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이 서리로 바뀌는 절기인 상강은 겨울로 접어들기 전 나무와 숲의 변화가 두드러지는 시기다. 나무는 잎을 떨구며 추위를 준비하고, 떨어진 낙엽은 흙으로 돌아가 새로운 생명의 밑거름이 된다. 씨앗과 나무, 흙을 통해 자연의 순환과 생명력을 들여다보는 책을 소개한다.
■우리는 모두 씨앗이다(남효창 지음, 책이라는신화 펴냄)
작고 평범한 씨앗에는 언젠가 거대한 나무로 자라날 가능성이 숨어 있다. 40년간 숲을 연구해 온 숲철학자 남효창은 이 작은 씨앗을 통해 생명의 성장과 공존, 자연의 순환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수십·수백 년의 나이테와 뿌리를 대표하는 숲의 장로(長老)인 ‘산할아버지’와 어린 상수리 씨앗 ‘상수’가 편지를 주고받는 독특한 형식으로 전개된다.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어 나무로 자라는 과정에 생태학적 지식과 철학적 사유를 녹였다. 씨앗마다 어떤 씨앗은 멀리 이동하고, 어떤 씨앗은 땅속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리는 등 각자 다른 생존 전략을 갖고 있다. 저자는 서로 다른 생명들이 관계를 맺으며 하나의 숲을 이루는 과정에 주목한다.
낙엽이 쌓이고 겨울이 다가오는 시기에도 씨앗은 새로운 생명을 준비한다. 저자는 모든 생명이 저마다의 속도와 방식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경쟁과 성취에 익숙한 인간의 삶에도 질문을 던진다.
■ 나무(고다 아야 지음, 책사람집 펴냄)
잎이 떨어진 뒤에도 나무는 그 자리에 서서 또 다른 계절을 맞는다. 일본 작가 고다 아야의 ‘나무’는 그렇게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나무들의 삶을 기록한 산문집이다.
말년의 작가는 일본 북쪽 홋카이도에서 남쪽 야쿠시마까지 나무를 찾아다녔다. 가문비나무와 편백, 삼나무, 포플러 등 다양한 나무를 관찰하며 첫 번째 에세이 ‘가문비나무의 갱신’에서 마지막 작품 ‘포플러’까지 13년6개월이라는 시간이 담겼다. 저자는 곧게 뻗은 나무뿐 아니라 쓰러진 나무와 목재로 남은 나무의 모습에서도 저마다의 생명력을 발견한다. 나무를 관찰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세월의 무게와 삶의 의미를 헤아리는 일로 이어진다.
저자는 나무를 쉽게 정의하거나 성급하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시 찾아가고, 오래 들여다보며 조금씩 이해하려 한다. 잎을 모두 떨군 겨울나무에서도 삶의 흔적을 발견하는 저자의 시선은 자연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흙의 숨(유경수 지음, 김영사 펴냄)
가을이면 나무는 한 해 동안 품었던 잎을 땅으로 돌려보낸다. 낙엽은 쌓이고 부서지고 분해돼 흙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계절의 끝이라고 여기는 순간, 땅속에서는 또 다른 생명의 순환이 이어지는 셈이다. 토양생태학자 유경수의 ‘흙의 숨’은 발밑에 있어 좀처럼 주목받지 못했던 흙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저자는 우리나라 진도의 밭에서 히말라야의 화전지, 하와이 화산섬과 극지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현장을 찾아 흙과 인간의 관계를 추적한다. 특히 낙엽을 분해하는 지렁이와 미생물의 활동, 탄소와 질소의 순환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생태계의 움직임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흙은 생명이 뿌리를 내리는 터전이자 수많은 생물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공간이다.
책은 토양의 생성과 침식, 농업과 기후변화까지 시선을 넓힌다. 낙엽 한 장이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에는 숲을 유지하는 복잡한 생태적 관계가 숨어 있다. 저자는 흙을 통해 인간 역시 자연의 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임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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