공편 125편이 취소됐고, 일본에서도 100편 넘는 항공편이 결항하면서 1만1000명 이상의 승객이 발이 묶였다. 23일에는 대만 대부분 지역에서 학교와 관공서가 문을 닫고 금융시장도 휴장했다. 대만 현지 매체 연합보에 따르면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 TSMC는 24일 열 예정이던 연례 임직원 체육대회를 직원 안전 등을 이유로 취소했다.
일본을 향해 북상 중인 제30호 태풍 '참피' / himawari8
정부, 긴급 대책회의…”방파제·갯바위 선제 통제하라"
참피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시기'다. 기상청에 따르면 1951년 태풍 기록 집계 이후 우리나라에 가장 늦게 영향을 준 태풍은 1998년 10월 16~18일 영향을 미친 제10호 태풍 '제브'다. 참피가 공식적으로 국내 영향 태풍으로 분류되면 이 기록은 28년 만에 깨지게 된다. 10월 하순에는 한반도 주변 기압계가 가을철 패턴으로 바뀌어 태풍이 우리나라 쪽으로 올라오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이례적인 사례다.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행정안전부는 23일 오전 10시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김용균 자연재난실장 주재로 태풍 참피와 26일까지 예상되는 호우에 대비한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었다. 회의에는 관계 중앙부처와 지방정부, 공공기관이 참석해 태풍 예상 진로와 기상 전망을 공유하고 강풍 취약시설 안전관리, 빗물받이 등 배수시설 정비, 비상대응체계 구축 상황을 점검했다.
윤호중 행안부 장관은 옥외간판과 비닐하우스, 공사장 가설시설물 등 강풍에 취약한 시설을 사전에 점검·정비하고, 어선과 양식시설 등 해안가 수산시설은 결박·고정 조치를 철저히 하라고 지시했다. 가을철 낙엽으로 빗물받이가 막혀 침수가 발생하지 않도록 저지대와 상습침수지역을 중심으로 퇴적물을 미리 걷어내고 배수로를 정비하라고도 주문했다.
또 높은 파도와 강풍이 예상되는 제주도와 남해안의 방파제, 갯바위, 해안 산책로 등 위험지역은 선제적으로 출입을 통제하고, 조업·출항 금지 등 선박사고 예방 조치에도 만전을 기하도록 했다. 태풍 진로와 강수량이 바뀔 가능성에 대비해 기상 상황을 계속 감시하고 경찰·소방 등 관계기관 간 협력체계를 유지하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윤 장관은 "국민께서도 기상정보를 수시로 확인하시고, 강풍과 높은 파도가 예상되는 해안가 등 위험지역 방문을 자제하는 등 당국의 안내에 따라 안전수칙을 철저히 지켜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기상청은 태풍이 대만 부근에서 방향을 트는 위치와 이동 속도, 세력 변화에 따라 국내 강수량과 비가 그치는 시점, 강풍·풍랑 영향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며 최신 기상정보를 수시로 확인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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