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나애의 녹색 미술관] 예술로 말하는 환경이야기: 선 밖으로 번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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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나애의 녹색 미술관] 예술로 말하는 환경이야기: 선 밖으로 번지는 것들

문화매거진 2026-10-22 13:19:0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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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 1503~1519년경, 목판에 유채, 77×53cm,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소장
▲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 1503~1519년경, 목판에 유채, 77×53cm,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소장


[문화매거진=윤나애 작가] 미술 수업을 하다 보면 학부모님들이 그림의 잘되고 못됨을 가늠하는 기준이 꽤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된다. 색을 얼마나 깔끔하게 선 밖으로 나가지 않고 빈틈없이 칠할 수 있으냐다. 그러한 형태의 그림 앞에서는 “우리 애가 그림을 잘 그리네요”하며 흐뭇해하지만, 색이 삐져나오고 거칠어 보이는 그림 앞에서는 표정이 어두워진다.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나 역시 선을 넘는 순간 다른 물체에 침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어느새 “선 밖으로 나가지 않게 칠해볼까?”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는 처음부터 선을 긋지 않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모나리자(Mona Lisa, 1503-1519경)’는 흔히 그 미소로 기억되지만, 미소를 가능하게 한 것은 ‘스푸마토(sfumato)’라는 기법이다. 이탈리아어로 ‘연기처럼 사라지다’라는 뜻의 ‘sfumare’에서 온 말이다. 윤곽선을 긋지 않고 아주 얇고 투명한 유약 층을 수십 번 덧발라서 빛과 어둠이 서로 스며들도록 하는 방식이다. 한 겹의 두께는 눈으로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얇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눈가와 입가는 그림자 속으로 번져 그 경계가 없다. 모나리자의 미소가 입가를 똑바로 볼 때는 흐려지고 시선을 다른 곳에 둘 때 오히려 떠오른다는 이야기도 이 때문이다. 경계가 없기에 미소는 한곳에 고정되지 않고 보는 사람의 시선을 따라 움직인다.

다빈치가 이 기법에 매달린 이유는 오랜 관찰에 있었다. 그는 자연 어디에도 선은 없다고 보았다고 전해진다. 윤곽선은 사물을 구분하기 위해 사람이 머릿속에서 그어놓은 약속일 뿐이며 실제 세계는 빛과 공기 속에서 서로 스며드는 것들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멀리 있는 산이 푸르스름하게 흐려지는 대기의 효과를 그토록 집요하게 연구한 것도 같은 시선에서 나왔다.

이 그림 앞에 서면 우리가 자연을 대하는 방식이 떠오른다. 우리는 구획하는 일에 익숙하다. 여기는 도시고 저기는 숲이며 이쪽은 우리 땅이고 저쪽은 남의 땅이다. 쓰레기는 내 집 문밖에 내놓는 순간 내 손을 떠난 일이 되지만 자연은 선을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미세먼지는 국경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하천에 흘려보낸 것은 바다를 지나 지구 반대편 해변에 닿는다. 태평양 한가운데 떠 있는 거대한 쓰레기 지대는 어느 한 나라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어놓은 선 바깥으로 흘러간 모두의 흔적이다. 선 안쪽만 깨끗하게 지키면 된다는 생각은 스푸마토의 눈으로 보면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자연에서 가장 풍요로운 곳이 대체로 경계가 흐릿한 곳이라는 사실이다.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갯벌, 물과 뭍이 뒤섞인 습지가 그렇다. 생태학에서는 이런 점이지대를 ‘에코톤(ecotone)’이라 부른다. 서로 다른 환경이 겹치는 이 에코톤에서는 양쪽의 생물이 함께 살아 다양성이 높아진다. 갯벌은 육지도 바다도 아니라서 쓸모없는 땅으로 여겨져 매립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수많은 생물의 집이고 먼 길을 오가는 철새들이 숨을 돌리는 쉼터다. 선이 분명하지 않은 자리에서 오히려 생명이 가장 촘촘하게 얽혀 있었던 것이다.

스푸마토에는 하나 더 눈여겨볼 점이 있다. 이 기법은 한 번의 강렬한 붓질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얇은 층을 셀 수 없이 쌓아서 완성된다. 한 겹만 놓고 보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지만 그것이 쌓이면 깊이가 되고 숨결이 된다. 우리가 지구에 남기는 흔적도 그렇게 쌓인다. 비닐봉지 하나, 일회용 컵 하나는 얇은 한 겹이지만 수십 년이 쌓이면 지층에 남을 두께가 된다. 반대로 회복도 같은 방식으로 온다. 요란한 한 방이 아니라, 오늘 쓰지 않은 컵 하나, 덜 태운 연료 한 줌이 조용히 덧발라지는 유약 층처럼 쌓여 다른 풍경을 만들 수 있다.

다시 미술 수업의 풍경으로 돌아온다. 선을 넘어 번진 크레파스 자국 위에서 노랑과 파랑이 겹쳐 뜻밖의 초록이 생겨나는 장면을 나는 수업 중에 종종 볼 수 있다. 깔끔하게 칠하는 것과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삐져나온 색 속에는 아이가 색을 섞어보고 손을 움직이며 세상을 탐색한 흔적이 들어 있다. 선 안을 채우는 것이 그림의 전부라고 믿었던 나는, 다빈치가 500년 전에 이미 알고 있던 것을 아이들의 그림 앞에서 뒤늦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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