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연상호 감독은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동아닷컴과 만나 영화 ‘실낙원’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연 감독은 영화 ‘군체’에 이어 ‘실낙원’으로 빠른 시일 내에 관객들과 만나게 된 것에 대해 “영화를 또 선보이게 돼 설렌다. 개봉할 때마다 관객분들을 만날 생각에 기대감을 갖게 되는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앞서 연 감독은 생성형 AI를 활용한 단편 4부작 ‘실낙원-유니버스’를 선보인 바 있다. 다만 영화 ‘실낙원’ 본편에는 생성형 AI 기술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실낙원’을 촬영할 당시만 해도 생성형 AI가 영화에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퀄리티까지 오지 않았기 때문에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며 “그때 지금 같은 기술이 있었다면 썼을 것 같다. 불과 1년 사이에 기술이 많이 달라졌다. 지금이었다면 본편에서도 재미있는 것을 만들어볼 수 있었겠다는 생각은 든다. 당시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연상호 감독이 생각하는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은 무엇일까. 그는 “그 지점에 대한 생각을 해보기 위해 이런 작업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며 “‘군체’를 만들 때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AI가 구동되는 원리를 보면 결국 집단지성이고 보편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간은 보편성만 가지고 있는 존재가 아니다. 굉장히 특이한 면도 많고 저는 그런 게 인간의 특성이라고 생각한다”며 “실존주의와 관련된 작품들을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인물을 만나기도 하는데, 또 어느 순간 그 사람의 심정이 이해되는 지점이 생긴다. ‘실낙원’을 통해 그런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관객들이 소영의 선택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실존에 대한 토론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지금 같은 AI 시대에 오히려 필요한 이야기이자 중요한 질문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밝혔다.
극 중 AI 류선우를 구현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AI 류선우의 특징에 대해 생각하면서 대본 작업을 했다. 요즘 같으면 AI에게 직접 물어봤으면 더 잘했을 것 같기도 하다. 요즘 AI가 감정적인 표현도 굉장히 잘 만들어내지 않나”라고 웃었다.
이어 “저는 AI 류선우가 결국 류소영의 마음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인공지능 자체에는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류소영이 듣고 싶어 하는 리액션을 해주는 존재라고 생각했다”며 “영화 속에서 조화에 물을 주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이 하나의 대상을 진짜라고 여기면 그것은 진짜가 되는 것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군체’에서도 집단지성을 다뤘던 연상호 감독은 자신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집단성과 개인, 혹은 조직과 개인은 제 작품에서 계속 반복해서 등장하는 주제이자 고민인 것 같다”며 “AI라는 건 어떻게 보면 집단성이 하나로 귀결된 응집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AI를 빼놓고 많은 것을 생각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모든 것이 AI로 귀결되고 있다. 그런 지점이 장르물과도 잘 통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낙원’은 류소영과 AI 아들 류선우, 그리고 인간 아들 류선우의 관계를 따라가며 가족의 의미 역시 질문한다. 연 감독은 “AI와 가족이라는 관계는 쉬운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실낙원’은 연 감독의 어머니가 쓴 약 3페이지 분량의 글에서 시작됐다. 그는 “어머니가 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결국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이라고 하면 굉장히 가까운 사이 같지만 의외로 서로에 대해 잘 모른다. 저희 어머니도 저를 잘 모르고 저도 어머니에 대해 잘 모른다. 오히려 서로를 알려고 시도하지 않는 게 가족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래서 ‘이걸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어머니는 왜 이런 이야기를 쓰셨을까’가 궁금했다. 원래 어머니가 쓴 이야기는 나쁜 아들을 어머니가 품으려고 하는 이야기였다. 거기서부터 여러 궁금증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어머니의 원안에는 AI가 등장하지 않았다. 연 감독은 AI라는 설정을 더한 이유에 대해 “저는 대중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영화를 많이 본 관객이든 그렇지 않은 관객이든 누구에게나 비슷하게 전달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그래서 최대한 쉬운 방식으로 전달해야겠다는 목표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엄마는 무슨 생각이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는데 결국 들어가 보면 잘 모르겠더라. 결과적으로 아무리 들여다봐도 완전히 알 수 없는 게 인간이라는 결론에 가까워졌다”며 “그걸 관객들이 스스로 이야기하고 토론하게 되는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굳이 ‘실존주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영화를 보고 ‘엔딩이 뭐야?’라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실존에 대한 토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극 중 류소영에게 실제 어머니의 모습이 반영됐는지 묻자 연 감독은 “사람마다 여러 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나. 누군가의 자식이기도 하고 아버지이기도 하고 남편이기도 하고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하나의 정체성만 있는 사람은 없다”며 “저희 어머니는 그중에서도 ‘어머니’라는 정체성이 굉장히 강한 분인 것 같다. 그런 부분에서는 류소영과 닮은 점이 있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영화 관람 후기도 전했다. 연 감독은 “저도 너무 궁금해서 영화를 보시고 전화드렸다. 그런데 ‘잘 봤다. 술 많이 마시지 말고 들어가’라고 하시더라”며 “명절 때 만나면 다시 한번 자세히 물어봐야겠다”고 웃었다.
연상호 감독은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온 김현주에 대해서도 깊은 신뢰를 드러냈다. 그는 “연기적인 면도 그렇고 캐릭터를 해석하는 진지함이 좋다. 현장에서도 굉장히 좋은 분이고 연기에 대한 열정에서 나오는 힘과 에너지가 있다. ‘지옥2’를 할 때부터 특히 많이 느꼈는데 배우로서 스펙트럼이 정말 넓다”고 칭찬했다.
이어 “‘정이’를 할 때도 넘어졌다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일어나야 하는지까지 고민하더라. 무생물을 연기하면서도 그렇게 진지하게 접근한다. 그런 면에서 굉장히 훌륭하고 믿을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100일의 거짓말’을 통해 또다시 좋은 반응을 얻는 걸 보면서 ‘관객들이 김현주 배우의 진가를 또 알아보시는구나’ 싶었다. ‘낭중지추’라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 그 말이 정답인 것 같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배현성을 캐스팅한 이유도 밝혔다. 연 감독은 “‘지옥2’에 잠깐 출연했는데 굉장히 진지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짧은 장면 하나를 위해 정말 많은 걸 준비하고 구상하는 모습을 보고 ‘이 배우와 다시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영화 ‘실낙원’은 9년 전 캠핑스쿨 버스 실종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엄마 류소영에게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 류선우가 기적처럼 살아 돌아오면서 시작되는 심리 스릴러다. 오는 21일 개봉한다.
김승현 기자 tmd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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