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연상호 감독은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동아닷컴과 만나 영화 ‘실낙원’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연 감독은 ‘얼굴’에 이어 ‘실낙원’까지 저예산 영화 제작에 나선 만큼, 노하우가 생겼냐는 질문에 “노하우라고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얼굴’은 처음 시도하는 방식이었고 스태프들도 좋은 마음으로 도와줬다. 그러다 보니 인건비나 계약을 디테일하게 챙기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정산을 하다 보니 더 받아야 하는 친구가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도 있어서 나중에 보너스 형식으로 지급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이번에는 그런 부분을 좀 더 챙기고 계약 문제도 더 나은 방식으로 바꾸려고 했다. 다만 촬영 자체는 작품마다 내용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특별한 노하우가 생기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작은 규모의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다는 욕심도 드러냈다. 연 감독은 “매년 하고 싶다. 허락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죽을 때까지 가져가보고 싶은 작업 방식”이라며 “장점이 정말 많다. 더 작은 영화도 해보고 싶다. 더 콤팩트한 형태도 가능할 것 같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영화’라는 틀이 존재하지 않나. 그 틀에서 벗어나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밝혔다.
‘얼굴’은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저예산 영화로 의미 있는 흥행 성과를 거뒀다. 그렇다면 ‘실낙원’의 목표 관객 수는 얼마일까. 연 감독은 “손익분기점에 대한 부담이 덜하다는 것도 정말 좋다”며 “‘손익분기점이 의미가 있나요?’라고 하시더라. 제가 알기로는 해외 판매도 있어서 사실 큰 의미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마음 같아서는 50만 명이 봐주시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얼굴’ 때도 50만 명이 넘으면 파티를 하자고 했는데 100만 명이 넘어서 실제로 파티를 했다. 다들 정말 즐거워했다”고 웃었다.
연 감독은 최근 영상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의 변화가 작은 영화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 있다고 바라봤다. 그는 “요즘 유튜브를 많이 본다. 제가 어릴 때 어린이 드라마라고 하면 ‘요정 컴미’ 같은 작품들이 있었는데 나름대로 퀄리티도 있었고 대사도 재미있고 특수효과도 들어갔다”며 “그런데 요즘 제 딸이 보는 콘텐츠를 보면 어떤 건 ‘이렇게 만들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퀄리티가 낮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세대의 변화를 발견했다고 했다. 연 감독은 “저희가 어릴 때 극장에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공룡을 만들어내면 ‘저걸 어떻게 만들었지?’라고 감탄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영상 자체에 대한 경탄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뭘 봐도 ‘어떻게든 만들었겠지’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신 이야기에 경탄한다. 영상 퀄리티가 낮더라도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본다. 예전에는 엄청난 규모와 볼거리로 관객을 압도하는 것이 중요했다면 요즘 10대, 20대는 그런 것에 대한 경탄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고 싶다는 욕망이 더 강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블록버스터의 자리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산업이 점점 이야기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야기가 더 중요해졌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실낙원’ 역시 단순히 결말을 아는 것보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이 중요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연 감독은 “‘실낙원’을 유튜브에서 처음부터 결말까지 전부 요약해준다고 하면 사실 결말 자체는 저도 지금 이야기할 수 있다”며 “그런데 관객이 알고 싶은 건 단순히 결말이 아니라 그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을 봐야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얼굴’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내용만 알고 싶으면 그냥 유튜브 요약 영상을 보면 된다. 하지만 영화에서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느냐다. 그런 감정에 대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I에게 ‘요약해줘’라고 하면 깨끗하게 정리돼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것을 직접 느껴야 그다음을 생각할 수 있는 형태로 콘텐츠가 바뀌고 있는 것 같다”며 “그게 앞으로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영화가 가져야 할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다시 천만 관객 영화가 등장하며 극장가가 활기를 되찾는 모습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연 감독은 “모든 것이 AI로 통합되고 사고 방식까지 AI화될 수 있는 시대에 ‘천만 영화’라는 것은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천만 명이 같은 영화를 봤다는 건 그만큼 많은 사람에게 공통의 추억이 생겼다는 의미다. 엄청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영화가 가장 부흥했던 시기에도 계속 나왔던 이야기가 다양성이었다. 다양성이 마련돼 있어야 산업적인 위기가 와도 살아남을 수 있다. 지금 영화 산업에 가장 필요한 것도 다양성이라고 생각한다. 다양성이 다시 한번 이 세계에 부흥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영화관이 가진 의미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본다는 점에서 연결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고립의 상징이기도 하다. 혼자 집중하고 싶을 때 영화관에 가지 않나. 수많은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자신만의 세계에 고립될 수 있다. 영화관에는 그런 양면성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튜브와 OTT 시대에도 극장에서 영화가 상영돼야 하는 이유 역시 ‘공간’이라고 봤다. 그는 “유튜브는 완벽하게 열려 있는 공간처럼 보인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완전히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 동시에 굉장히 폐쇄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비디오 가게에 들어가면 인기작도 있고 그렇지 않은 영화도 있고 여러 장르가 다 보인다. 내가 빌리고 싶은 영화가 없으면 한 바퀴 돌면서 다른 작품들도 보게 된다”며 “그런데 IPTV나 OTT는 훨씬 더 넓게 열려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플랫폼이 띄워주는 것 외에는 어떤 작품이 들어와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완전히 열려 있는 듯하면서 동시에 완전히 폐쇄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영화관은 물리적인 공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성질 자체가 다르다”고 전했다.
끝으로 연 감독은 “그 다른 성질에 합당한 영상이 영화라고 생각한다”며 “단순히 큰 화면으로 볼 수 있는 영상이라는 의미만은 아니다”라고 영화관의 가치를 강조했다.
한편 영화 ‘실낙원’은 9년 전 캠핑스쿨 버스 실종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엄마 류소영에게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 류선우가 기적처럼 살아 돌아오면서 시작되는 심리 스릴러다. 오는 21일 개봉한다.
김승현 기자 tmd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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