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영화사 진진
[스포츠동아 이승미 기자] 가을 바람과 함께 찾아온 클래식 선율이 시린 마음 위로 차분하게 내려앉는다. 넷플릭스 시리즈 ‘엄브렐러 아카데미’와 영화 ‘애프터 양’ 등으로 존재감을 각인시킨 한국계 할리우드 배우 저스틴 민이 첫 한국 영화 주연작 ‘흐르는 여정’을 선보인다.
‘흐르는 여정’은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춘희(김혜옥)가 새 아파트에서 뜻밖의 이웃들을 만나며 일상에 새로운 파동을 맞이하는 이야기다. 저스틴 민은 어린 시절 독일로 입양된 뒤 지휘자가 돼 친어머니를 찾으러 한국에 돌아온 민준 역을 맡았다. 춘희의 피아노를 맡게 된 그는 이방인의 외로움부터 타인의 아픔을 끌어안는 따뜻한 시선까지 섬세하게 그려내며 작품의 울림을 더한다.
●“이방인의 마음에 공감”
한국 영화 출연을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는 저스틴 민은 ‘흐르는 여정’을 선보이게 된 벅찬 소회를 밝혔다. 작품 규모는 작았지만 아름다운 강릉에서 촬영하며 영화와 민준이라는 인물에 빠져들었다고 회상했다.
“제 첫 한국 영화로 선택하기에 더없이 근사한 작품이었어요. 한국에서 작업하기 위해 오랫동안 여러 대본을 기다렸는데, 그동안은 마음에 확 와닿는 게 없었죠. 하지만 이번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바로 매료됐어요. 무엇보다 민준이라는 캐릭터에 깊이 끌렸죠. 민준은 독일에서 자랐지만 낯선 한국에 왔을 때 소속감이 없고 혼자인 것 같은 감정을 느껴요. 저 역시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그런 감정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흐르는 여정’에서 민준은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분위기 속에서 관객들에게 미소를 선사하는 유머와 온기를 담당한다. 극 중 막걸리를 와인잔에 따라 빨대로 마시는 디테일 역시 그의 아이디어였다.
“슬프고 무거운 상황을 담은 영화인 만큼 민준을 통해 가볍고 즐거운 순간들을 선사하고 싶었어요. 대사를 하기 전부터 한국에서 자라지 않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드러나길 바라며 스타일링에도 깊이 관여했어요.”
할리우드 작품과 달리 대부분의 대사를 한국어로 소화해야 하는 과정은 그에게 커다란 도전이었다.
“영어로 연기할 때는 대사보다 감정에만 집중하면 되는데, 한국어로 연기할 때는 언어 자체에도 신경을 써야 해서 영어 대본보다 10배는 더 노력했어요. 현장에 영어를 할 수 있는 분이 안 계셔서 촬영하는 동안 제 인생에서 한국어 실력이 가장 많이 늘었죠.(웃음)”
영화 ‘흐르는 여정’ 스틸, 사진제공|영화사 진진
차기작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아웃백’을 택하는 등 국내 활동에 박차를 가하는 그는 더 많은 한국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미국에서 촬영할 때는 아시아인에 대한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는 캐릭터를 선택하기 위해 신중하게 고민해 왔어요. 하지만 그런 작품을 찾기가 쉽지는 않아요. 한국에서 작품을 하면 인종적 편견에서 벗어나 다양한 아티스트로서 제 정체성을 온전히 찾아갈 수 있어서 좋아요. 이창동, 봉준호, 나홍진 등 훌륭한 한국 감독님들과도 작업해 보고 싶어요. 배우 중에서는 박정민 배우와 꼭 함께 연기해보고 싶어요.”
미국에서 나고 자란 그는 처음에는 낯설었던 한국이 이제는 ‘제2의 고향’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지난해 공개된 넷플릭스 예능 ‘데블스 플랜’ 출연 이후 한국에서 높아진 인기도 실감한다며 웃었다.
“‘데블스 플랜’ 이후 한국행 비행기를 탔더니 기내에 계신 모든 분이 저를 알아봐 주셔서 정말 신기했어요.(웃음) 한국 팬분들은 정말 다정해요. 예전에 좋아하는 과자 브랜드를 말했더니 엄청나게 선물해 주셨고, 최근에는 호두과자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지금은 차에 호두과자가 50박스는 있어요.(웃음)”
이승미 기자 s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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