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상완 기자]그릇이 사람의 몸을 닮고, 흙으로 만든 뼈가 재활의 기억을 대신한다. 꽃무늬 카펫은 도자 조각으로 변했고, 3D 프린터가 쌓아 올린 구조에서는 가마의 열을 받은 유약 결정이 자란다. 손으로 빚고 불에 구워 완성하는 도자가 인간의 신체와 기후위기, 디지털 기술까지 다루는 조형 매체가 됐다.
2026 경기도자비엔날레 제13회 국제공모전의 GCB우수상 수상작 9점이 세계 동시대 도자의 다양한 변화를 보여준다. 전 세계 77개국에서 1050명이 출품한 작품 1397점 가운데 최종 수상작은 58점이다. GCB대상 1점, GCB우수상 9점, 특별상 5점, GCB상 43점이 선정됐다. 독일 작가 데이비드 라우어의 '펀치카드 하우스'가 대상을 받았다.
우수상 9점에는 한국과 홍콩, 일본, 튀르키예, 우크라이나 등 8개 국가·지역 출신 작가들이 참여했다. 개인 작업 외에 두 명이 공동 제작한 작품도 포함됐다. 작품들은 제작 재료와 표현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그릇과 인체 조각에서 출발한 작업이 있는가 하면 건축적 설치, 섬유와 도자의 혼합, 3D 프린팅을 활용한 작품도 있다. 차이를 읽는 기준은 세 가지다. 인간의 몸과 타인과의 관계, 환경 변화와 생태계, 제작 기술과 물질의 변화다. 흙을 다루는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인간이 어떤 존재이며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묻는 질문이 작품 전반에 담겼다.
◇몸의 기억을 담은 그릇과 얼굴 없는 흉상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하는 곽윤지의 '잔존'(2026)은 높이 120cm의 대형 그릇이다. 우리말에서 '그릇이 크다'는 표현은 물리적인 크기 외에도 사람의 포용력과 도량을 뜻한다. 곽윤지는 언어에 담긴 의미를 실제 그릇의 크기와 형태에 옮겼다. 작품은 손으로 흙을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흙을 조금씩 더하면서 높이와 부피를 키우는 과정에는 작가의 반복적인 노동과 시간이 요구된다. 작은 흙덩이가 서로 연결돼 하나의 그릇이 되는 구조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자아의 범위를 넓혀가는 과정과 연결된다.
그릇은 무엇인가를 담는 물건이다. 내부에 빈 공간이 있어야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곽윤지는 그릇의 물리적 성질을 인간의 관계와 연결한다. 타인의 존재를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이 달라지고, 관계가 깊어질수록 내면의 크기도 변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잔존'이라는 제목은 관계가 끝난 뒤에도 남아 있는 감정과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손으로 흙을 더한 흔적은 하나의 덩어리가 완성되기까지 거쳐온 제작 과정을 기록한다. 그릇의 크기와 표면에 남은 시간이 인간의 내면을 설명하는 조형 언어가 된 셈이다.
홍콩 작가 렁 칭만 캘리스의 '뼈 사이의 몸 찾아내기'(2025)는 신체 경험을 보다 직접적인 재료로 삼는다. 작가는 부분 마비 이후 겪었던 재활 과정을 자기로 만든 뼈와 금속 프레임, 퍼포먼스 영상으로 표현했다. 뼈는 신체를 지탱하는 구조이지만 평소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 렁 칭만 캘리스는 신체 내부에 존재하는 뼈를 도자 조형물로 제작하고 금속 구조와 연결했다. 여기에 실제 몸의 움직임을 기록한 영상이 더해지면서 정적인 도자와 움직이는 신체가 서로 다른 시간을 보여준다.
재활은 신체의 움직임을 반복해서 회복하는 과정이다. 이전에는 자연스럽게 수행했던 행동이 어려워지면 몸을 움직이는 일 자체를 다시 배워야 한다. 작가는 경험을 의료적 기록에 한정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지 탐색하는 예술적 문제로 확장했다. 도자는 높은 온도의 가마에서 굳어지는 재료다. 불에 구워 완성된 뼈의 형상은 단단하지만 충격에는 깨질 수 있다. 강도와 취약성이 공존하는 도자의 성질은 재활 과정에서 경험한 신체의 불안정성을 생각하게 한다.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스페인에서 활동하는 유리 무사토프의 '흉상'(2025)은 인간의 얼굴을 다르게 다룬다. 일반적인 흉상은 특정 인물의 얼굴과 상반신을 표현한다. 눈과 코, 입, 표정은 인물의 정체를 구별하는 주요 요소다. 무사토프는 이러한 특징을 지워 인물의 개별적인 신분을 확인하기 어렵게 했다. 얼굴의 세부가 사라지면 관람객은 누구를 조각했는지 알아내기 어렵다. 대신 머리와 몸의 형태, 조각의 부피, 표면에 집중하게 된다. 특정 인물의 초상에서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탐색하는 조각으로 해석의 방향이 바뀐다.
