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마의 삶은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에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기억에 남지 않는 하루, 햇살 아래 풀을 뜯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시간에도 생명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한국마사회 말박물관(회장 우희종)이 23일 이소희 초대작가전 ‘읽히지 않은 시간’을 열고, 기록되지 않은 말의 일상과 그 속에서 발견한 삶의 의미를 관람객에게 전한다고 22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경주마의 성적과 기록처럼 눈에 보이는 결과에 가려진 시간에 주목한다. 말이 태어나 어미 곁에서 자라고, 먹이를 먹으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평범한 순간들을 통해 삶을 이루는 진정한 가치는 특별한 성취뿐 아니라 일상에 축적된 경험과 시간에도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작가는 말의 일상을 바라보며 사람의 삶을 함께 들여다본다. 지금의 자신을 만든 것은 누구나 주목하는 극적인 사건보다 무심히 지나쳤던 하루와 그 안에서 반복된 작은 과정들이라는 것이다. 전시 제목인 ‘읽히지 않은 시간’ 역시 의미 없이 흘러간 시간이 아니라, 아직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시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작품은 세밀한 형태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여러 겹으로 쌓인 붓질과 어우러지는 색채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표현한다. 현실과 꿈이 맞닿은 듯한 화면은 관람객이 익숙한 일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이끈다.
대표작 ‘시간의 시작’에는 생명의 탄생을 하나의 신화가 시작되는 순간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생각이 담겼다. 오래된 유럽의 성당을 떠올리게 하는 친근하면서도 신비로운 공간에 나팔을 부는 천사와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백마가 등장한다. 말과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한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저마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작품이 건네는 메시지는 거창하지 않다. 때로는 지루하고 때로는 버겁게 느껴지는 일상도 시간이 쌓이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이다. 특별하지 않다고 여겼던 순간들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을 이루듯, 말의 생애 역시 기록과 성적 너머에 있는 무수한 시간으로 완성된다.
이소희 작가의 초대전은 과천에 위치한 말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오는 11월 29일까지 열린다. 관람객들은 작품을 통해 지나온 일상의 의미를 되새기고,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자신만의 소중한 순간을 돌아볼 수 있다.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