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0주년 기획-2.한글] ⑥훈민정음의 탄생, 백성의 언어가 문학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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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0주년 기획-2.한글] ⑥훈민정음의 탄생, 백성의 언어가 문학을 만나다

뉴스컬처 2026-10-22 16:27:2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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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문자는 말을 기록하는 수단이자 누가 지식을 남기고 읽을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사회적 장치다. 한국 문학사에서 한글의 등장은 글쓰기의 도구가 달라진 사건을 넘어, 우리말로 감정과 생각을 기록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 역사적 전환이었다. 글을 읽고 쓰는 일이 한문 교육을 받은 지식인에게 집중됐던 시대에 훈민정음은 한국어의 소리를 직접 적을 수 있는 문자를 제공했다. 그 변화는 문학의 표현 방식과 독자의 범위를 함께 바꾸기 시작했다.

사진=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된 이미지
사진=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된 이미지

1443년 창제된 훈민정음은 1446년 '훈민정음' 해례본의 간행을 통해 창제 원리와 사용법이 세상에 알려졌다. 세종이 새 문자를 만든 배경에는 백성이 자기 뜻을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현실이 있었다. '훈민정음' 예의에는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이 말은 우리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로는 뜻을 충분히 나타내기 어렵다는 취지다. 새 문자의 필요성을 언어생활의 문제에서 찾았다는 점은 한글의 역사적 의미를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한글의 창제만으로 모든 사람이 곧바로 글을 읽게 된 것은 아니다. 문자 사용에는 교육과 책의 보급, 독서 환경이 필요했다. 조선의 공식 문서와 학문 활동에서는 한문이 오랫동안 높은 위상을 유지했고, 한글은 언간과 가사, 소설, 번역서 등 여러 형태로 쓰이며 생활 속에 자리를 넓혔다. 한글 문학의 역사는 새 문자가 만들어진 순간과 그 문자를 실제로 활용한 사람들이 늘어난 과정을 함께 살펴볼 때 온전히 드러난다.

한글이 문학에 가져온 변화는 우리말의 표현을 글로 남길 수 있게 했다는 데서 출발한다. 한문 문학이 유교 경전과 역사, 학문적 글쓰기에 큰 비중을 두었다면, 한글로 쓰인 작품들은 일상의 감정과 가족 관계, 사랑과 이별, 여성의 경험, 민간의 생활을 보다 폭넓게 기록할 수 있었다. 두 문학 전통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았다. 지식인들은 한문과 한글을 함께 사용했고, 한글은 번역과 창작을 오가며 문학의 영역을 확장했다.

홍길동전. 사진=국립한글박물관
홍길동전. 사진=국립한글박물관

초기 한글 문학에서 주목할 작품으로는 정철의 가사와 허균의 '홍길동전' 등이 있다. 가사는 우리말의 리듬과 표현을 활용해 개인의 감정과 자연에 대한 인식, 정치적 현실을 길게 펼쳐 보일 수 있는 문학 형식이었다. '홍길동전'은 한글 소설의 역사에서 자주 거론되는 작품으로, 서얼 차별과 신분제 사회의 모순을 이야기의 동력으로 삼는다. 다만 현전하는 초기 판본과 창작 시기를 둘러싼 논의가 있어, 오늘날 읽는 한글본의 형태를 최초 창작 당시와 동일하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

한글 소설의 확산은 문학을 읽는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필사본은 작품을 베껴 쓰고 나누어 읽는 문화를 만들었고, 세책점(조선 시대 서적 대여점)은 일정한 대가를 받고 책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독서의 접근성을 넓혔다. 19세기에는 한글 소설이 필사와 대여를 통해 유통되며 다양한 독자층을 만났다. 작품은 작가가 글을 완성하는 순간에 머무르지 않았다. 베껴 쓰는 사람과 빌려 읽는 사람, 이야기를 소리 내어 읽어 주는 사람이 문학의 전승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여성 독자의 존재는 중요하다. 조선시대 여성은 교육과 사회활동에서 제약을 받았지만, 한글은 가족과 친지 사이의 편지, 가사, 소설 독서 등에서 활용됐다. 왕실 여성과 양반가 여성의 기록뿐 아니라 생활 속 언간 자료는 한글이 사적인 감정과 관계를 전달하는 문자였음을 보여준다. 여성의 독서와 창작을 모두 같은 경험으로 묶을 수는 없지만, 한글이 공식적인 공적 기록 바깥의 목소리를 남길 통로가 됐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한글 문학의 의미는 새로운 독자가 등장했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다. 우리말을 적는 문자가 마련되면서 한국어의 어휘와 말투, 리듬을 문학적 표현으로 다듬을 수 있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노래와 이야기는 기록을 통해 다른 시대의 독자에게 전달됐고, 글로 남은 작품은 말의 형태를 보존하는 동시에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열었다. 구전과 기록은 서로 대립하기보다 영향을 주고받으며 문학의 기억을 이어 갔다.

근대에 들어 한글은 사회 변화와 맞물려 새로운 역할을 맡았다. 개화기 신문과 잡지, 교과서의 발간은 한글 읽기와 쓰기가 공적 생활에 필요한 능력으로 자리 잡는 데 영향을 미쳤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공문서에서 국문 사용을 확대하려는 제도적 변화가 나타났고, 1896년 창간된 '독립신문'은 한글을 활용한 대중적 정보 전달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례로 꼽힌다. 문학 역시 신문과 잡지라는 새로운 매체를 만나 독자와 접촉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근대 소설과 시는 한글을 통해 개인의 내면과 사회 현실을 새로운 문체로 표현했다. 인물의 말과 서술자의 언어를 우리말로 구성하는 작업은 문학이 한국어의 표현 가능성을 시험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학교 교육과 출판 산업이 확대되면서 독서는 일부 계층의 취미를 넘어 사회적 경험으로 넓어졌다. 다만 문해력의 확대는 지역과 계층, 성별에 따라 속도와 범위가 달랐으며, 식민지 시기에는 언어와 교육을 둘러싼 억압도 겪었다.

사진=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된 이미지
사진=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된 이미지

한글 문학의 역사는 문자가 저절로 사회를 바꾼 기록이 아니다. 문자를 만들고, 익히고, 작품을 쓰고, 책을 유통한 사람들의 활동이 쌓이며 변화가 현실이 됐다. 훈민정음의 창제는 표현의 가능성을 열었고, 한글 소설과 가사, 언간은 그 가능성을 일상의 언어로 구체화했다. 근대 출판과 교육은 독서의 범위를 넓혔으며, 문학은 시대마다 달라지는 한국인의 삶과 언어를 기록해 왔다.

한글 문학을 돌아보는 일은 과거의 작품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어떤 언어가 기록될 수 있었는지, 누구의 경험이 독자에게 전달됐는지 살펴보는 일이다. 한글은 말과 글 사이의 거리를 좁혔고, 문학은 그 문자를 통해 개인의 경험을 공동의 기억으로 바꾸어 왔다. 한글의 역사적 의의는 문자 체계의 독창성뿐 아니라, 우리말로 쓰고 읽는 사람들의 참여가 오랜 시간에 걸쳐 문학과 사회의 범위를 넓혀 왔다는 데 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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