◇사라지는 겨울, 인공 생태계와 흙으로 핀 꽃
기후와 생태를 다룬 작품들은 인간이 환경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에 질문을 던진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작가 듀오 더 그립스의 '다시는 눈이 오지 않을 거야'(2025)는 자기와 콘크리트, 섬유를 결합한 작품이다. 러시아 출신 마라트 무하메토프와 투르크메니스탄 출신 율리아 바티로바가 공동 제작했다. 제목은 겨울의 풍경이 사라질 가능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눈은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자연 현상이지만 기후변화로 강설과 적설의 양상은 지역마다 달라지고 있다. 익숙한 겨울을 더는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이 작품의 출발점이다.
자기와 콘크리트, 섬유의 조합도 의미를 갖는다. 콘크리트는 현대 도시의 건축 환경을 대표하는 재료이고, 섬유는 유연한 물성을 갖는다. 높은 온도에서 구워진 자기는 또 다른 성질을 보인다. 서로 다른 재료가 결합하면서 자연과 인공, 단단함과 유연함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문제를 설명하는 대신 익숙한 계절의 상실을 상상하게 한다는 점이 작품의 특징이다. 사람에게 겨울은 기온과 강수량만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눈이 내리던 거리와 집, 계절에 따라 반복하던 생활의 경험도 포함된다. 제목은 환경 변화가 인간의 기억과 일상에 미칠 영향까지 환기한다.
한국 작가 이은영의 '메타-바이오스피어'(2026)는 인간이 생태계를 인공적으로 재현하려 했던 실험에서 출발한다. 1991년 미국 애리조나에서 시작된 '바이오스피어 2'는 외부와 물질 교환을 제한한 인공 생태계 안에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지 검증한 프로젝트다. 연구자 8명이 내부에 거주하며 식량 생산과 물질 순환, 생태계 유지 가능성을 실험했다. 이은영은 과거의 실험을 대형 설치 작품으로 재해석했다. 정삼각형 구조의 공간을 관람객이 이동하며 에너지와 물질의 순환을 생각하도록 구성했다. 생태계가 여러 요소의 관계에 따라 유지된다는 사실을 공간적 경험에 옮긴 것이다.
실제 생태계에는 식물과 동물, 토양, 물, 대기 등 수많은 요소가 관여한다. 어느 하나를 분리해 완벽하게 통제하기 어렵다. 인공 생태계 실험은 자연의 작동 원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가진 기술적 능력과 한계를 드러낸 사례다. '메타-바이오스피어'는 환경을 보존해야 한다는 선언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인간이 구축한 시스템 안에서 생태적 순환이 얼마나 복잡하게 작동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관람객이 구조물 사이를 이동하는 과정도 작품을 공간적으로 이해하는 요소가 된다.
튀르키예 작가 멜리스 부이룩의 '블루밍 카펫'(2025)은 자연의 생명력을 다른 방식으로 다룬다. 전통적으로 카펫에 사용된 꽃과 식물 무늬를 흙으로 하나씩 빚어 도자 작품으로 제작했다. 카펫은 섬유를 엮어 만든 생활용품이다. 부드러운 표면과 반복되는 문양은 장식적 아름다움뿐 아니라 생활문화와 지역의 제작 전통을 담는다. 부이룩은 섬유의 무늬를 단단한 도자 재료로 옮겨 원래 사물의 성질을 변화시켰다.
꽃과 식물은 카펫에서 평면적인 문양으로 존재하지만 도자 작업에서는 각각의 형상을 가진 조형 요소가 된다. 실과 흙이라는 재료의 차이는 익숙한 장식무늬를 새로운 방식으로 보게 한다. 작품을 이루는 작은 형상들은 반복적인 손작업을 거쳐 완성된다. 유사한 형태를 여러 차례 제작하면서도 흙을 다루는 과정에서 미세한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전통 문양의 반복성과 도자 제작의 개별성이 만나는 부분이다.
