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가 여성의 눈으로 본 세상…3년 만의 신작 '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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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여성의 눈으로 본 세상…3년 만의 신작 '가호'

연합뉴스 2026-10-22 16:46:17 신고

국내 번역 출간…현살과 환상 오가며 그림책 작가가 겪는 기이한 이야기 그려

첫 여성 단독 주인공 소설로 화제…'모녀 갈등'이 중심축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솔직히 그쪽처럼 못생긴 상대는 처음이군요."

그림책 작가인 스물여섯 살 일본 여성 가호는 한 남자와의 첫 데이트에서 이런 무례하고 모욕적인 말을 듣는다.

그러고는 남자는 마치 가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어내듯 대화를 이어가는데, 가호는 그에게서 가늘고 긴 혀끝으로 흰개미 집을 핥는 개미핥기를 떠올린다.

황당한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백일몽도 환각도 아닌, 어쩌면 현실일지도 모를 꿈속에서 개미핥기가 가호에게 나타나 당장 도쿄 외곽 무사시사카이로 집을 옮겨야 한다고 재촉한다.

일본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거장 무라카미 하루키가 3년 만에 내놓은 신작 '가호'는 이렇듯 가호에게 펼쳐지는 기묘한 일들을 다룬 작품이다.

새로운 동네로 옮긴 가호의 집 마루 밑에는 아마존 정글에서 온 개미핥기 부부가 자리를 잡고 가호의 수호자를 자처한다.

하지만 개미핥기의 부탁으로 가호는 어딘가 미심쩍고 위험한 거래에 엮이게 되고, 재규어와 흰개미 여왕 등이 차례로 등장하며 이야기는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현실과 환상의 흐릿한 경계를 오가는 이런 설정은 익숙한 '하루키적 세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가호'는 이야기 속에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메타 소설'이란 점에서도 흥미롭다.

그림책 작가인 가호는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새 그림책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그 이야기 속 어린 소녀 '미소라'는 가족과 소풍을 갔다가 숲에서 길을 잃고 다른 세계에 갇히고 마는데, 미소라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이야기 속 이야기'와 가호의 상황이 맞물리며 서사는 여러 겹의 구조로 펼쳐진다.

또 우여곡절 끝에 가호가 눈물을 거두고 그림책을 완성하기 위해 작업용 책상 앞에 앉는 장면은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붙들고 자기만의 서사를 찾으려는 작가의 성장담으로도 읽힌다.

가호 가호

[문학동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무엇보다 '가호'는 하루키가 여성을 단독 주인공으로 내세운 첫 소설로 화제가 된 작품이다.

하루키 소설 속 주인공은 대부분 남성으로 하루키는 여성 캐릭터를 성적 대상으로만 납작하게 그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루키는 신작에서 모녀 관계를 이야기의 중심축에 놓는다.

가호는 어느 날 엄마가 '흰개미 여왕'에 씌었단 사실을 눈치채고, 엄마의 심장을 찔러 흰개미 여왕을 처치하려 한다.

어머니의 심장을 찔러 어머니를 구하는 셈인데, 이는 '해변의 카프카' 등에서 서사적 장치로 활용한 '부친 살해' 모티프를 '모친 살해'로 비튼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또 '가호'에서 두 모녀 사이는 단순히 사랑과 존경으로 이뤄진 관계가 아니다. 가호의 내면에는 엄마의 기대와 통제를 벗어나려는 열망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결국 '모친 살해' 모티프는 딸의 정신적 독립을 위한 통과 의례로도 풀이된다.

하루키는 신간 출간 전 미국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젊은 여성의 관점으로 글을 쓰는 것이 평소와 다른 경험이었지만, 놀라울 만큼 자연스러웠다고 회상했다.

다만 '가호'를 과연 여성의 눈으로 쓴 작품이라 보기에는 의아한 지점도 있다.

이를테면 50대 여성의 성적 욕망을 '흰개미 여왕'에 사로잡힌 이상행동으로 묘사하는 대목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가호'는 올해 7월 일본 현지 발매 후 나흘 만에 발행 부수 30만 부를 기록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에서도 발매 전부터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는 등 주목받고 있다.

예스24에 따르면 지난달 29일부터 예약판매를 시작한 '가호'는 10월 첫째 주(10월 1∼7일)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이달 21일 정식 출간과 함께 10월 셋째 주(10월 15∼21일) 베스트셀러 정상을 다시 차지했다.

문학동네. 376쪽.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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