◇3D 프린팅과 가마의 결정, 흙에 남은 제작의 시간
홍콩 작가 라이 콴헤이 마이런과 목 호이칭 실베스터가 공동 제작한 '무정형 결정: 피나카이트 #8'(2025)은 디지털 제작과 가마 내부의 자연적 반응을 결합했다.작품의 기본 구조는 3D 프린팅 기술로 제작한 프랙탈 형태다. 프랙탈은 부분과 전체에서 유사한 구조가 반복되는 기하학적 특성을 가리킨다. 작가들은 디지털 장비로 복잡한 구조를 제작하고 가마의 열에 반응하는 유약의 성질을 활용했다.
소성 과정에서는 유약의 성분과 온도, 냉각 조건에 따라 결정이 형성될 수 있다. 디지털 설계는 기물의 기본 형태를 정밀하게 제어하지만 유약이 반응하는 과정에는 재료의 물리·화학적 성질이 개입한다. 컴퓨터에서 계산한 구조와 고온에서 발생하는 물질의 변화가 한 작품에 남는다. 작품은 도자 제작에서 작가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 묻는다. 작가는 형태를 설계하고 재료를 선택하며 소성 조건을 조절한다. 그러나 가마 내부에서 발생하는 모든 반응을 직접 손으로 제어할 수는 없다. 디지털 기술과 재료의 성질이 완성에 영향을 미친다.
일본 작가 아오키 히로시의 '대지의 씨앗'(2024)은 제작 과정의 시간을 표면에 남긴다. 여러 종류의 흙을 눌러 붙여 구운 뒤 유약을 조금씩 벗겨내며 내부에 형성된 색과 질감을 드러낸다. 일반적인 도자 제작에서 유약은 표면을 보호하고 색채와 광택을 부여한다. 아오키는 완성된 표면에 다시 손을 가해 그 아래에 남아 있는 재료의 특징을 드러낸다. 바깥쪽을 덮고 있던 층이 제거되면서 서로 다른 흙과 소성의 흔적이 드러나는 구조다.
작품 제작에는 두 종류의 시간이 작용한다. 여러 흙을 결합하고 불에 굽는 시간, 완성된 표면을 다시 깎고 벗겨내는 시간이다. 표면을 덮는 행위와 제거하는 행위가 반복되며 재료의 내부 구조가 조형적 요소로 드러난다. '대지의 씨앗'이라는 제목도 흥미롭다. 흙은 식물이 자라는 토양이면서 도자의 원료다. 씨앗은 성장의 출발점을 뜻하지만 도자 제작에서는 불을 거치며 흙의 성질이 달라진다. 아오키는 여러 흙을 사용하고 표면을 다시 손질하는 과정에서 재료의 시간성을 드러낸다.
◇수백 개 도자 조각으로 세운 성소, 확장된 도자의 영역
캐나다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엘리자 아우의 '신성함을 공간화하기'(2025)는 종교 건축의 기하학적 구조를 도자 설치로 옮긴 작품이다. 작가는 종교 건축에서 발견되는 대칭과 격자 구조를 활용하고, 땅과 하늘을 상징하는 수백 개의 도자 조각을 조합해 공간을 구성했다. 개별 조각은 하나의 구성 요소로 작동하며 반복되는 형태가 전체 구조를 형성한다.
종교 건축에서는 공간의 비례와 대칭, 반복되는 기하학적 무늬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건축물의 구조는 사람들이 특정 장소에서 어떤 감각을 경험하는지에도 영향을 미친다. 엘리자 아우는 건축에서 사용되는 조형 원리를 도자 조각에 적용해 명상적인 공간을 구축했다.
개별 도자 조각은 크기가 제한된 물체지만 여러 개가 모이면 관람객의 신체와 관계를 맺는 큰 구조가 된다. 가까운 거리에서는 각각의 형태와 표면을 살필 수 있고, 거리를 벌리면 반복되는 기하학적 구성이 두드러진다. '신성함을 공간화하기'는 도자가 그릇이나 작은 조각의 형태에 한정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건축적 구조와 설치미술의 방법을 활용하면서 도자는 관람객이 공간 전체를 경험하게 하는 매체가 된다.
국제공모전 우수상 9점이 보여주는 세계 현대도예의 모습도 다양하다. 누군가는 인간의 몸을 흙에 옮기고, 누군가는 기후위기를 기록한다. 다른 작가는 가마 안에서 자라는 결정을 이용하거나 전통 문양을 도자로 재구성한다. 표현 영역은 달라졌지만 흙이라는 재료의 성질은 여전히 중요하다. 손으로 쌓고, 눌러 붙이고, 유약을 입히며 높은 온도에서 굽는 과정이 작품의 최종 형태를 결정한다. 디지털 기술이나 영상, 금속과 섬유가 결합해도 도자가 가진 물성과 제작의 시간은 작품을 이해하는 핵심 요소로 남는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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